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쌓기에 대한 단상
스펙 쌓기에 대한 단상
  • 유견아(컴퓨터) 교수
  • 승인 2011.11.09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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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컴퓨터 하드웨어를 전공했던 나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마다 좀 더 좋은 ‘스펙’의 모터, 좀 더 좋은 ‘스펙’의 센서를 사고 싶었지만 항상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아 아쉬웠었다. 이처럼 예전에 스펙이란 말은 내가 다루던 하드웨어의 사양을 나타내는데 쓰이던 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스펙’이란 말이 대학생들의 취업준비 수준을 나타내는 말처럼 사용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2004년도에는 국립국어원에서 ‘출신학교와 학점, 토익점수와 자격증 소지여부, 그리고 해외연수나 인턴경험 유무 등을 종합한 것’을 스펙이라는 신조어로 등록하기에 이르렀다. 여러 가지 자격 요건을 갖춰 놓고 기업들에게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이런저런 기능을 갖추어 놓고 손님에게 선택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흡사하여 일견 스펙이란 용어의 적절한 재활용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계에게 쓰이던 용어를 사람에게 적용한다는 것이 영 씁쓸하다. 스펙이란 말이 학교에 등장하고 학생들이 스펙 쌓기에 많이 고달파졌다는 생각에 그 씁쓸함은 더욱더 커져간다.

  나의 씁쓸함에도 불구하고 스펙 쌓기는 국가적으로 대세인 듯하다. 국가적이라는 말은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과 외 활동 상황을 온라인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운영하는 사이트까지 생겼으니 말이다. 스펙이란 말이 이제 더 나아가 초·중·고 학생들의 진학을 위해서도 확대 적용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이 제일 중요하니 스펙 쌓기는 잊어버려라’는 말을 하는 것은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교수로서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좋은 스펙 쌓기’에 대해 생각해 봤다.

  많은 면접관들의 말에 따르면 마구잡이식으로 이런저런 경험을 적은 기록은 매력적이지 않다고 한다. 특별한 스펙이 필요하다고 1학년 때부터 이에 대한 준비로 낭만없는 대학생활을 하게 되면 과연 이것은 취업에 도움이 되는 좋은 스펙일까? ‘자기소개서가 중요하다’ ‘면접으로 가능성과 열정을 본다’ ‘진정한 스토리가 스펙을 이긴다’ 이와 같은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하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의 말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저런 훌륭해 보이는 스펙들로 가득한 사람보다는 무언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나타내주는 스펙을 가진 사람을 원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스펙을 쌓기 위해 귀중한 시간과 열정을 들이기보다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과 관련된 경험을 하는 것,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한 일을 하는 것, 자신의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밑거름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 이런 것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의미 있는 좋은 스펙 쌓기가 아닐까? 자신을 돌아보자.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자. 진정한 스펙을 위해서 남에게 보이기 위한 스펙을 일부러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 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나의 스펙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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