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덕성스러워야지 집안이 되고 나라가 된다’는 이 말을 항상 마음으로 되새기고 실천에 옮긴다는 박옥규 동문(약학 54).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동문의 힘의 원천은 바로 덕성여대에서 배운 교육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지금부터 박옥규 동문의 인생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역사 깊은 운현궁에서 강의를 듣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지요”라며 66년 전의 대학생활을 떠올리는 박옥규 동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진다. 1954년 입학해 2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학생회장을 맡아 활동했다는 그녀는 덕성여대에서 배운 것들이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는데 굉장히 큰 힘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 당시 송금선 총장은 ‘이해와 배려’가 몸에 배인 ‘덕성스러운 여성’이 되어 사회에 도움을 주며 살아야 한다는 정신을 학생들에게 교육시켰다고. 그 때문일까. 대학생 때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이 한국여약사회 후원회 회장직을 맡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이해와 배려가 생활화되면, 모든 일이 쉽게 풀려요. 난 16명이라는 대 식구와 함께 사는 시집살이를 오랫동안 했었어요. 이해와 배려의 정신으로 그 많은 식구를 대해다 보니까 덜 짜증스럽더라고요(웃음). 봉사정신을 생활에도 적용했죠.” 박옥규 동문은 이러한 성품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요즘은 취직을 위해서 억지로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언뜻 보면 나쁜 현상으로 보이지만 억지로라도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고, 내가 이 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되요. 그렇게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내가 찾아가기 이전에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생긴답니다. 우리 후배들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남을 돕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뛰는 일이라고 하는 박옥규 동문. 이런 동문이 있기에 우리 덕성여대의 이름이 밝게 빛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