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문예상 소설부문 응모작
학술문예상 소설부문 응모작
  • 승인 2003.11.23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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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바람처럼

‘박승혜 - 1989년 12월 13일 3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다. 1984년 4월, 소설 ‘풀잎눈물’ 로 등단. 청솔 문학상 등 4개상 수상. 1985년 남편과 함께 독일로 유학. 소설 ‘스쳐가는 강바람’, ‘꽃반지’와 수필집 ‘뮌헨에서 지는 꽃’ 이 베스트셀러로 꼽힘......’

나는 읽고 있던 7년이나 지난 여성잡지를 접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내 마음은 그리움으로 젖어들었다. 창으로 하늘을 보았다. 2시 무렵인데도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은 몹시 무거워 보였다. 거리엔 어두운 빛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드문 지나갔다. 날씨는 그리 춥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이렇게 한적한 겨울 거리엔 비가 퍼부어질 것 같았다. 스산한 바람이 앙상한 나무 가지 사이를 휘휙 소리를 내며 매섭게 지나가고 있다. 그 나무 위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두 놈이 맴을 돌고 있었다. 그런 풍경을 고요함 속에 지켜보다 거실에 세워둔 무거운 갈색 장식장에서 원고지 뭉치를 꺼냈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원고를 탁자에 올려놓으니 두꺼운 먼지가 훅 일었다.
1999년 1월. 오늘 승혜 생각이 났다. 스스로 자기를 죽음으로 몰고 간 승혜가 떠올랐던 것이다. 아니 오늘은 죽은 승혜와 약속한 그 해이기에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박승혜. 겨우 32년 밖에 살지 않았으나 나보다 더 오래 살았던 사람. 아직 세상의 밝은 빛을 보지 못한, 승혜가 남기고 간 원고가 지금 내 손에 쥐어져 있다. 밀폐된 비닐커버에 나프탈렌과 함께 넣어 보관했는데도 승혜의 원고는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변색되어 버린 세월의 흔적일 것이다. 7년 전에 승혜가 죽고 그녀의 유품 중의 일부가 나에게로 배달이 되어왔다. 이 원고는 그 중에 하나였다. 끼어있던 편지에는 ‘힘든 겨울이 10번 지나면 세상에 내 놓아줘.’ 라고 씌어져 있었다.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포장을 풀었을 때 많은 다발의 이 원고 꾸러미가 나왔었다.
승혜의 원고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천천히 수화기를 들었다. 긴장되는 마음을 크게 한숨을 쉬어 풀고 둥그런 번호판의 숫자를 눌렀다. 잠시 후에 ‘고려출판입니다.’ 하는 남자의 응답 소리가 수화기 저편에서 들렸다.
“네, 저는 이인애라고 하는 사람인데..저...박승혜씨의 원고를 보관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내 삶은 끝없는 욕망을 사모한다.”
나는 발표를 마치고 자리에 앉는 승혜를 향해서 방긋 미소를 지어보였다. 승혜도 나를 향해서 더 큰 미소를 던졌다.
“정말 근사한 글이에요. 고등학생의 글이라고는......”
승혜는 예전부터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받아왔다. 결코 예쁘지는 않지만 웃는 모습이 가장 밝은 아이. 아이들, 선생님들 모두는 깊은 눈빛을 가졌고 무엇이든 아주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아는 승혜를 좋아했다. 그런 승혜와 친구라는 사실은 그것만으로도 나를 기쁘게 하고 충분히 흥분시키는 것이었다.
“승혜야, 노트 좀 보여줘.”
나는 언제나처럼 작문시간이 끝나고 승혜에게 작문 노트를 빌렸다. 이 친구의 작문 노트를 조용히 읽으면 승혜와 내가 하나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노트를 빌리는 것이다. 나는 그런 기분을 즐겼다.
“나의 생은 하늘같이 깨끗하길 바래.”
승혜는 나에게 자주 생이니 삶이니 하는 깊은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승혜가 말하는 하늘을 고개 들어 바라보았다. 아주 옅은 그렇지만 너무나 하얘서 눈이 부신 구름이 느린 걸음으로 남서쪽으로 두둥실 흐르고 있었다.
“그럼 나는 바다 같은 삶을 갖길 바래.”
승혜의 말에 나는 항상 이런 식의 대답을 해 주었다. 승혜는 이럴 때 나를 꼭 끌어안았다.
“ 인애야, 넌 유일하게 나를 아는 사람이야. 난 너로 인해 외롭지 않아.”
승혜는 헤세의 소설 중 한 구절을 외기 시작했다. ‘지와 사랑’에서 골드문트가 하는 말이었다. 승혜는 헤세나 뮐러와 같은 독일의 문학가들을 사랑했다. 반면에 나는 프랑스 문학의 낭만을 좋아했지만 우리는 통하는 구석이 참 많았다. 승혜가 독일 문학의 한 구절을 소리내어 읽으면 나도 질세라 프랑스 문학에서 기억나는 부분은 모조리 외워버렸다. 승혜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문장을 외웠던 기억도 있다.

“아니...이 원고가 왜 이제야......”
승혜의 원고를 받아든 출판사 직원은 몹시 놀라워했다. 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 제목없는 원고는 승혜가 죽기 전까지의 모든 심리가 응집되어 있는 승혜가 아니면 아무도 쓸 수 없는 정말 진한 글이었다.
“제목이 없군요. 제목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바람처럼’이요.”
승혜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고 나오는 길이 그렇게도 허전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10년간 비밀같이 지켜온 것이 폭로된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상대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구 쏟아지는 비는 아니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였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가 조금씩 젖어가고 있었다. 아마 기온이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아마 이 비는 진눈깨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원고가 책으로 나오게 되면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에 제멋대로 해석되어 왔던 승혜의 오래전 죽음은 이제 하나로 묶일 것이다. 승혜는 자살을 했다. 지금 사람들은 이해를 할 것이다. 승혜가 얼마나 극심하게 겨울을 탔고 외로워했는지, 자기를 온 세상에서 가장 힘겨워했다는 것과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혼자만의 공간을 만든 그 아이를 말이다. 자기를 죽음으로 내동댕이 쳐버린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기를 사랑했기에 죽어간 사람. 겨울에 간 친구이다. 쓸쓸하게 많은 이의 어처구니없는 죽음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 10년이 지난 이 마당에 다시 승혜의 죽음을 꺼낸다는 자체가 우습기도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승혜의 글은 반드시 세상에 나와야 한다.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깨달아야 한다. 얼마나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있는지. 자기를 온전히 이해하고 본질을 알아차리면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자기는 이미 그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학교는 너무 의미가 없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을 배울 수가 없어.”
오랜만에 만난 승혜의 첫마디였다. 춘천의 어느 호숫가의 예쁜 오두막 찻집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갑자기 달라진 서로의 위치가 조금은 어색했다. 나는 전과 달리 조금 주눅이 든 모습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 앞에 놓여있는 찻잔의 무늬를 손으로 따라갔다.
“승혜다워...그래도 나는 니가 부러운데.”
승혜는 쓸쓸하게 웃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승혜는 원하던 S대 독어독문학과로 진학을 했고 나는 D여대로 진학을 했었다. 그렇지만 가정 형편상 더 이상의 배움의 길은 포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질투가 아닌 정말로 승혜가 부러웠다. 그 아이는 질투란 단어가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도 당연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독일로 가고 싶어. 배우는 것이 없더라도 괜찮아. 지식과 지성은 별개니까.”
승혜는 앞에 놓여있는 잔의 차를 깊게 들이마셨다. 승혜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기에 대해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자기를 알고 원하는 것이 뭔지 아는 아이였다.
“나도 다른 나라로 가서 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여건이 안되니까.”
나는 승혜의 이야기를 맞추려고 일부러 말을 꺼냈다.
“나는 인애가 원하는 것을 할 거라고 믿어. 인애는 나와 다르게 강하잖아.”
작은 통기타의 리듬만이 느껴졌다. 둘 사이에 아무런 말이 오가지 않았다.
“승혜는 강해. 난 동생들도 있고 하니까 생활력이 강해 보이는 것 뿐이야. 넌 너 혼자니까 그렇게 느끼는 거고. 내가 보기엔 승혜 너도......”
내 말에 승혜는 고개를 저었다
“ 아니, 난 겉으로만 강해.”


승혜는 정말 속으로는 연약해 빠져서 자기를 물 흐르듯이 그냥 내맡겨 버린 것일까. 그때는 아닐 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승혜를 약한 존재로 끌고 간 것인가. 아주 많은 것을 가진 여자였다. 나처럼 무능한 부모와 넷이나 되는 동생들 뒷바라지에 학업을 포기한 것과는 정반대로 잘난 부모에 의해 키워진 귀한 외동딸이었다. 같은 취미의 독일 문학을 연구하는 남편을 가졌고 예쁜 아기와 그렇게도 원하던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완벽한 그 아이가 귀국한 지 한 달 만에 세상의 연을 끊을 줄은 몰랐다.
“엄마, 무슨 생각해요?”
고등학교를 다니는 딸이 물었다. 키가 큰 평범한 여고생이다.
“엄마 옛날 친구 생각.”
딸 연우는 내가 앉아 있는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아서 내 목에 팔을 두르고 어린애처럼 어리광을 부리며 말을 한다.
“엄마 친구라면 내가 한번 맞춰볼까? 주환오빠네?”
“아니.”
나는 빙글빙글 웃으며 그런 연우를 지켜봐준다.
“그럼...유진이네 아줌마?”
연우는 제가 알고 있는 내 친구들을 하나하나 말했다. 나는 고개만 저었다. 연우가 맞출 리가 없다. 승혜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도 한 적이 없다. 이혼한 내 남편에게 조차도 승혜에 대해서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내가 모르는 엄마 친구도 있나?”
연우는 약간 배신감이 드는 모양인지 목에서 팔을 풀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연우의 뺨을 쓰다듬었다. 승혜와 나는 연우만한 나이였을 때 꽤 심각한 생각만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은데 내 딸 연우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요즘 아이들의 추세인지 연우는 사소한 것에 더욱 흥미를 보이고 엄마와 친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이 보인다.
“ 응. 연우가 모르는 엄마 친구가 하나 있어.”
우습게도 딸인 연우에게 조차 승혜와의 추억을 빼앗기기가 왠지 싫었다.


“축하해. 인해야. 다시 공부를 시작할 줄 알았어.”
승혜는 진심으로 나의 복학을 축하해 주었다. 이미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나는 다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기쁜 마음이 더 컸다. 대학교를 1학년에 그만 두었기 때문에 나는 또 1학년이지만 승혜는 이미 졸업 후에 대학원에 진학한 상태였다.
“너 요즘 사귀고 있는 사람 있다는 이야기 들었어. 어떤 사람이야?”
승혜는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 말을 하는 승혜에게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나란 똑같이 독일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인데 나만큼이나 독일을 사랑하는 사람같아.”
먼 곳을 응시하며 작은 입으로 말을 하는 승혜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처럼 보였다. 승혜답게 멋진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너의 끝없는 독일에 대한 열망이 보기 좋다.”
나는 고등학교 이후 국문과에 진학을 하면서 프랑스에 대한 미련을 접은 지 오래였기 때문에 승혜의 놀라운 추진력이 더없이 멋져보였다.
“아무래도 독일엘 가야겠어. 지금은 마치 수박 겉만 핥는 기분이야. 뛰어나게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승혜는 예전만큼 그녀의 생이라든지 진정한 삶의 표본에 대한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승혜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기를 기대했지만 우리가 헤어질 때까지도 내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나는 승혜가 세속화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 적잖이 실망스러웠다
“인애야, 이 호수를 봐. 유일하게 정이 가는 곳이야.”
승혜가 가리키는 호수는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잔잔한 물결이 움직이는 것을 보니 바깥엔 선선하고 부드럽게 바람이 부는 모양이었다. 승혜는 여고시절 때와 같이 헤세의 소설 구절을 외웠다. 그런 승혜를 보며 나도 떠오르는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인애가 지금 하는 말이 여가와 정말 잘 어울린다. 아, 이 호수는 인애를 닮았나봐.”
승혜는 이때 ‘스쳐가는 강바람’ 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3년이 지난 후 승혜는 4년 전부터 사귀고 있던 ‘윤영규’라는 사람과 결혼했다. 하얀 면사포를 뒤집어쓰고 고개를 숙인 승혜를 보면서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승혜는 결혼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인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과 똑같이 사랑을 하고 똑같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이렇게 결혼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승혜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했고 결혼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까와는 반대로 승혜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에 대해 안도했다. 지금까지 나는 승혜를 너무 지나치게 미화했던 것일까.


승혜가 결혼하던 해, 1984년에는 결혼 뿐 아니라 승혜의 능력이 빛을 뿜은 첫 해이기도 하다. 4월경에 ‘풀잎눈물’ 이라는 소설을 발표하자 그 소설은 정확한 필치와 섬세한 표현, 관찰로 신인의 선을 넘어선 인기를 얻었고 모두가 주목하는 당당한 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6월에 올린 그녀의 결혼은 항간에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풀잎눈물’은 아직도 우리 집 책장에 꽂혀있다. 얼마 전에 읽을거리를 찾던 연우의 눈에 띄어 그 소설은 연우에게도 읽혀졌는데 세대가 다른 이 아이도 뭔가 깊이 느낀 모양이었다.
내가 그 어렵다는 ‘풀잎눈물’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나에게는 무척 익숙한 언어들이었기에 괜한 우월 비슷한 것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차례를 거듭하여 읽는 승혜의 소설은 나에게도 어려운 말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소설 ‘풀잎눈물’ 로 승혜는 청솔 문학상을 비롯한 4개상을 수상했고 정말 거대한 작가로 거듭 태어났다.
1985년 승혜는 남편과 많은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김포공항을 떠났다. 그렇게도 갈망하던 독일로 떠난 것이었다. 승혜는 전에 볼 수 없었던 가장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향해 손을 크게 흔들었다. 나도 가슴께로 손을 올려 살짝 흔들어 주었다. 대단한 손을 흔들며 아기를 가슴에 안은 채 그렇게 승혜는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나는 승혜가 들어간 문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리고 살아서 숨쉬는 승혜를 본 것은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이틀뿐이 되지 않았는데도 아주 반응이 좋습니다.”
먼저 번에 원고를 넘겨주었던 출판사 직원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래요? 잘 되었어요. 네, 고맙습니다.”
짧게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덩달아 흥분하여 길게 말하고 싶지 않다. 당연한 결과였다. 승혜에게는 마력과 같이 사람을 매료시키는 그 애 만의 문체가 있고 죽음으로 다가서는 그 아이의 이야기에는 누구라도 빠져들지 않을 수가 없었을 테니까.
“엄마......”
전화를 끊고 보니 연우가 서 있었다. 연우의 눈에는 눈물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고 왼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 있었다.
“엄마, 박승혜...박승혜, 이분이 엄마 친구였어요?”
연우는 내 곁에 조용히 앉았다.
“내가 너무 부끄러워졌어요. 이 분은 정말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요.”
연우는 계속 훌쩍거렸다. 승혜의 글이 이 작은 여고생의 가슴을 얼마나 적시었을 지는 나도 잘 안다. 그런 승혜의 매력에 모두들 빠져들었고 나 역시 승혜에게는 꼼짝도 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가만히 연우의 머리칼을 만져주었다.
오늘 아침에는 다른 날보다 늦게 일어났다. 주번인 연우가 학교에 간 것을 확인하고 주방으로 가 찬 우유를 유리컵에 따라 한 손에 들고 거실로 나가려다 식탁에 놓여진 책 두 권을 발견했다. 책을 살펴보았다. 바람처럼......하늘색 표지의 공허함이 비쳐지는 책이었다. 나는 우유컵을 식탁에 내려놓고 책을 펼쳤다. 아직 손에 익지 않은 새 책이다.

‘독일의 문학가 루이제 린저는 말했다. 자신의 전생은 한국인이었을 것 같다고. 루이제 린저와 나는 자리를 바꾸어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이 곳이 마치 고향처럼 느껴진다. 독일의 공기가, 독일의 햇살이, 독일의 모든 것이.’

석양이 길게 드리워질 무렵,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한강 위를 건너고 있다. 수면위의 저것은 무엇인가. 눈이 따갑도록 반짝이는 저것은. 겨울의 시린 햇살이 반사되어 유리창을 통해 따갑게 내 눈에 투영되고 있다, 늘 지나치던 것인데도 이렇게 특별하게 보일 때가 있구나......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두려웠지만 점차 익숙해진다. 길을 가다가 반갑게 인사하는 우리의 이웃이 푸근하고 휴일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발코니에서 독서를 하는 일상들이 행복하다. 그저 독일을 알고 쓰고 싶은 마큼의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승혜의 딸 영혜가 4살이 되는 해였다. 분명히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을 것인데도 승혜의 글은 활짝 웃고 있었다. 너무 평화롭고 감상적이었기에 나는 오히려 불안해지고 있었다. 마치 한껏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 그런 평화롭고 잠잠한 들판의 한 그루 나무처럼 위태롭게 승혜는 이상을 그리고 있었다. 아니 들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두렵다. 내 일생을 걸고 나는 바보같이 한가지에만 광적으로 집착했었다. 나의 동경이 익숙해지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공포스럽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라는 인간은 목표와 괴리되는 것일까. 그것은 하루살이와 무엇이 다른가. 나는 그토록 갈망해 왔던, 소녀 시절부터 끊임없이 내 삶의 목표로 삼아왔던 독일에 왔다. 이 곳에서 참 많은 사람들과 부닥치고, 차가운 공기와 많은 소리에 휘감겨 봤다. 그런데...나는 막다른 곳에 와버린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컴컴한 동굴에 혼자 갇히고 말았는데 아주 희미한 빛조차 없고 이미 극도로 탈진해 버렸다.’


나는 이혼을 했다. 독일에 있는 승혜에게 나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승혜는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다. 계속 독일로 편지를 보냈지만 나는 이후로도 승혜의 편지를 받을 수 없었다.
“승혜, 우리나라에 있어.”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만남이었다. 동창들은 옛 이야기를 하다가 승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갑작스런 승혜의 귀국소식이었다. 승혜에게 보낸 내 편지의 답장을 받지 못해서였는지 괜히 뭔가가 걸려서 나는 아무 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승혜의 근황이나 소식은 내가 묻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어머니가 졸아가셨대. 그래서 왔는데......”
승혜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늘 나의 어머니였으면 하고 동경했던 분이 바로 승혜의 어머니였다. 항상 깔끔한 옷차림에 선한 미소를 지으셨었다. 학생시절, 승혜의 어머니를 볼 때면 나는 허름한 옷차림에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던 초라한 나의 어머니가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독히 무서운 분이라고 여겨왔던 승혜의 아버지의 얼굴도 생각이 났는데 유독 승혜의 얼굴만은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남편과 이혼하기로 했대. 그리고 다시 독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더라.”
승혜에 대한 이야기는 겨우 이것이 끝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부음을 받게 되었다, 승혜가 죽은 것이다.
1989년 12월 13일 수요일. 가끔씩 눈발이 희미하게 날리는 때였다. 그리고 그런 한국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만에 승혜는 떠났다. 독일이 아닌 다른 곳으로.


승혜의 원고를 보관해 두었던 그 장식장에서 한번도 마신 적이 없는 독일산 와인을 꺼냈다. 독일과 와인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다. 요 며칠동안은 승혜에 대한 생각만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는데 10년이란 긴 시간동안 승혜의 글을 보관하고 있으면서 그렇게 늘 가깝게 늘 함께 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잊고 있었던 나의 무관심이 너무 미안했다. 깊은 밤엔 형광등보다는 촉수가 낮은 전구가 더 잘 어울린다. 거실 소파에 앉아 키다리 등의 전구를 켠 채 와인 잔을 들고 다시 책을 펼쳤다.

‘쉽게 인생을 포기하진 않는다. 겨울. 겨울이라는 계절은 날 너무 힘겹게 만든다. 겨울이 되면 난 무기력해진다. 이미 탈진한 나에게의 이 겨울은 나 너무 힘겹게 만든다. 날 더욱 깊은 굴로 끌어들인다. 내 삶의 목표. 어쩌면 나에게는 처음부터 목표 따위는 있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것이라 믿었던 것의 본질에는 다가서지 못했다. 본질이 무엇인가. 나는 허망한 망상을 가진 그저 머리 좋은 여자일 뿐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 통찰을 하는 순간. 꽝! 하고 머릿속은 온통 굉음을 내며 진동을 하기 시작했고 눈알이 빠져버릴 것만 같은 혼란과 존재감에 대한 감정의 부재. 나는 존재하는 것인가? 하고 아무리 물어도 나의 자아는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원래 승혜는 겨울을 극렬하게 탔다. 겨울이 되면 승혜는 언제나 자기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겨울이어서 승혜가 죽음을 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승혜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나는 죽음을 보았다. 선택...‘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극단적인 방법을 강구한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나의 존재를, 이미 꺼져가는 내 현실에 대한 초가 불과 손가락 한마디 밖에 남지 않았으니 사람이 할 수 있는 처절하도록 자아와 손을 잡을 수 있는 그 선택이야말로 내가 나를 구할 수 있는 솔직한 요청이다. 나는 알고 싶다. 내가 누구인지. 실존하고 있는 것인지. 내 선택에 가까워져 갈수록 나는 나를 만나고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간다.  가장 사랑했던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싶다. 10년이 지난 후에 날 꺼내달라고. 나를 구원해달라고. 많은 시간이 지나 내가 기억나지 않을 때 다시 기억되고 싶다. 그때쯤이면 적어도 이런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지금보다는 많지 않을까.’

승혜가 말한 10면이 지난 겨울은 바로 지금이다.


“인터뷰는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출판사에서 실수로 실어진 내 이름 때문에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이 걸려오는 수 많은 여성잡지와 신문과의 인터뷰를 모두 거절하고 있다. 내가 가르치는 작은 대학의 내 수업 시간엔 전엔 없던 많은 청강생이 들어와 승혜에 대해 묻곤 한다. 나는 승혜에 대해 할 말이 없다. 승혜는 승혜가 말하는 그대로를 이해해 주어야 한다. 나는 아주 천천히 승혜의 ‘바람처럼’ 을 처음부터 읽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이십대 후반에서 삼십대 초반에 이
르는 승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수업이 없는 월요일 정오. 나는 상하로 나누어져 출간된 두 권의 승혜의 자서전을 들고 기차를 탔다. 승혜가 사랑했던 풍경의 호수로 행하는 것이다. 오랜만에 와본 춘천의 이 호수는 1월이 이처럼 아름다울 수 없었다. 수면 위로 흩날리는 마지막 눈송이들은 앙상한 나무 사이로 물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언제나 차분하고 조용한 이 호수는 내가 아니라 승혜를 꼭 닮았다.
‘바람처럼 살다간 내 사랑......’
차가운 강바람이 옷깃에 스며들었다. 나는 코트 깃을 여미었다. 두 권의 책을 품에 꼭 안았다. 발 아래의 조약돌을 집어 호수면 위로 힘껏 던졌다. 작은 조약돌이 물 속에 떨어지자 자기보다 더 큰 원을 만들며 가라앉는다. 승혜는 저 조약돌이다. 세상이라는 수면에 큰 파장을 만들고 저렇게 가라앉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승혜가 사랑했던 풍경을 느꼈다. 그리고 품에 안고 있어서 따뜻해진 두 권의 책을 호숫가에 내려놓았다. 내 마음의 따스함이 깃든 책이 되었다.
나는 발걸음을 돌린다. 이제 승혜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은 가습에 묻어두기로 했다. 언젠가는 폭풍우 같은 이런 열풍도 쉬 잠들 것이고 이인애와 박승혜는 잔잔한 호수로 여겨질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될 것이다. 나도 승혜처럼 돌아가고 싶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도 그렇게 갈 것이다. 꼭 그런 바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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