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사슬이 아닌 관계의 사슬
먹이사슬이 아닌 관계의 사슬
  • 김진우
  • 승인 2011.05.0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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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지만 고백할 이야기가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과 달리 원래 꿈이었던 무역을 다룰 수 있는 공사(公社)를 다닐 때였다. 당시 상공부(지금 지식경제부) 소속으로 정부부처와의 협력관계하에서 일을 하면서 두어 번이나 전화로 공무원과 말다툼이 일어났다. 그쪽에서 반말을, 나도 질세라 덩달아서 반말을 한 게 사단이었다. 어김없이 그 공무원은 부장님을 찾았고, 부장님은 ‘그 친구가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나를 야단치면 왜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하려는데 부장님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또 비슷한 유형의 언쟁이 오갔고, 드디어 부장님이 나를 호출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상공부 직원은 3년마다 해외에서 근무해야 하잖아? 근데 내가 생활해 보니 원수는 꼭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더라구.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던 사람과 같은 나라에서 근무하게 되더라는 거지. 같이 더불어 사이좋게 관계를 맺는 것, 매우 중요한 덕목이야.”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지혜를 일러주시는데 구구절절이 옳으신 말씀이다. 어찌 되었건 그 사무관과 맞짱뜨려면 내가 부장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데…. 20년이 걸리잖아? 그래 좋다! 내가 사무관이 되고 말지.

  사무관이 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다. 몇 달 지나지 않아 나는 사표를 던졌고 2년 뒤에 보건복지부 사무관으로 입성했다. 관(官)이 민(民)을 업신여기는 풍토에 이를 갈면서 나 자신을 다잡고자 안간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는 또 다른 먹이사슬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장도, 차관, 장관도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국회였다. 상임위원회 대기실에 쭈그리고 앉아 하릴없이 시간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정책적 기능이 유난히 약한 우리의 입법부는 안타깝게도 부지런하면 정책은 더욱 더 단타성으로 오합지졸을 요구했다. 장기적 안목이 없는 것에 공무원만 탓할 일은 아니다. 국회가 밀어붙여 당장이라도 답을 요구하면 행정부는 이를 실행하지 않을 수 없다. 연봉으로 몇 십억을 받는 CEO들이 기업이나 금융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하도급 업체의 납품단가를 후려치거나 분식회계로 재무재표를 주물럭거려 효율성이 높인 것으로 보여야 하는 것처럼. 이후 공무원을 그만 두고 대학교에 몸을 담게 되었다. 자유와 주도적인 삶이 무엇인지, 얼마나 소중한지 몸소 깨닫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변화의 핵심에서는 한 걸음 떨어져있는 느낌이다.

  학생들이여! 더 좋은 위치에 있지 못한 안타까움이 마음속에 깔려있는가? 위에서 보듯이, 보다 상위의 먹이사슬에 위치하고자 발버둥 쳤지만 깨달은 것은 ‘어디에 있든지 관계의 사슬 속에 있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평가하는 더 좋은 곳에 있다고 더 행복할 것 같은가? 반드시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과 열린 세계를 향한 도전정신이 늘 서열화 되고 점수로서 평가되된 틀에 낙마해서는 안 된다.

  또 대학 4년 동안에 모든 것을 승부 걸려는 과욕도 때로는 버릴 필요가 있다. 어쩌면 나이 서른 중반까지가 승부수를 띄우는 갈림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스무 살 그 청춘의 때로부터 15년 정도는 자신의 에너지를 확인하고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지닐 수 있는 영역을 개척하고 일구어 나가는데 써야 하지 않을까? 그로부터 65살까지 써먹을 수 있다면, 자신의 실력에 기초한 자신감으로 30년을 살 수 있다면 그게 행복 아닐까? 무엇이 되려고 하기 보다는 주어진 관계 속에서 즐기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면 어느새 그 무엇이 되어 있는 자신을 보게 되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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