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 그들은 어디에 서있는가
시나리오 작가, 그들은 어디에 서있는가
  • 이경라 기자
  • 승인 2011.05.07 1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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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고은 씨가 이웃에게 보낸 편지

  지난 1월 질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故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의 죽음은 영화계는 물론 수많은 예술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2의 최고은’이 생기지 않아야한다며 영화·예술계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글로 표출해왔다.

  그녀의 죽음과 더불어 한국영화를 이끌어가는 충무로에 시나리오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왜 충무로에는 시나리오가 부족하고 故 최고은 씨 같은 열정적이었던 작가가 죽음을 면치 못했을까?

 

故 최고은 씨의 작품 <격정 소나타>

영화계 최악의 처우

  화려한 영상기술과 빼어난 미모의 배우들, 소름끼치는 연기력 뒤에 놓인 시나리오 작가들에 대한 처우는 최악이다. 자연스레 시나리오를 쓰려는 작가들도 점점 줄게 되었다. 또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감독이나 연출자가 되는 관문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시나리오 작가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헐리우드는 영화를 만들 때 필요한 기술들이 파트별로 잘 나누어져있어 시나리오에 대한 보수도 높고 작가에 대한 대우도 좋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시나리오를 쓰며 연출로 옮겨가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왔고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도 많아 시나리오 작가의 위치는 매우 불안정하고 오래 이어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영화계는 시나리오 작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낮고 개런티를 주더라도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적게 주고 그 돈을 아껴 감독에게 주는 것도 일상화됐다.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인식이 이렇다보니 故 최고은 씨와같이 시나리오 작업에만 몰두했던 열정을 가진 작가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뜯어고친 똑같은 시나리오

  한 시나리오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로서 충무로에서 산다는 것은 작품이 늘 남에게 난도질당하는 것, 혹은 대기 순번을 받고 끊임없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나리오 작가가 쓴 작품이 그대로 영화화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작가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바꾸고 고쳐서 ‘개작’된다. 일고(첫 번째 원고)가 나와도 원고를 쓴 시나리오 작가 말고도 제작자 여럿이 붙어 마음대로 장면들과 이야기를 바꾸는 것이다. 개중에는 각본자 명단에 이름도 안 올리고 시나리오 수정에 참여하기도 하고 엔딩 크레디트 각본자 명단에 감독이나 제작자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허남웅 영화평론가는 “우리나라 영화제작 80% 정도를 CJ그룹에서 관여하고 있다. 시나리오가 나오면 2, 30대 여성 관객을 모아 장면마다 관객들의 흥미도나 감정변화 등을 분석해서 재미가 없는 부분이나 감동이 적은 부분의 내용을 고쳐버린다고 한다”며 “이렇게 되면 글 쓰는 사람의 자체적인 리듬이 깨져버려 영화가 모두 비슷한 형태들이 되어버린다. 작가의 개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시나리오를 재탕하는 수준의 비슷한 영화들이 나오게 된다”고 꼬집었다.

  결국 시나리오 작가는 본인의 개성을 드러내고 역량을 발휘해 참신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아닌 감독과 프로듀서가 원하는, 제작자들이 필요로 하는 시나리오를 쓰게 된다.

 

꿈꾸는 시나리오 

  사실 공모전 등을 통해 제작사 입맛에 맞춘 시나리오로 한방에 데뷔를 하려는 시나리오 작가 준비생들이 많다. 이 또한 상업영화를 만드는 제작사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고집하고 아니면 무시해버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또한 2007년 이전에는 감독으로 데뷔하기가 쉽다고 생각해 영화를 찍고 싶은 감독이 있으면 직접 시나리오를 써야한다는 공식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몇 년째 충무로에 시나리오가 없다라는 말이 도는 것은 시나리오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감독이나 연출이 되기 위한 관문이 아닌 시나리오 작가 자체로서 시나리오를 쓸 사람이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면 시나리오 작가들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한국영화의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김희정 감독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신예 감독과 작가들을 위해 시나리오 집필에 필요한 기획개발비 지원과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오픈마켓이 더욱 활성화 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처럼 투자자들이 시나리오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했다가 최소한의 고료도 주지 않고 팽개쳐버리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故 최고은 씨의 죽음과 같은 불상사가 또 일어날 것이다.

  한국영화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 창작력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과거와 같은 감독과 프로듀서, 시나리오 작가의 삼각관계가 절실한 것도 그 때문이다. 여전히 재능 있는 젊은 시나리오 작가 준비생들은 꿈을 꾸며 충무로에 모여들고 있다. 그러나 충무로의 관행이 그들의 재능을 불필요하게 소모시키지 않으려면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 마련의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모든 것은 원고지 위에서부터 시작된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영화는 원고지 위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화려한 영상기술과 상상을 초월하는 컴퓨터그래픽을 입히기 전에 우선 시나리오가 존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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