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머물다] 첫사랑의 추억처럼 영원하도록
[걷다 머물다] 첫사랑의 추억처럼 영원하도록
  • 윤재인(국어국문 2)
  • 승인 2008.05.3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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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했던 4월의 봄날. 흐드러지게 핀 벚꽃 속에서 한껏 꽃향기에 취해있었을 때, 늦어서 전속력으로 뛰어왔는지 턱까지 찬 숨을 몰아쉬는 그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생긋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우리들은 손을 잡고 만개한 벚꽃 길 사이를 걸었다.


여의2교 북단에서 시작해 국회의사당 주변을 돌아 서강대교 남단까지 이어지는 여의서로. 여의서로라는 이름이 낯설다. 우리에게는 여의서로는 ‘윤중로’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알려져 있다. 이 이름이 또 말이 많다. 윤중로에서 ‘윤중(輪中)’이라는 말 자체가 일제시대 ‘와쥬우’라는 일본말을 한자어로 적은 단어를 다시 우리식으로 읽어 ‘윤중’이 되었다는 설이 있어 윤중로라는 이름은 피하는 게 좋다, 이미 알려진 지명이니 그냥 쓰는 것이 좋다,

여의서로이다, 여의방죽길이다, 의견이 분분하다. 공식적으로 백과사전에 기록된 이름은 ‘여의서로’이다. 몇 년간 나도 자연스럽게 윤중로라고 불러왔는데 윤중로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되니 기분이 묘하다.


뒤늦게 본명을 알려준 여의서로에게 서운함은 남아있지만 5년간 쌓아온 정이 한 번에 무너지랴. 나와 이 친구(여의서로)는 5년간 4월마다 모임을 가져왔다. 여의서로는 겨울을 지내고 봄기운을 받아 한껏 흐드러진 벚꽃을 피운다. 주로 4월 초나 중순 정도에 여의도 벚꽃축제가 공지되고 일주일정도 차량이 통제된다. 찻길로 내려와 느긋한 걸음을 걷다보면 양옆에 하늘을 덮을 정도로 무성한 벚꽃이 화려함을 흩뿌린다.

봄바람이 벚꽃나무를 한번 스쳐 가면 분홍빛으로 물든 꽃잎들이 눈처럼 활강한다. 자연스럽게 손을 뻗었다가 손바닥에 벚꽃잎이 하나 떨어지면 소원을 빌어보자. 작은 소원정도는 흔쾌히 들어줄지도 모른다.


5년 전, 아직 고등학생일 무렵 나의 첫사랑과의 첫데이트 장소는 여의도 벚꽃놀이였다. 지금은 별 감흥 없을 행동 하나하나가 두근거리고 설레던 시절이었다. 연인이란 이름이 생소했고 좋아한다는 한마디에 행복해했다. 그런 풋풋한 기억이 그날 지났던 벚꽃나무에 아련히 담겨있다. 추억은 아름답게 퇴색된다고 했던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내 첫사랑이지만 그와 함께했던 추억과 행복하게 웃던 그 시절의 나는 여의도의 벚꽃이 필 때 유난히 선명하게 떠오른다.


나는 5년 전 그날 미래의 나에게 작은 선물을 남겨놓은 것이다. 그때 벚꽃나무에 심어놓은 과거의 나는 흐드러지게 벚꽃위에 피어, 여의서로에 찾아온 내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인해 행복해질 작은 여유를 안겨주었다. 1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첫사랑을 만나게 되는 그때에도, 나는 매년 봄, 이곳을 찾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손을 잡고 꽃길을 걸었다. 그 시절의 나는 진정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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