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사실은 할리우드의 뒤로 <300>
역사적 사실은 할리우드의 뒤로 <300>
  • 유재원
  • 승인 2011.01.03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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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대군을 일으켜 땅과 바다를 통해 그리스로 쳐들어왔다. 그의 주요 목표는 그리스 저항의 중심인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아테네는 10년 전인 기원전 490년에는 마라톤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뼈아픈 패배를 안긴 바 있어 페르시아로서는 응분의 보복을 해야 할 국가였다.
  한편, 페르시아의 대군이 그리스 땅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테르모필라이 협곡에서 일단 페르시아군의 진군을 저지하기로 결정했다. 이 협곡은 한쪽으로는 가파른 절벽으로 가로 막혀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질퍽한 습지로 되어 있어 소수의 병력으로도 능히 대규모 군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곳이었다. 또 협곡 너머 바다에는 에우보이아 섬이 있는데, 해협이 좁아 이곳을 지키면 페르시아 해군이 상륙하여 협공해 올 여지를 없앨 수 있었다. 이 해협의 방비는 해군력이 강한 아테네가 맡았다.
  테르모필라이 협곡의 방어는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가 맡았다. 그는 자신의 절친한 친구들이자 충성심이 강한 300명의 스파르타 결사대와 함께 스파르타를 떠났다. 이들 이외에도 그리스의 여려 도시 국가들에서 보낸 8,000명의 전사들도 테르모필라이로 모여 들었다.
  페르시아군은 워낙 대군이어서 협곡 앞에 진영을 차리는 데에도 며칠이 걸렸다. 게다가 크세르크세스 대왕은 엄청난 수의 군대를 보면 그리스인들이 목숨이 아까워 스스로 물러날 것을 기대하면서 각 부대를 보내 시위를 하도록 했다. 그러나 좁은 장소에서 수적 우세를 이용할 수 없었던 페르시아군은 좀처럼 완강하게 버티는 스파르타군의 방어벽을 뚫을 수 없었다. 크세르크세스가 자랑하는 최강의 부대 불사조 군단도 패퇴당하고 말았다.
  이때 에피알테스라는 이름의 그리스인 배반자가 대왕에게 산길을 통해 협곡의 뒤로 갈 수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왔다. 대왕은 최강의 부대를 이 길로 보내 스파르타군을 포위했다. 이런 사실을 전해들은 레오니다스는 포위망이 완성되기 전에 스파르타인을 제외한 모든 그리스군을 돌려 보냈다. 멀지 않은 도시 테스피아이 출신의 700명의 전사들은 스파르타인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심하고 남고, 결국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장렬하게 전사했다.
  영화 <300>에서는 전투 장면만 보여 주다 이런 귀중한 역사적 사실에 대서는 아무런 지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동안 내내 이에 대한 아쉬움이 떠나지 않았다.

유재원 <신화로 읽는 영화 영화로 읽는 신화> 저자  
       한국 외대 그리스-발칸어과 교수, 어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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