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코너 책 읽어주는 여자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학술코너 책 읽어주는 여자 : 장 폴 사르트르 <구토>
  • 조연지 기자
  • 승인 2012.05.14 17: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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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토 나온다’ 라는 말을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곤 한다. 산더미 같은 과제 앞에 놓여있을 때면 토 나온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것 말고도 살면서 구역질나는 상황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자신을 향해 가식적으로 웃는 사람을 볼 때,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여야 할 때, 우울한 기분과는 반대로 너무나도 화창한 하늘을 마주하면 갑자기 모든 상황이 다 싫어지고 구역질이 난다.


  나는 더 이상 말할 수가 없다. 고개를 숙인다. 독학자의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앞에 있다. 그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악몽 속에서처럼 싱겁게 웃는다. 나는 도저히 삼키기 싫은 빵조각을 억지로 씹고 있다. 인간들, 인간들을 사랑해야 한다. 인간들은 훌륭하다. 나는 토하고 싶다. ―아니나 다를까, 갑자기 솟구쳤다. ‘구토’다. -p.225.


  그렇기에 우리는 로캉탱의 구토를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현실에 치여 살아가기 바쁜 우리와는 달리, 로캉탱은 좀 더 절실하게 존재이유에 대해 찾고 있다. 하지만 로캉탱이 느끼는 싫증과 분노는 충분히 공감 가능하다.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하다가도 이게 무슨 무의미한 짓인가 싶고 그 친구가 막연히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매일 지나치던 벚꽃나무도 어느 날 문득 보면 저 나무가 왠지 저기 있어야만 할 것 같고, 반갑기까지 하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는 거북한 존재의 무리였다. 우리는 너나없이 거기에 있을 이유가 조금도 없다. 당황하고 어딘지 불안한 각 존재는 다른 존재와의 관계에서 서로 불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중략) 그리고 ‘나’도 ―힘없고 피곤하고 추잡하고 먹은 걸 소화시키며 우울한 생각을 되씹고 있는― “나 역시 무의미한 존재였다.” 다행히도 나는 그것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특히,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느끼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지금도 그것이 두렵다. - p.237.


  우리는 왜, 사물하나에도, 사람 한명에게도, 마치 그것 혹은 그가 거기에 있어야만 한다는 존재이유를 찾고자 하는 것일까. 사르트르는 인간을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다.

  나에게는 존재할 권리가 없었다. 나는 우연히 생겨나서 돌처럼, 식물처럼, 세균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내 생명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뻗어 나갔다. - p.156.


  따지고 보면 그렇다. 우리는 왜 살아가는 것일까. 부모님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가 존재이유를 찾고, 만들고, 부여한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규정하고 판단하려 한다.
  이 책을 읽는데에는 거창한 철학적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사르트르의 <구토>는 마치 로캉탱이 우리와 친한 친구라도 되어서, 자신의 소중한 일기장 하나를 보여준 것과 같다. 그러면 우리는 약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때로는 세세한 표현력에 감탄하고, 나도 이랬다며 공감하고, 나의 이야기를 그에게도 들려줄 수 있으면 된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고, 주변의 세상을 돌아볼 수 있다면 족하다.


  내 생각을 깨끗한 새 공책에 계집애들처럼 매일 쓰는 일은 그만 두겠다. 그러나 어떤 때는 일기를 적는다는 것이 유익한 일일 것이다. 그것은 매우……. - p.9.

  자, 이제는 당신이 계집애들처럼 일기는 쓰지 않겠다던 로캉탱씨의 일기를 읽을 차례다. 상당히 귀엽지 않은가.

*장 폴 사르트르, <구토>, 강명희 옮김, 하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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