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좀 내버려 둬
엄마를 부탁해? 엄마를 좀 내버려 둬
  • 김은정(사회학) 교수
  • 승인 2011.04.09 18: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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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TV를 보다가 인기 아이돌 가수가 선전하는 CF를 보게 되었다. 각자가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다른 멤버가 “엄마에게 부탁해”라고 답해 주는 것이었는데 자기들끼리 몇 번 그 말을 반복하다가 머리를 맞대고는 질문한다. “엄마는 (이럴 때) 누구에게 부탁하지?” 그리고는 잠깐 고민하다 “아, XX(전자제품이름)에게 부탁하자. XX야, 엄마를 부탁해~”한다.

  이 CF를 보면서 든 생각은 다음 두 가지다. 1. 내가 곤란할 때 엄마는 그걸 해결해 주는 사람이다. 2. 그렇지만, 엄마가 곤란할 때, 엄마는 내게 부탁할 수 없다. 이러한 생각들은 몇 년 사이 문화의 중요 코드가 된 ‘엄마 마켓팅’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에서 시작된 문화계의 엄마 열풍은 이후, 영화 ‘애자’, 연극 ‘친정엄마’ ‘엄마와의 하룻밤’ 등 다양한 문화영역에서 변조를 만들며 인기 몰이를 하고 있는데, 이의 기본 구조는 ‘이기적인 딸’과 ‘희생적인 엄마’와의 관계다. 이 관계에서 딸은 매우 독립적이고, 똑똑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으나 엄마에 대해 이기적인 반면, 엄마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고, 가정에 묻혀 있지만, 그 딸·가족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존재로 상정되어 있다. 이 서사에서 결국 엄마는 소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 딸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다가 불쌍하게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비극을 맞아, 딸은 그간의 자신의 이기심을 반성하며, 엄마를 위해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이 부분에서 독자·관객들이 공감을 하고 있으며, 그것이 엄마 마케팅의 포인트가 되는 것이다.

  모녀 관계의 역할 구도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은 엄마가 아닌 딸의 역할이라는 것을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에 엄마에의 감정 이입 없이 딸의 입장에서 눈물 흘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나를 포함해서 누구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엄마’에게 희생적인 엄마의 역할을 기대하고 강요하는 것일까.

  사회학자 중 ‘베버’는 ‘이념형(ideal type)’에 대해 말한다. 이념형이란, 쉽게 말하면, 특정 사회에서 통용되는 개념이나 상(想), 이미지를 말한다. 이념형에 의해 위에서 논의한 ‘엄마’를 분석해보면, 우리 사회에서 왜 엄마에게 끊임없는 희생과 사랑을 요구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엄마, 그리고 엄마의 ‘모성’은 생래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댓가 없이 가족과 자녀에게 베풀어 져야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베버에 따르면, 이러한 ‘이념형’은 그냥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구체적인 대상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즉, 우리는 ‘이념형의 엄마’를 기반으로 하여, 진짜 우리 엄마를, 아내를, 그리고 종국에는 엄마가 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그에 맞추고자 한다는 것이다. 즉, 여성은 엄마가 되었을 때, 이상형의 엄마가 되고자 하는, 또는 이를 강요하는 무의식적인 압박 하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베버는 그의 저작에서 ‘이념형’이란 절대 불변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역사적 맥락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개인이 주어진 상에 대해 저항하고, 변화를 추구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지속된다면 그것은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그 성과가 가시화되어 결국 그 사회의 ‘상’, ‘이념형’은 변화해 간다는 것이다. 이제는 제발 희생서사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엄마’를, 우리 스스로 바꾸려 해 보자. 내가 그런 엄마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런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런 엄마를 기대하는 내 마음의 이기심을 없애려고 하는 것이 그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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