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탄생으로 본 인문학
서울의 탄생으로 본 인문학
  • 정요근(사학) 교수
  • 승인 2013.05.1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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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천추태후’라는 사극이 방영된 바 있다. 천추태후는 고려 태조 왕건의 손녀이자 5대 임금인 경종의 왕비였으며 7대 임금인 목종을 낳았다. 경종이 승하한 이후 김치양과 재혼하여 또 한명의 아들을 두었다. 하지만 그녀는 강조의 정변으로 권력의 중심에서 멀어져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천추태후는 자신의 둘째 아들을 왕으로 삼고자 했지만 그 아들은 김씨였기에 왕건의 직계 후손 남성들이 모두 제거되어야 왕이 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자신의 조카였던 대량원군을 북한산 신혈사에 승려로 보내고 몇 번씩 죽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대량원군은 우여곡절 끝에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고려의 8대 임금 현종이다. 이후 고려의 모든 국왕은 현종의 직계 후손이었고 현종은 고려왕조의 중시조 격으로 추앙받았다.

  현종이 어렵게 생명을 부지했던 북한산은 신성지역으로 숭배됐다. 고려의 역대 임금들은 북한산에 자주 행차해 현종을 보호했던 북한산의 음덕에 감사를 표했으며 현종의 손자인 숙종은 북한산 아래 풍수상의 명당지에 신도시를 건설해 자신의 거점으로 개발했다. 조카를 쫓아내고 왕이 된 숙종으로서는 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신도시 건설과 같은 국가적 프로젝트를 절실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었다. 도시 이름은 남경이라 칭하고 부수도로 삼았는데 그곳이 지금의 서울 사대문 안 지역이다. 이후에도 서울 지역은 변함없이 중시됐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이성계도 남경 자리에 한양을 건설했고 수도 서울의 위상은 현재까지도 굳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만일 천추태후가 대량원군을 북한산에 유폐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서울은 지금의 자리에 번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북한산 자락이라는 이유로 우리대학이 위치한 도봉구 역시 남경 건설의 유력한 후보지로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상의 내용은 한낱 흥미로운 역사이야기로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이야기로부터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천추태후로부터는 사욕에 눈이 멀어 무자격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려다가 모든 권세를 잃어버린 사실을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숙종의 남경 건설 과정에서는 풍수지리설을 이용하여 유리한 여론을 조성해내는 정치력을 찾을 수도 있지만 비정상적인 권력 장악으로 인하여 국가와 백성을 위한 정책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사업을 밀어붙이는 권력자의 행태도 읽을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서울의 탄생이 그것으로부터 기인한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말이다. 그리고 남경이라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짐으로써 지역 개발과 도시의 발전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중심지는 어떻게 변하며 후대에는 어떻게 계승되는지 흐름과 맥락도 파악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위 이야기로부터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많은 교훈과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위 이야기 속 인간들의 행위는 오늘날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아니 앞으로 활동할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일이다.

  역사학을 포함한 이른바 ‘문·사·철’의 학문인 인문학은 이렇듯 인간의 행위와 사회의 변화, 문화현상 등을 근원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며 미래를 전망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기초 학문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경제행위나 기술개발과 같은 실용적인 분야의 능력을 키우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을지 모르지만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해 인간과 사회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 역시 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하기 어렵다.

  대내외적인 여건의 변화는 대학사회를 치열한 경쟁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 위주의 사회 운영은 결코 그 사회를 진보시키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사회를 병들게 하고 퇴보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인문학에 대해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근에 들어 신자유주의의 비인간적인 파고 속에서도 인문학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우리 덕성의 모든 구성원들 역시 눈앞에 놓여 있는 경쟁의 논리에만 매몰되지 말고 보다 넓은 시야와 관점을 가지고 근원적인 사고의 기반 위에서 실력을 닦아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경쟁력의 측면에서도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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