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담는 사진사
소리를 담는 사진사
  • 이경라 기자
  • 승인 2009.09.1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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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속에 파고든 노랫자락

심장이 쿵쾅거리는 찰나의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국악전문 기획/음반제작사 <악당(樂黨)이반>의 김영일 대표 역시 긴장된 가슴 떨림을 경험하였다. 그에게는 유명 사진작가에서 국악음반 제작 회사를 차리게 된 인생의 전환점이 된 순간이었다.
한 잡지의 의뢰를 받아 젊은 국악인들의 사진 촬영을 진행하던 때였다. 한 젊은 여성 소리꾼, 채수정 선생의 소리하는 모습을 담으려 했던 그는 그녀가 부르는 단가 ‘편시춘’이 스튜디오에 울려 퍼지자 무엇에라도 홀린 듯 셔터를 누를 수가 없었다. “아~서라~세에~상사~쓸~데없다~.” 수많은 유명인사들 앞에서도 전혀 마음의 동요 없이 셔터를 눌러대던 그가 처음으로 겪은 생각지 못한 순간이었다.
이후 국악의 매력에 빠져든 그는 소리 채집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고가의 이동식 녹음기, 마이크 장치를 장만해 전국의 소리꾼들을 찾기 위해 산을 넘나들었다. 그렇게 모은 300여 장 분량의 마스터 테이프를 녹음하기에 이르렀지만 제작회사 입장에서는 돈이 안 되는 음반을 제작하지 않으려 하는 게 당연했다. 결국 그는 국악전문 기획·음반 제작회사를 만들기를 결심했다. 지인들은 그의 의견에 반대표를 던졌지만 아내만은 가족들 밥만 굶기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2005년 3월 국내유일무이의 국악전문 법인회사로 시작된 것이 <악당이반>이다. 국내유일무이인 만큼 보고 배울 다른 회사도 없었고 동업하는 회사도 없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다. 사진작가 일을 동업하고 있지만 역시나 가장 힘든 것은 금전적인 문제이다. 무엇보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함께 녹음 작업을 하고도 음반을 못 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녹음은 400여 번 했지만 음반은 30장 정도가 나왔을 뿐이다. 음반이 나온다고 해도 20장 정도가 팔리니 말 다한 셈이다.

 

 

 

 

 

 

 

 

 

 

들리는 가치의 소중함

<악당이반>은 다른 제작회사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녹음을 하는 ‘퓨어 레코딩’이라는 녹음 방법을 고수한다. 한마디로 순수 녹음이라는 말인데 녹음 중에 편집을 하거나 기계장치를 이용한 음향 변형이나 음의 가감 등의 인위적인 작업은 하지 않는다. 물론 연주자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녹음이 부담이 되고 가혹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진정한 국악인이라면 한 번에 끝까지 자신을 내보일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이다. 퓨어 레코딩만이 연주의 생생함과 연주자의 호흡이 어우러져 연주를 보는 듯한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그도 처음부터 국악에 관심이 많고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채수정 선생의 소리를 듣기 전에는 차에서 흘러나오는 국악 라디오 방송을 꺼버리기 일쑤였고 기생놀음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흥을 돋우고 맞추는 정도의 의미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고 의미를 둘 수 있을 만큼의 지식도 없었다. 하지만 사진작가 일을 하면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 것을 담는 일은 많이 하는데 들리는 것은 담지 않고 그냥 버려버리더라는 것이다. 그도 들리는 것의 가치적 소중함을 몰랐다면 소리를 담는 일련의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 일테지만 그는 국악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담아내기 시작했다. 

'특별함'이 아닌 '일상'으로 다가가기

사실 그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국악보다는 클래식을 더 좋아한다. 미샤 마이스키(Mischa Maisky)나 자클린느 뒤 프레(Jacqueline Mary Du Pre)같은 첼리스트들의 연주곡을 들으며 비교해보고 분석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그는 국악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10년이 넘도록 우리의 소리를 찾아 장비들을 메고 여기저기 찾아다녔고 듣고 또 듣고 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녹음 작업을 하면서는 연주자보다 몇 배는 더 많이 듣고 검토한다. 그러다보니 노래의 계명을 다 아는 것도 아닌데 노래가 머릿속에 박히고 가사를 따로 외운 적도 없는데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마치 영어단어를 열심히 외워 되는 공부가 있고 직접 외국에 나가 몸으로 체험해보고 익히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가 국악을 지켜가려는 노력을 하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국민이 국악을 보고 듣고 싶어도 어디서 봐야하는지, 어떻게 들어야하는지에 대한 정보의 노출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국악에도 퓨전이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서 전통국악과 新국악으로 나눠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전통국악을 알리기도 전에 新이라는 것이 먼저 생겨버렸다는 것. 국악의 입장에서 보면 버스에 타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해버린 셈이다. 그래서 국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슬픈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그가 당부하고 싶은 말은 국악을 특별대우해주지 말라는 것이다. 은유감을 갖지 말고 들리는 대로 듣다보면 ‘이런 것이 국악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듣기 전부터 이것이 전통음악, 국악이라는 선을 긋지 말고 다른 음악들처럼 편하게 듣고 즐기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는 말처럼 편하게 듣고 관심을 가져본다면 이번엔 아는 것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문화는 폭이 넓어진 다음에 깊어지기 마련이니 다음 단계는 국악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을 많이들 한다. 하지만 실천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되는가? 그는 국악을 한마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르는 음악이라고 정의 내렸다. 산조, 정악, 민요, 판소리 등등 국민들이 잘 모르는 음악들이 대부분 국악의 장르라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 것을 포장에서 세상에 내보내는 것에 너무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느리게 반응했다.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이 보이는 내용이 바로 들리는 것, 소리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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