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에 접속하다
호란,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에 접속하다
  • 권한라 마음산책 출판사 편집부
  • 승인 2010.01.05 17: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클래지콰이’의 보컬, 호란을 눈여겨본 것은 몇 해 전 한 일간지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소설가 김영하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옮긴 기사에서 호란은 책에 대한 생각을 또렷이 밝히고 있었다. 이를 테면 이런 말들.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를 매우 좋아해요. 한 호흡에 읽히고, 아무런 과장도 없이 이야기가 끝나더라구요.” “저는 김영하 씨가 억지로 소설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작가, ‘자기 얼굴 같은 자연스런 문체’를 가진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감동했다. 자기 언어를 가진 ‘여자 연예인’이 있다는 것에. <호란의 다카포>는 이런 감동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책 읽는 여자, 밑줄 긋는 남자> 진행자, <맨즈헬스>의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약한 그녀가 오랜 독서 편력을 정돈하여 33편의 서평을 담은 것이다.
 호란은 첫 번째 글 「난 밑줄을 긋지 않아」에서 “나의 책 읽기는 언제나 새롭기를 원한다. 적어도 책 읽는 중에 형성되는 고요한 결계(結界)를 어지럽히는 쓸데없는 참견쟁이들은 없기를 원한다”며 독서가 자신만의 가장 내밀한 행위임을 선언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에게 책 읽기는 오락거리이다. 독서는 ‘사색이 아니더라도, (중략) 일상이 흔들릴 정도로 정서적으로 동요되는 감성적 체험’이라며 ‘독서 오락론’을 여러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래서일까. <호란의 다카포>에서도 책 읽기 경험은 생생히 드러나고 그 평들은 예사롭지 않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앞에서는 ‘숭고하다는 표현이 따분하고 답답한 언어로 전락한 오늘날에도 어쩔 수 없이 숭고하다”며 감동해마지 않다가도, 요즘 유행하는 ‘칙릿(chick-lit)’ 소설들은 여성성을 강요한다며 비판하는 식이다. 그럼에도 이런 비판이 불편하지만은 않은 것은, 외부뿐 아니라 내면을 향하는 성찰 덕분일 것이다. 특히 자신의 음악 활동을 주저 없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응시하는 대목은 그 솔직함이 빛을 발한다. 그녀는 문화 상품 ‘호란’과 자기세계를 가진 뮤지션 ‘호란’ 사이의 갈등을 토로하기도 하고 자신이 가짜 뿔을 단 유니콘처럼 ‘가짜 이미지’를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기도 한다.

 함민복 시인은 ‘시집 삼천 원’과 ‘국밥 삼천 원’의 가치를 가늠한다. 하지만 그건 소설가 김훈의 말에 따르면 그가 “가난과 불우가 그의 생애를 마구 짓밟고 지나가도 몸을 다 내주면서 뒤통수를 긁는 사람”이라서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흔치 않다. 그러니 나같이 평범한 피에로는 그냥 계속 울면서 광고하고 다니는 수밖에. 열정을 염가판매합니다! 열정을 염가판매합니다!_139쪽에서

 이 책이 출간된 후 그녀의 글뿐만 아니라 소개한 책들에 대해 다양한 리뷰들이 올라왔다. 그중에는 호란의 시각과 다른 글들도 있었지만, 그러면 어떠랴. 호란의 ‘독서 오락론’에 따르면 이미 알고 있던 책은 ‘아하, 그 책’ 하며 반가워해주고, 읽은 책은 그 느낌을 비교해주고, 몰랐던 책은 새로운 책을 알게 되었다는 설렘을 만끽하는 것 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 가운데 내 또래 여성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건 덤이고.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