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소수자가 말하는 인권
성적 소수자가 말하는 인권
  • 글=이정연(한국 레즈비언 상담소 활동가)
  • 승인 2008.09.20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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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관심보단 상호적 소통이 필요

 그 일은 필자가 한국레즈비언상담소(이하 상담소)에 가입하고 레즈비언 인권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났다. 레즈비언 인권 활동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활동가로서 보다 다른 레즈비언들과 만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상담소를 찾던 시적이었다.
 모두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던 시간에 방영되었던 “MBC 뉴스투데이”의 심층취재 과정에서 많은 레즈비언들이 늘 두려워했던 일이 벌어졌다. 십대 여성들이 서로 사귀는 일을 사회문제로 집중 취재하며, 레즈비언 바 입구와 십대 레즈비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다큐멘터리 제작 윤리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카메라의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일 방송에서 카메라에 담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보다는 화제가 될 화면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십대 레즈비언들은 사회에 저항하고자저들끼리 사귀고 있고, 이를 해결하려면 십대들이 소ㅚ받는 사회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방송의 요지였다.
 이 방송을 시청한 사람들 중에선 카메라에 담겼던 십대 여성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친구도 있었다. 방송은 레즈비언을 향한 선입견과 편견이 가득 담긴 의견을 줄곧 말했고, 십대 레즈비언을 집단 아우팅(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자의가 아닌 타인의 고의에 의하여 밝히게 되는 것)했다.
 동성간 사랑이 왜 문제인지, 십대 여성들이 서로 사귀는 일이 왜 사회적으로 다루어야 할 심각한 문제인지, 필자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당시에는 십대들이 겪는 어려움과 부당함이 그들에게 유행처럼 동성을 교제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그네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을 뿐이다. 지금에서야 이렇게 아우팅을 당하는 성적소수자가 원하는 인권적 대우를 받기엔 아직 먼 현실에 분노한다.
 필자는 그 방송을 정시에 보지 못했다. 방송이 된 날 저녁, 상담소에 모여 함께 보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경악하고 분노했다. 레즈비언 인권 운동이 십 년 후퇴 한 것 같다며, 지금까지 힘들게 벌여온 운동을 되돌아보며 허탈해했다. 아무리 소리쳐 외쳐도, 우리 사회에서 동성 간의 교제는 여전히 비정상적이고 잘못된 현상이라고 여기고 있는 현실에 슬프고 우울했다.
 당시 필자는 활동가들이 ‘우리’를 ‘그들’의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사회에 당당히 항의하는 모습에 조금 놀랐다. 그러나 그것은 반가운 놀라움이었다. 필자는 자신의 정체성이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에 화를 내고 우울해하며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적은 별로 없었고, 나의 정체성을 고쳐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미 이런 식의 부당함은 너무 많이 겪어왔기 때문에 그저 견뎌야 할 운명처럼 받아들였었다.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해도, 자신이 사회에서 거절당해도, 어쩔 수 없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것이다. 외로웠고 슬펐고 갑갑했다. 누구도 나와 같지 않다는 고립감, 평생을 지고 살아야 할 억압의 문제들, 자신의 이름 없이 살았던 시절과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했던 시간,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언제나 벽장 속에 있는 기분 이었다.
 이런 기분을 정의한 용어가 따로 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커밍아웃 오브 더 클로젯(coming out of the closet)은 그런 벽장 속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자신의 선택으로 만들어 나가는 행동이라는 것도 성적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내는 과정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러한 기회를 한 발송이 박탈했다는 것도. 조용히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필자 자신에게도 ’나의 정체성을 주장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우리는 인권을 너무 쉽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십대 인권을 말하며 십대 이반을 아우팅 시켜버린 한 방송의 취재진처럼, 성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있다며 부정적 시선으로 집단을 정형화시키는 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존재하고 있다. “가장 보통의 레즈비언”을 바라보는 일은 특별한 경험에서가 아니라 일상으로부터 얻어진다.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레즈비언 인권에 대해 정의 내려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관심만이 서로를 이해하는 절대적인 조건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소통하고 싶다. 동정하는 시선 속에서가 아닌 ‘사람을 사랑’하는 동등한 입장을 가지고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다.
 글=아종욘(한국 레즈비언 상담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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