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교정에 사랑을 내려놓고
정든 교정에 사랑을 내려놓고
  • 신현숙(불문) 명예교수
  • 승인 2009.03.02 1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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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여년 살아온 연구실을 말끔히 정리하여 비우고 열쇠를 조교에게 넘겨주었다. 겨울 해는 짧아서 어느 새 어둑어둑해진 교정이 적막하다. 인문사회관 이층 로비의 넓은 유리창 가에 앉으면, 자작나무들이 둥글게 모여 서 있는 도서관 뒷켠 작은 숲과 옆 길, 스머프 동산, 그 너머 행정동의 붉은 벽돌 건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겨울방학인 탓인지 텅 빈 교정이 고즈넉한데, 문득 정문에 한 학생이 나타나더니 스머프 동산의 오솔길을 따라 급한 걸음으로 다가와 대학원 건물 계단을 뛰어 오른다. 묵직한 가방이 그녀의 등에서 출렁인다. 잠시 후 마주 보이는 대학원 3층 구석진 세미나실에 불이 켜지고, 캔 커피를 손에 든 채 컴퓨터의 모니터를 열심히 들여다보는 네 모습이 보인다. 졸업 논문을 쓰는 중이니? 아니면 작가 지망생이거나 혹은 취업 준비 중?

 

젊고 아름다운 너!

인생에서 청춘은 자신에게 솔직할 수 있고, 꿈을 꿀 수 있고,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는 아름다운 시기이다. 그러니 네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어라. 경제적 보상이 금방 주어지지 않아 가난하고 소외되는 기간이 있더라도 네가 좋아하는 일, 며칠 밤이라도 그 일에 푹 빠져서 즐기면서 창조해나갈 수 있는 일을 찾아내 너의 일생을 걸어라. 그런데, 너도 알고 있지? 남들보다 머리 하나쯤 키가 큰 '실력'(!)을 준비하고, 프로답게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어야 다가온 기회를 볼 수 있고, 붙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원하기만 한다고 꿈이 저절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실력과 그 사용법을 익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패가 있어도 두려워하지 마라. 실패해보지 않고서는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는 법! 실패는 성공으로 다가가는 하나의 단계이다. 

너에게 내 젊은 시절의 가슴 저린 후회를 얘기한 적이 있던가? 
프랑스 유학시절, 나는 유럽인 친구들과 그리스 엘리꼬나 산에 있는 성 루까 성당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 때, 우리 팀 중 몇몇이 등산 내기를 했었지. 온 힘을 다해 맨 먼저 산 위에 오른 나는 자랑스럽게 아래를 내려다보았어. 산 중턱쯤에서는 몇몇 친구들이 가져온 책을 참조하며 멀리까지 지형을 측정해보면서, 바위틈의 잡초들을 들춰보면서, 그리고 다리 아픈 프랑스 여학생을 부축하면서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어. 아, 지금도 나는 부끄럽다! 지금도 나는, 그 산 중턱에서 정상까지 사이에 어떤 식물과 꽃들이 자라고 있고 바위들의 모양은 어떠한지, 마을의 형세는 어떤지, 그 여학생은 얼마나 다리가 아팠는지, 모른다. 너는 자연과 대화하면서, 너의 성공의 열매와 기쁨을 이웃과 나누면서, 너의 삶을 온전하게 향유하렴.

이제 정든 교정에 사랑을 내려놓고 떠나야할 시간이다. 언제라도 돌아보면, 덕성은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것은 덕성여대를 둘러싼 자연의 풍광이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다. 도서관 불빛이 조용히 캄캄한 밤을 밝히고 있고, 대학 건물들 여기저기에 밤새껏 불 켜진 작은 방들이 있고, 꿈을 만들어가는 젊은 열정들의 고뇌가 영롱한 빛을 발산하기 때문에 덕성은 아름답다. 그리고 우리, 서로 깊이 이해하고 신뢰하는 구성원들이 있어 덕성은 더욱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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