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분류 이야기
도서 분류 이야기
  • 이소연 덕성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12.09.10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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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대학 문헌정보학과에 개설된 <정보자료분류론>은 흔히들 ‘도서분류법’이라고 부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서가 다루고 있는 학문의 주제 분류법’이라고 부르는 내용을 배우는 과목의 명칭이다. 이 과목은 문헌정보학의 가장 고유한 영역이면서 문헌정보학 외부에도 가장 잘 알려진 전공 분과 영역이기도 하다. “분류를 배우고 나서야 비로소 문헌정보학 전공생이 됐다는 실감이 들었다”는 학생이 드물지 않은 것을 보면 이 과목의 수강이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돼 있는 모양이다. 수업을 듣고 나면 도서관 책등의 비밀스런 기호를 해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분류란 무엇인가
  분류의 목적은 다른 것을 서로 나눠(分) 구분함으로써 비슷한 것끼리 한데 모으는(類) 데 있다. 사실상 인간 지식의 역사는 분류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흰 말(白馬)’은 ‘말’이기 전에 ‘흰 것’이라는 인식론적 판단을 생각해 보자. ‘흰 말’의 가장 중요한 속성이 색깔인지, 생물학적 종(種)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 관찰을 통해 축적한 파편적 지식의 집합체를 체계화하는 고도의 지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활 속에서도 일상적으로 분류에 의존한다. 다시 만날 사람과 더는 안 볼 사람, 비 오는 날 적절한 음식과 아닌 음식과 같은 이분법적 분류도 있지만 당장 급한 일과 언젠가는 할 일, 절대로 하지 않을 일 같은 분류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진다. ‘classify’를 영한사전에서 찾아보면 우편물 분류(보통이나 속달, 등기 등), 기밀문서 분류(극비, 비밀, 열람제한, 비공개 등), 생물 분류(종속과목강문계 등의 복잡한 체계를 갖춘 동식물의 분류) 등과 함께 도서 분류라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미 의회 도서관(Library of Congress)

해리포터와 청구기호 읽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예로 들어 분류의 비밀을 밝혀보자. 도서관 서가에서 찾은 책등에는 여러 줄로 구분된 기호가 스티커로 붙어 있다. 그 첫 줄엔 <823.914>라는 암호가 적혀 있는데, <8>은 문학을 의미한다. 두 번째 줄에 있는 <2>는 문학 중에서도 영어로 쓰인 문학, <3>은 소설이라는 뜻이다. 점<.> 뒤의 <914>는 이 작품이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945년에서 20세기의 마지막 해인 2000년 사이에 처음으로 발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줄의 <R884hㅎ>은 <R884>로 부호화된 저자, 즉 Rowling이 쓴 <h>로 시작하는 제목(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의 책을 우리말로 번역(<ㅎ>)한 것임을 의미한다. 세 번째 줄엔 1부 2권이, 2부 3권과 같은 권차기호가, 네 번째 줄엔 도서관에 몇 번째로 들어온 복본인지가 표기돼 있다.

 

도서 분류법 DDC
  이 모든 기호를 통틀어서 ‘청구기호’라고 한다. 책을 신청할 때 사용하는 기호라는 의미다. 823.914만을 부를 때는 ‘분류기호’라고 한다. 위에 예로 든 번호는 DDC(Dewey Decimal Classification: 듀이십진분류표)라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분류표에 따라 부여한 번호다. 1876년 미국의 한 대학도서관 사서였던 멜빌 듀이가 창안한 DDC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베이컨, 해리스로 이어지는 학문분류 전통의 연장 선상에서 설계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이론학, 실천학, 제작학의 세 가지로 구분했고, 베이컨은 인간의 정신능력을 기억(역사), 상상(시), 이성(철학)의 세 가지로 구분했다. 해리스는 이를 다시 철학, 종교, 사회과학과 정치학, 자연과학과 응용과학, 예술, 시, 순수허구문학, 잡문, 지리와 여행, 역사와 기타로 세분했다. 이들이 지식과 학문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분류함으로써 연역적 탐구를 시도하였다면 ‘지식의 표현물로서의 도서’라는 실체를 대상으로 한 귀납적 산물이 DDC다. 현재는 눈부신 속도로 진화와 분화를 거듭하고 있는 지식과 학문 생태계를 반영하기 위해 지난 13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개정돼 현재 23판이 나와 있다.

DDC의 창안자 멜빌 듀이

 

십진분류법과 비십진분류법
  우리나라에서는 대체로 대학도서관이나 대규모 도서관에서 DDC를 사용하고 있다. 공공도서관이나 중소규모 도서관에서는 KDC(Korean Decimal Classification: 한국십진분류표)를 사용하고 있다. 위에서 예로 든 해리포터를 KDC로 분류하면 823이 아니라 843이 된다. 영어권 중심의 DDC에서 800대의 앞자리를 영미문학에 쓰느라 한국문학에는 무척 변방의 번호를 부여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 사정에 맞게 만든 KDC에선 한국문학 810, 중국문학 820, 일본문학 830이 나온 뒤로 영문학을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DDC도, 한국에서 가장 많은 도서관이 채택하고 있는 KDC도 십진분류표이다. ‘십진(decimal)’이라는 말은 0에서 9까지의 10진수를 활용하여 도서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분류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십진식이 아닌 분류법도 존재한다. 십진수 대신 28개의 영어 알파벳을 사용하는 미 의회도서관 분류표(Library of Congress Classification: LCC), 실제로 사용하기엔 어렵지만 이론적으로는 가장 완벽하다는 콜론분류표, 동양고서를 분류하기에 적합한 경사자집(經史子集)의 사분법(四分法) 등이 대표적인 비십진식 분류법이다.
  십진식이든 비십진식이든 위에서 예로 든 분류표는 모두 학문적 지식을 담고 있는 도서를 분류하기에 적합한 방식이다. 악보, 음반 등의 음악자료나 영화, 지도, 도면, 미술품, 사료, 기록, 낱장자료 등 도서 형식이 아니거나, 어린이 그림책, 기술개발이나 특허자료 등 학문분류를 적용하기 어려운 자료를 분류하는 데에는 적합하지 않다. 세상에는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도서관 자료 분류방식이 존재하는 셈이다.

  도서관이 아닌 곳에서의 자료 분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문헌정보학 전공생이라면 한 번쯤은 자기 소유의 책을 십진식으로 분류하고픈 유혹에 빠져 볼 법 하다. 경험과 상식이 우리를 다른 쪽으로 안내하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분류공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차라리 읽은 책과 안 읽은 책, 또는 자주 두고 볼 책과 가끔은 다시 볼 책, 그리고 다시는 안 볼 책으로 분류하기를 권한다. 책상에 앉아서 볼 책, 화장실에서 볼 책, 자기 전에 볼 책, 들고 다니며 볼 책으로 나누어 보는 것도 좋겠다. 어떤 방식을 선택해도 좋다. 책을 더 즐겁게, 그리고 편하게 읽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이기만 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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