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으로 현대를 엮다
한복으로 현대를 엮다
  • 이연지 기자
  • 승인 2011.09.1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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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회현상으로 계속해서 새롭게 변화해 나간다. 우리나라 전통인 한복 문화도 변형되고 있고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색동 한복부터 꽃분홍색의 새색시 한복까지 다소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한복들이 도시적이고 세련된 감성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복의 새 반향을 창조하고 있는 패브릭 아티스트 김주 씨(이하 김 씨)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꿈에 그리던 직업을 찾아서
  김 씨는 원래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컴퓨터 지원설계 디자인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늘 나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인 일을 찾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남들과 똑같은 일이 아닌 내가 좋아해서 온전히 몰두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어느날 친구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던 중 김 씨는 서점에서 우연히 니트 책을 발견했다. 니트에 대한 호기심과 직접 만들어 선물하면 더 의미있겠다는 생각에 그는 뜨개질을 시작하게 됐다. “꾸준히 만들어서 완성을 한다는 게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제 성격상 뭔가 한 가지를 해도 제대로 끝내는 걸 힘들어 하는 타입인데 뜨개질은 작업의 성과가 바로 나온다는 기쁨을 주었습니다.”
  ‘남자가 무슨 뜨개질이냐’는 주위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후반 김 씨는 과감하게 ‘니팅’의 길로 들어섰다. 정식으로 학원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도 짬짬이 뜨개질을 해 솜씨를 갈고닦았다. “물론 주위 사람들이 고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잠깐 관심보이다 말겠지’라는 생각도 했겠죠. 하지만 남자기 때문에 기술과 요령을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습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복의 아름다움에 눈뜨다
  김 씨는 유난히 한복을 즐겨 입으시던 어머니를 비롯해 담배가게 할머니, 구멍가게 아줌마 등 거의 모든 분이 한복을 입고 생활했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한다. “똑같은 한복을 동양인과 서양인에게 입혀봤을 때 매무새가 다른데 한복이 한국사람 체형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눈에서 점점 멀어지다보니 젊은 세대가 ‘촌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김 씨는 세월이 흐르면서 한복이 특별한 의상이 돼가는 게 아쉽고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김 씨는 여러 아티스트들과 함께 리사이클 전시를 열었다. 그는 전시 준비를 위해 재활용 의류를 모아 두는 곳을 둘러보던 중 멀쩡한 한복들이 많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세탁하고 조금만 손질을 하면 얼마든지 재활용이 가능한 한복들을 그대로 버려두기 아깝다는 생각을 한 김 씨는 ‘한복’을 주제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흔히 한복을 불편하다고 하는데 한복의 색채나 특징적인 디자인을 현대적 의류에 적용시킨다면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쉽게 한복의 느낌을 즐길 수 있도록 가방과 지갑 같은 생활 소품을 만드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작가의 상상력을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과 실용성 두 가지를 동시에 선보임으로써 작품의 콘셉트를 분명히 하는 것이 그의 디자인 철학이다.

동백 토트백, 뉴욕을 흔들다
  김 씨는 뉴욕현대 미술관(MOMA: Museum Of Modern Art)(이하 모마)에서 열리는 ‘데스티네이션 서울’ 행사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그는 작품의 주 소재로 우리나라 고유의 색감이 살아있는 색동 저고리를 비롯한 알록달록한 한복 치마들과 이불 홑청을 사용했다. 김 씨는 “유행 지난 색동 한복, 꽃분홍 한복 등으로 만든 생활 소품들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촌스럽다’ ‘알록달록하기만 해서 멋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반응은 전혀 달랐다. “영국이나 일본 등에서는 오히려 한복만의 색감이나 패턴이 정말 아름답다는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눈에 너무 익어서 촌스러워 보일 수 있는 것들이 그들 눈엔 묘한 예술작품 혹은 새로운 패션처럼 보였던 것 같아요.”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색동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동백 토트백이었다. 김 씨는 이미자씨의 <동백아가씨>에 한국 사람들의 한과 애환이 서려 있는 것을 느끼고 ‘동백꽃 이미지가 한국여인과 잘 어울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동백꽃을 소재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동백 토트백을 통해 김 씨가 보여준 것은 한국의 멋과 그의 꿈이었다. 김 씨는 “전공을 했거나 전문가인 것은 아니지만 제 작품이 모마에서 전시돼 저와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며 “한복의 색동을 저만의 스타일로 디자인한 가방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하나의 명품 가방처럼 인식시키고 싶습니다”고 새로운 꿈을 전했다.

복합문화공간, 뜨쥬
  ‘생활 속 예술’이라는 신념으로 김 씨는 대중과 더 활발히 소통하기 위해 2009년 7월 홍익대학교 앞에 ‘카페 뜨쥬’를 열었다. 뜨쥬는 작업실과 갤러리, 뜨개 강좌 등의 역할을 겸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뜨개질 하는 김주’라는 의미와 불어로 ‘너는 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김 씨는 ‘작업을 한다’기 보다 ‘같이 논다’는 본인의 생각과 잘 맞는 이름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선 매년 9월부터 12월 말까지 뜨개 강좌가 열리는데 김 씨가 직접 강의를 해 손님들에게 인기가 높다. 또한 그는 신인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도록 매달 5일부터 25일까지 전시회도 연다.
  작품 활동을 하면서 카페에서 직접 요리도 하는 김 씨는 자신을 ‘잡티스트’라고 소개한다. 잡티스트로서 다양한 활동 중 그에게 패브릭 아트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패브릭 작업은 하면 할수록 즐길 수 있어서 더 좋습니다. 패브릭 작업을 하다보면 좋은 기억이 많이 떠오르거든요.” 김씨는 앞으로 니트 작업과 함께 한복을 응용한 패브릭 작업도 꾸준히 할 예정이다.

무엇이든 장인의 정신으로
  올해로 뜨개질 경력만 12년인 그는 지금도 기본을 쌓고 있다는 중이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할 때 1년 안에 결실을 맺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다 보면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진실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신념만 있다면 그 외의 것들은 자신이 조금 불행해지더라도 양보를 하거나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씨는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학우들에게 과감하게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라고 말한다. “못해도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나의 생각과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의 생활 속에서 전통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작품의 콘셉트라는 김 씨. 앞으로도 다양하고 창조적인 작품 활동으로 우리나라 과거와 현재를 엮어 더 큰 작품세계를 만들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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