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금지법 논란. 여성권리존중과 생명우선론 사이에 서다
낙태금지법 논란. 여성권리존중과 생명우선론 사이에 서다
  • 이민정 기자
  • 승인 2010.03.1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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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월>의 데미무어

  지난 2월 3일 ‘프로 라이프(Pro-life) 의사회’에서 불법낙태시술을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를 고발하면서, ‘낙태문제’가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임신중절이 허용되는 특수한 경우(유전학적 정신장애, 강간 혹은 준 강간에 의한 임신 등)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낙태가 불가능하게 된 현실에 직면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낙태금지에 관한 여러 논란들을 어떻게 생각하며 받아들여야 할까? 이에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다함께’에서 주최한 ‘낙태금지논란 어떻게 봐야 하는가?’ 토론회에 다녀와 이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여러 의견들과 시각들을 듣고 왔다. 

 

  그들의 불편한 진실
  지난 7일. 쌀쌀하고 어둑어둑했던 오후 2시 반의 중구구민회관 3층 대강당에서는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라는 어중간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 넓은 강당을 꽉 채운 사람들만 봐도 새삼 이 주제의 무거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곧 단상위에 스크린이 내려지고 낙태금지법으로 인한 부정적 측면을 조명한 영화인 <더 월(If these walls could talk)>이 상영되었다.

  잠깐의 실수로 인해 생긴 아이를 낳고 싶지 않지만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불법 낙태수술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데미무어의 모습이 스크린 가득 비치고, 백 마디 말보다 강하게 다가온 진실은 강연장을 불편한 침묵 속에 잠기게 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에서 단상위에 마련된 연사석에 그날의 연사 두 명이 자리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다함께’의 활동가 정진희 씨는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이 낙태단속이 강화된다면 미성년자들을 비롯한 서민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라며 “그럴 경우 무리하게 무면허의사에게 수술을 받다가 목숨까지 해칠 수 있다. 이처럼 여성이 낙태할 권리를 존중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삶조차 계획할 수 없게 될 것이다”고 열띤 토론의 시작을 열었다. 토론자들의 의견을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먼저 낙태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부터 짚고 넘어가자.

 

  낙태를 보는 양 시각. 태아 생명권과 산모 선택권 
  일반적으로 낙태를 보는 입장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생명권이 어떤 권리들보다도 우위에 있고 태아역시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낙태는 죄악시 되어야 한다는 ‘태아 생명권(pro-life)’과 태아는 생명체라고 보기 힘들며 출산은 산모의 자유이기에 스스로의 선택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산모 선택권(pro-choice)’이 그것.

  먼저 태아 생명권 론의 경우는 성경에 나온 구절처럼 “하나님에 의해 형체와 영혼을 받은 것이 죽임을 당한다면 그것은 불의한 죽음이며, 반드시 보복이 가해질 것”라 낙태금지를 엄격히 표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론은 프로라이트 의사회로 대표되는 낙태금지법 찬성론자들의 핵심주장이 되었다.

  이에 반하는 산모 선택권 론은 현재 대부분의 사회적 여론이 동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이날 열렸던 토론자들의 발언도 이쪽 시각에 치우친 감이 있어, 찬반양론이 팽팽한 토론을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조금 부족함을 느끼게 했다.

 

  각계각층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들의 문제
  그래도 이날의 토론이 참가자들의 의욕에 넘치는 모습들과 각계각층의 다양한 생각과 시각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는 자체로 의미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연사들의 발언이 끝나자 토론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강당에 위치한 발언대에 서서 2~3분 동안 의견이나 궁금한 점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발언했다.

  발언대에 선 한 여성은 “낙태권의 박탈은 여성차별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며 “여성의 희생을 통해서 확보되는 것이 나라의 노동력인 만큼, 여성들을 출산의 도구로 볼 것이 아니라 궁극적인 여성해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낙태 금지법에 관련된 범위를 확장시켰다.

  또 실제 임신 중인 임산부도 발언대에 올라 “전에 ‘출산강국 코리아’라는 웃지 못 할 슬로건을 본 적이 있다”며 “낙태를 하는 사람들을 탓할 것이 아니라 가장 큰 문제로 열악한 출산환경 또는 사회 환경이 문제다. 아이를 낳는 것도 선택이지만 낳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의 의견도 그만큼 존중되어야 한다”고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했다. 임신을 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낙태금지 법안에 대해 산모의 결정역시 존중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은 상당히 놀라웠다.

  그리고 여성들뿐 일줄 알았던 토론장에 심심치 않게 보이던 남성들 역시 하나 둘씩 발언대에 올랐다. 자신을 현직의사라 밝힌 한 남성은 낙태허용의 기준이 되는 임신 24주와 28주의 차이에 대해 의학적인 소견을 밝혔으며, 한 남학생은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인한 낙태가 불법이라면 여성만 그 책임을 떠맡듯이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역시 함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외에도 간호사, 공무원, 학생 등 남녀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모여든 사람들은 제각기 여러 생각을 나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그들이 얼마나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는지 잘 보여줬으며 이것이 몇몇 국한된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 역시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1973년, 미국에서는 낙태를 여성의 권리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아이가 생기는 것은 신의 섭리라고 생각했던 그 시대에서, ‘임신은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므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거나 양육능력이 없는 미혼모들의 경우, 낙태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판결로 현대의 우리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여성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생명의 소중함 역시 부정하기 힘든 가치이니까.

  하지만 ‘불법낙태 현행범으로 걸릴 경우, 형법상 2년 여의 징역’ 이나, 진정한 생명존중을 위해 낙태문제를 꺼낸 것이 아니라 ‘출산율 감소’가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멀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가 그 스크린 속의 데미무어가 될 수도 있기에 이제는 ‘우리의 문제’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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