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의 아지트,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질까
문인들의 아지트,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질까
  • 이수현 기자
  • 승인 2011.09.05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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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문인들은 다방, 술집 등을 그들의 아지트로써 이용했다. 그러나 그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채 지금까지 운영 중인 곳은 많지 않다. 대부분 운영상의 어려움을 안고 현재는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로에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현재까지 남녀노소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학림다방’이다. 학림다방은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번화가 대학로 한 가운데에서 고립된 섬처럼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점점 문인들의 얼을 담은 장소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대학로 터줏대감, ‘학림다방’

학림다방의 내부 모습

  “학림은 아직도, 여전히 1960년대 언저리의 남루한 모더니즘 혹은 위악적인 낭만주의와 지사적 저항의 1970년대쯤 어디에선가 서성거리고 있다” 대학로에 위치한 학림다방에 들어서기 전 입구에서 가장먼저 보이는 문구이다. 낡은 소파, 삐거덕거리는 나무계단, 곳곳에 걸려있는 흑백사진과 시…. 56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로의 터줏대감, 학림에는 흘러간 그 오랜 시간들이 곳곳에 스며있다. 

  학림은 문인들에게 아지트와도 같았다. 이청준, 황석영 등 한국문학의 거장들이 학림을 다녀갔고, 수필가 전혜린이 자살하기 전날 마지막으로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낸 곳도 바로 이 곳이다.

  넓고 화려한 인테리어의 유명 커피 전문숍이 즐비한 대학로에서 학림이 그들과 비교해 가질 수 있는 장점은 과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 서울대학교 문리대가 지금의 관악구가 아닌 대학로에 위치하던 시절, 이를 중심으로 수많은 카페와 술집 등이 생겨났다. 하지만 후에 서울대가 관악구로 터를 옮기면서 그 흔적들 역시 많이 사라졌다. 1986년부터 ‘4대 학림지기’를 맡고 있다는 이충렬 사장은 “1975년 서울대가 관악구로 이사를 하기 전까지는 가까운 곳에 있던 서울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며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학생들도 10대 시절에 자주 가던 학교 앞 분식집을 찾아가 추억에 젖어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하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오랜만에 이곳을 찾은 손님들도 마찬가지다. 모두 ‘아, 이 자리가 그때 내가 앉았던 자리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추억에 젖는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고집하는 손님들도 적지 않다.

  학림다방에는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56년의 세월동안 종업원은 물론 주인까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학림이 가지는 그 특유의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낡은 나무 책상과 의자, 그리고 벽 한쪽에 진열해 놓은 LP판까지 모두 옛 모습 그대로이다. 또한 여전히 신청곡을 받아 클래식 음악을 틀어준다고 하니 그때 그 시절 학림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추억에 젖을만하겠다.

 

쉽지 않은 전통 이어가기

전통찻집 '귀천'의 이외수(왼쪽)와 천상병(오른쪽)

  안타깝게도 앞서 소개한 학림다방처럼 역사를 담고 있는 많은 장소들이 그 전통을 오랫동안 이어가기란 쉽지 않다. 1985년에는 천상병 시인과 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인사동에 전통찻집 ‘귀천’을 열었다. 이후 신경림 시인을 비롯한 수많은 문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인사동의 명물’이라 불리는 등 꾸준한 인기를 얻었다. 1993년 천상병 시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목순옥 여사 혼자 이를 계속해서 운영해왔고 8년 전에는 분점까지 내는 등 활기를 띄었다. 하지만 작년 8월 목순옥 여사가 별세하면서 귀천은 위기를 맞았다. 계속해서 귀천의 전통을 이어갈 새 주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천상병 시인이 생전에 생계를 잇기 위해 친구 강태열 시인으로부터 300만 원을 빌려 시작했다는 전통찻집 귀천은 끝내 이렇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과거의 향수를 기대하며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현재는 목순옥 여사의 조카가 운영하는 2호점만이 남아있는 상태다.

  귀천만이 아니다. 김종삼 시인이 늘 앉아있었다던 그의 아지트 광화문 ‘아리스다방’, 소설가 이외수가 젊은 시절 DJ를 지냈고 현재의 부인을 처음으로 만났다는 춘천의 ‘전원다방’ 모두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문화유산’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

카페 '드 플로르'의 사르트르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는 ‘아우어바흐스 켈러’라는 술집이 등장한다. 이 곳은 실제로 괴테가 생전 자주 찾던 술집이다. 16세기 무렵 문을 연 아우어바흐스 켈러는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관광명소로써 잘 보존되고 있다. 1890년 개업한 프랑스의 카페 ‘드 플로르’는 사상가 사르트르, 작가 알베르 까뮈가 즐겨 찾던 곳으로 유명하다. 이 역시 잘 보존되어 지금도 그들의 흔적을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로 끊이지 않는다. 문인들이 찾던 카페, 심지어 그 의자와 테이블까지도 ‘문화유산’으로 보고 이를 보존하려 노력하는 외국의 사례와 비교해 볼 때 옛 문인들이 즐겨 찾던 아지트가 사라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씁쓸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언젠가 신문에서 이러한 글을 본 적이 있다. “가보가 한 가문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구성원 통합에 역할을 하듯, 한 민족·나라의 문화유산도 마찬가지다” 문화유산이 자긍심이자 자부심의 원천이 된다는 것이다. 문화유산은 역사의 보물창고라고 불리우는 만큼, 소소한 하나하나가 귀중한 사료가 된다. 세계의 많은 명소들이 이런 식으로 보존, 복원되어 현대까지 계승돼 과거와 현재의 연결다리가 돼주고 있다. 특히 문인들의 흔적이 담긴 아지트는 그들의 사랑과 얼 그리고 열정이 살아 숨 쉬는 정신적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문학적, 역사적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그 곳에 가보자. 그리고 문인의 넋이 고즈넉이 쌓인 그 곳에서 술, 커피 그리고 향수를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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