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우주와 현대물리학
다중우주와 현대물리학
  • 김낙우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
  • 승인 2013.03.18 16: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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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柳色千絲綠
  桃花萬點紅
  버드나무는 천 가닥 실로 푸르고
  복사꽃은 만 송이로 붉다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의 시 한 구절이다. 자연을 관찰하면 같은 대상이 수없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생물뿐 아니라 밤하늘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우주에도 어마어마한 숫자의 별들, 그리고 그들이 거느리는 행성들이 존재한다. 이렇게 광대하고 풍부한 것이 우리가 속한 우주의 중요한 성질 중 하나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하면 우주 자체는 과연 유일한 것일까, 우리는 가볼 수 없지만 우리가 사는 것과 비슷한 다른 세상이 어디엔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이것을 ‘다중우주’ 혹은 ‘평행우주’라고 하며 영화, 소설, TV 등에서도 반복적으로 다뤄진 흥미로운 아이디어다.

  이런 생각은 현대물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많은 변종들이 있지만 대략 두 가지 다른 종류가 존재한다. 하나는 우주가 워낙 커서 어딘가 우리 우주와 거의 같은 우주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바둑이나 장기 게임을 영원히 반복한다고 해보자. 무한히 반복하면 결국에는 같은 경기가 다시 나타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배열도 무한히 큰 우주에서는 어디에선가 다시 나타나 나의 도플갱어가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이른바 ‘누빈 우주(quilted universe)’라는 아이디어다.

  위와 같은 생각은 우주가 무한히 크기만 하면 자연법칙이 어디나 같더라도 성립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우주는 좀 다르다. 관측에 의하면 우리 우주는 팽창하고 있다. 학자들은 태초의 대폭발 이후 느리게 팽창하는 시기가 있었고 그 이후 엄청난 속도로 빨리 팽창하는 시기를 거쳤다고 본다. 이것을 ‘인플레이션 팽창 이론’이라고 하는데 우리 우주의 모든 부분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균일한 온도를 띠는 것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자연스러운 설명이다. 이런 우주에서는 우리와 인과율적으로 분리돼 어떤 상호작용도 불가능한 영역이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수의 다른 우주들이 자연스럽게 생산된다. 그 각각을 ‘거품 우주(bubble universe)’라고 부른다. 인플레이션 이론에서 다중우주의 가능성을 최초로 간파한 사람은 빌렌킨이라는 물리학자로, 1980년대의 일이었다.

  또 다른 다중우주 이론은 앞과 같은 지역적 분포가 아니라 사건 전개의 여러 가지 다른 가능성을 다중우주로 보는 것이며 이는 양자역학의 해석과 연관돼 있다. 미시세계의 자연법칙을 지배하는 것은 양자역학이라는 물리학 이론이다. 그 중요한 성질 중 하나는 확률적 해석인데 단순히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미래는 가능한 모든 현재 사건들의 총합이라는 관점을 가진다. 예를 들어 당신이 방 안에 있고 밖으로 나가는 문이 두 개가 있다고 하자. 당신이 방 밖으로 나간다면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사용했을 것이다. 나가는 장면을 놓친 사람에게 당신이 각각의 문을 사용했을 확률은 1/2이지만, 실제로는 둘 중 하나를 사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양자역학적 세계에서는 모든 경로를 다 합해야 하기 때문에 왼쪽 문을 사용한 당신, 오른쪽 문을 사용한 당신이 모두 실재해야 한다. 우리의 몸과 같은 거시세계에서는 실제로 다른 사건의 합이라는 효과가 극히 적게 나타나기 때문에 내 몸이 두 동강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런 해석은 확실히 혼란스럽고 미묘한 점이 있다. 여기에 대해서 다른 문을 선택한 당신들의 복사본이 모두 실제로 존재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은 1950년대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휴 에버렛이라는 사람이었다.

  최근에 부상한 것은 ‘끈 이론’이 예측하는 수많은 수학적 해가 다중우주로 구현된다는 생각이다. 끈 이론은 현대 이론물리학의 총아로서 복잡하고 난해한 이론물리학의 여러 문제들의 놀라운 해결 방법을 제시해 국제적 학문 경향을 수십 년간 선도해 온 분야다. 끈 이론은 말 그대로 우주의 기본 구성 단위가 1차원적 존재인 일종의 끈이라는 가설로부터 출발하는 물리학 이론이다. 물질의 기본 단위는 양성자나 전자등과 같이 크기가 아주 작거나 0인 점과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기에 끈 이론의 기본 가정은 처음 듣는 누구에게나 ‘왜 하필 1차원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끈 이론만이 현대 물리학의 두 가지 기둥인 양자역학과 일반상대론을 다른 입자물리학 이론과 함께 성공적으로 통합할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끈 이론의 기묘한 예측 중 단연 으뜸은 그것이 10차원 또는 11차원이라는 많은 시공간 차원을 예측한다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합쳐 4차원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난해한 관점이다. 많은 물리학자들은 끈 이론으로부터 출발하면 우리 우주의 성질들을 결국은 수학적으로 무모순인 단 하나의 이론으로부터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지난 수십 년간 노력을 경주해 왔다. 그러나 몇 세대에 거친 연구 끝에 학자들은 끈 이론이 실질적으로 무한히 많은 해를 가지고 있으며 특별히 우리 우주를 기술하는 해를 콕 집어 찾아내는 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것은 6차원 혹은 7차원의 내부 공간이 가지는 다양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그것은 두 수학자의 이름을 딴 ‘칼라비-야우 공간’이라고 하는 수학적 구조의 가능성을 이용해 세는데, 흔히 10의 500승, 즉 0이 500개 붙은 숫자보다도 훨씬 크다고 이야기한다. 인플레이션 이론이 암시하는 거품 우주를 끈 이론과 결합하면 이렇게 다양한 해들이 거품같이 일종의 벽으로 외부와 구분되는 공간들에서 구현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것이 우주론과 끈 이론처럼 독립적인 분야의 물리학자들에 의해 연구돼 뜻밖에도 같은 결론에 다다른 다중우주의 양상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렇게 수많은 우주의 존재를 인정하는 입장은 왜 우리 우주가 지금과 같은 모습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제공할 수 있다. 우리는 우주공간이 아주 차갑고 거의 진공이라고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의 우주는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140억 년이라는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주 평평한 우주, 게다가 별이 생겨날 조건과 부합하는 핵물리학의 오묘한 성질까지 우리 우주의 자연법칙은 마치 누군가가 인간과 주변 생물계의 존재를 위해 조심스럽게 준비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종교적 교의를 연상하게 하는 이런 생각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학계에서는 금기사항이었다. 다중우주론의 무한성은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북극곰은 왜 자기를 둘러싼 북극의 환경이 자신의 신체 조건에 딱 맞게 준비됐는지 궁금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지구의 기후가 사실은 아주 다양하며, 환경에 맞는 생물들이 그 지역에 서식한다고 보면 자연스럽다. 마찬가지로 다중우주의 관점에서는 우리 우주의 특수성도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닐 것이다.

  현대물리학이 예측하는 우주는 아마도 김부식의 시에 대한 정지상의 제안처럼 무한성을 포함하는 다중우주일 것으로 보인다.

  柳色絲絲綠
  桃花點點紅
  버들은 실실이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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