[제 8회 작가와의 대화] 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
[제 8회 작가와의 대화] 강풀, 그대를 사랑합니다
  • 김민지 기자
  • 승인 2008.05.19 15: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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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쾌한 그 만화가와의 대화

 

만화를 시작한지 7년차에 접어든 만화가 강풀, 강도영입니다. 아직 신인만화가이고요. 2달 전에(덕성여대신문사에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강연이라는 말에 조금 의아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강연은 학문적 성취도 있고, 나이도 지긋한 분이 하시는 건데 저는 그런 면에서 부족하거든요. 그래서 강연이 아니라 ‘제 8회 작가와의 대화’ 에 들어가 있는 저 대화라는 글씨 그대로 대화를 할 거예요. 질문이 없으면 금방 끝납니다.


 

 

△어떻게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그 이야기는 대학생 때로 돌아가야 해요. 사실 저는 만화가가 되는 정식코스를 밟지 않았거든요.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총학생회 홍보부에 들어가게 됐는데 운동권에서 활동하게 되었죠. 그런데 학생운동 때문에 2달 만에 홍보부장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간 거예요. 그래서 바로 홍보부장이 돼 버렸죠. 학생회에서 활동하다보면 대자보 붙이는 것이 일인데, 문득 대자보를 붙이고 보니 학생들이 관심이 없더군요. 그래서 그림을 그렸어요. 그림은 중, 고등학생 때 수업시간에 드래곤볼 따라 그리던 것이 전부였는데 말이죠. 다소 어색한 그림이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관심을 가지면서 재미가 붙어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나가보니 부딪히는 벽이 너무 높더라고요. 제가 솔직히 그림을 잘 못 그리잖아요? 7년 전에는 더 말도 못했어요. 그래도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이력서를 400장 넘게 써서 서울, 경기 인근의 잡지, 신문 심지어 벼룩시장까지 보냈어요. 3장짜리였는데 첫 장은 내 캐리커처, 두 번째 장은 내가 그릴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얼굴, 세 번째 장에는 ‘내 만화를 쓰면 당신네 출판사가 잘 될 것’이라는 글을 넣었지요. 1년 정도 보냈는데 연락이 딱 2군데 오더라고요. 아버지가 목사라고 썼더니 연락이 왔던 기독교신문사랑, 페이지 당 2000원을 쳐주겠다던 이상한 곳이었어요.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인터넷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많이 보러오게 하자’라는 생각에 ‘똥’만화 같은 엽기만화를 그렸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더군요. 그렇게 차츰 인기를 얻을 때 쯤 마린블루스, 메가쇼킹 같은 다른 인터넷 만화들이 많이 생겼어요. 순간 ‘묻힐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하던 일을 전부 그만두고 만화의 스토리를 쓰는데 몰두했지요. 그렇게 나온 것이 ‘순정만화’에요. 저에게 장편의 매력을 느끼게 해 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진짜 만화가가 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봤지만, 역시 별 다른 수는 없었어요. ‘맨땅에 헤딩’하는 것이라도 밀고 나가는 것이 먹혔지요. 저는 학교 다닐 때 만화가가 될 거라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하고 다녔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말 못하고 숨기는 사람은 결국 나중에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저 역시도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 아니라 그 시기에 만화가라는 내 꿈을 비웃었을 사람은 분명 있었을 거예요. 그래도 ‘나는 만화가를 할거야’라고 반복해서 생각했더니 결국 만화가가 되어 있더라고요. 몇몇 특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저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넌 나중에 뭐할래?’했을 때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된다고.

 

   
▲ 강연 중

△‘26년’은 정치만화인데 그리시면서 어떤 형태로든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26년은 5.18 민주화운동 투쟁자의 아이들이 커서 전두환을 암살한다는 내용이에요. 원제는 ‘23년’으로, 2003년에 전두환이 ‘전 재산이 29만원 있다’같은 헛소리를 하는데 자신의 죄를 전혀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에 그리기로 마음먹었지요. 하지만 계속 겁이 났어요. 그리다 잡혀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게 3년을 한 해, 한 해 미루다 결혼을 앞둔 시기에 ‘이 작품은 결혼을 하면 못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지요.

 

 이 무렵 일본에서 연재 문의가 들어와서 26년을 그리고 바로 도망갈까란 생각도 했었어요. 결국 별다른 위협은 없었지만 전화는 몇 통 받았어요. 중년의 아저씨가 ‘석촌호수로 나와라’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26년을 그리던 5,6개월은 아예 전화선을 빼버렸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히려 ‘위협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한 만화가가 전두환 암살관련 만화를 그리다 테러 당했다’같은 기사가 나와서 이슈화가 되면 어떨까 싶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리길 아주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 만화가 나올 때는 26년이었는데 올해 개봉하면 2년이 흘러 ‘28년’. 제목이 좀 웃기게 되었지요.(웃음) 영화는 영화사 ‘청어람’에서 맡고 있는데 법적인 문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아마 작년에 개봉했던 ‘화려한 휴갗보다는 조금 더 센 영화가 될 것 같아요. 이렇게 현대사의 아픔을 많이 다뤄주어 사람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인공인데요. 어떻게 노인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를 그리게 되셨나요?

 

 

 

저는 사실 왼쪽 귀가 거의 안 들려요.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도 귀가 잘 안 들리시잖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려다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돼서 노인 분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희 집이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어머니가 할머님을 모셔 오신 거예요. 할머님 연세가 90을 넘기셨는데 1년에 한, 두 번 만나는 것이 전부였거든요. 사실 ‘노인’하면 힘없는 모습이 먼저 생각났는데 할머님을 보니 그런 생각이 확 바뀌었어요. 너무나 사랑스럽고 어떨 때는 귀여우시고 90세가 넘는 연세에도 소녀 같으시거든요. 오랜 세월을 살아오셨기 때문인지 정도 많으시고 마음도 아주 넓으세요. 그렇게 할머님과 생활하며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구상하게 되었어요.

 


△원작이 영화화 되거나 다른 매체화가 많이 되고 있는데 참여도는 어느 정도이신지, 또 그에 따른 걱정은 없으신지요?

 

 

원래는 원작이 다른 매체로 바뀌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참여를 하지 않았었어요. 원작자의 손을 떠나서 다른 감독님께 넘어갔을 때는 이제 제 작품이 아니라 그 감독님의 것으로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괴물2’시나리오를 쓰면서 빼도 박도 못하게 반영화인이 되다보니 자연스럽게 참여가 늘었어요. 그래도 스스로 일정 선은 지키고 있어요. 딱 감독님이 원하는 만큼만, 더 이상의 참여는 아직 실례인 것 같아요.

 

사실 저는 2차로 다른 매체화 되는 것에 대한 큰 걱정은 없어요. 오히려 기대가 많이 되지요. 제가 그린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 연극같이 새로운 것으로 탄생하는데 기분 좋은 일이잖아요. 스토리 변형에 대한 큰 거부감도 없어요. 최대한 다른 매체화 되는 것이 확정되면 크게 관여를 하지 않는데 너무 많은 변형은 속이 상하기도 해요.

 

 

   
▲ 스토리쓰기 '4가지 원칙'에 대해 설명하는 강풀
△글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제가 쓴 글을 보는 것이 쑥스럽고 창피할 때가 있어요.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 쓸 때 몇 가지 원칙을 지켜보세요. 저 또한 스토리에 신경을 쓰다 보니 몇 가지 원칙이 생기더군요. 모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며 알려주는 ‘4가지 원칙’ 인데 알아두시면 좋아요 .

 

첫째는 ‘한 줄 요약’이에요. 이야기를 풀어가기 전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해요. 요약해서 말을 못한다면 그것은 작가자신도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가야 할지 모르는 것이거든요. 아주 큰 흥행을 한 영화들을 생각해보세요. 왕의 남자 ‘왕을 우롱한 광대’, 타이타닉 ‘큰 배 침몰’, 매트릭스 ‘주인공의 가상현실 발견’처럼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하지요.

 

둘째는 ‘캐릭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슬램덩크’를 너무 재밌게 보았는데요. 잘 살펴보니 슬램덩크는 캐릭터설정이 너무나 잘 돼있더군요. 서태웅, 채치수, 강백호의 캐릭터가 확고하기 때문에 독자가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거예요. 또한 이야기를 쓰다 막힐 때도 캐릭터의 도움을 얻게 되는데요. 잘 형성된 캐릭터는 상황만 던져주면 성격에 따라서 장면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셋째는 ‘결말’이예요. 결말을 생각하지 않고 쓰면 복선이나 숨겨진 이야기를 쓸 수가 없게 되요. 흔한 예로 아침드라마가 결말을 지정하지 않고 가는데요. 결말이 없다보니 갑작스럽게 인물이 추가되면 사건이 급증하죠. 처음에 어떤 결말을 지을 것인가를 작가가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해요.

 

마지막은 ‘상투성’인데요. 신인작가들이 가장 많이 빠지는 함정이기도해요. 보통 ‘새로운 것을 써볼거야’라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물론 상투적인 이야기는 지루하고 진부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계속 그런 상투적인 소재를 이용하는 것은 그것이 매력적인 소재이기 때문이지요. 이 4가지 원칙을 잘 이용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예요.

 


△만화가로서 이루고 싶은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맨 처음 만화가가 되기 위해 고생했다던 이야기 기억나시나요? 그 때 저는 1평 반짜리 작업실이라도 죽어도 만화가가 꿈이었거든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나니 제 꿈이 이루어져 있더군요. 근데 이루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꿈은 꿈이 아니라 하나의 직업이었어요.

 

20대 초반에는 꿈과 직업을 많이 헷갈리게 되요. 하지만 직업이 꿈이 되면 마음속에서 뭔가가 뒤틀리기 시작하죠. 그 외에 것을 보지 못하게 되고 내가 꿈이라고 이름 지은 직업을 위해서 모든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면서까지 그것만 보게 되지요. 하지만 그렇게 얻은 직업이 결코 꿈은 아니에요. 이제 저는 그 시절 저의 꿈이었던 직업인 ‘만화갗가 되어 새로운 진짜 ‘꿈’을 꿉니다. 바로 내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좀 더 많이 웃었으면 한다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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