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구조조정에 몸살 앓는 학문의 전당
잇따른 구조조정에 몸살 앓는 학문의 전당
  • 이수현 기자, 손혜경 기자
  • 승인 2013.05.27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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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과가 없어졌다고?” 소통없는 학과 통폐합에 ‘어이없는’ 대학생들

▲ 최근 학과 통폐합이 결정된 대학교 학생들이 대학의 구조조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맨위부터 배재대, 부산외대, 대진대)
최근 심심찮게 들려오는 구조조정 소식에 대학가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부가 대학 구조조정을 시작하면서 무한경쟁시대에 들어선 대학들은 기어코 구조조정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시대의 흐름을 반영했다고 하지만 해당 학생들은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이들은 사안의 주체인 학생과 교수의 의견을 사전에 수렴하지 않은 채 효율성만을 앞세운 행정에 강한 거부감을 내보이고 있다.

최근 중앙대는 아시아문화학부 비교민속학전공, 사회복지학부 아동복지전공·청소년전공·가족복지전공 등 4개 학과의 폐과를 알렸다. 학부 내 타 학과에 비해 이들 학과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적다는 점과 대학 예산 문제 등이 이유다. 중앙대는 지난 2010년에도 구조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중앙대는 18개 단과대를 10개로 줄이고 77개 학과를 46개로 통폐합했으며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갈등을 빚었다. 부산외대는 러시아인도통상학부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신설된 지 8년 만의 폐지 결정이다. 배재대는 지난 3일 프랑스어문화학과, 음악학부 클래식 전공 폐지,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학과 통폐합, 비주얼아트디자인학과와 미술조형디자인학과 통폐합 등의 내용을 담은 구조 조정안을 학교 게시판을 통해 공지했다. 당시 대학 측은 두 학과를 통폐합 하는 대신 사이버보안학과와 중소기업컨설팅학과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조선대 역시 글로벌법학과 통폐합 소식을 알렸다. 이외에 목원대, 부산대, 경기대 등 전국 수많은 대학이 구조조정에 나섰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해당 학교 학생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4개 학과가 통폐합 위기에 처한 중앙대의 경우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구조조정의 부당성을 규탄했다. 배재대의 경우 통폐합 해당 학과 학생회를 중심으로 천막농성에 들어가 수업을 거부하는 등 반대 시위를 펼치고 있다. 이들은 철야농성까지 강행했다. 학생들은 “학과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내부적인 문제점을 파악한 뒤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우선이다”고 대학의 일방적인 통보식 학제 개편을 규탄했다. 하지만 대학의 목소리는 단호하다. 경쟁력 제고를 위해 비인기 학과의 통폐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 같은 논의 과정에서 정작 '학생의 목소리'는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 측은 오랜 시간을 두고 충분히 논의 과정을 거쳤다고 말하지만 해당 학생들의 입장은 다르다. 대부분 대학의 관련 공지 후 자신의 학과 소식을 접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미 대학 관계자들을 중심으로 내부 회의를 거쳐 학과 통폐합을 확정한 후 재학생들에게 수직적 통보를 내렸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가열되는 학과 통폐합 논란 속에 “학령인구가 감소하는 등 대학 운영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대학 전체가 살기 위한 구조조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시선 역시 존재한다. 출산율 감소, 고령화 사회 진입 등으로 해가 갈수록 학령인구는 눈에 띄게 감소하고 있다. 대학평가, 구조조정 등 대학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해지는 것도 이 탓이다. 동시에 “대학 측이 단순히 취업률만으로 학과를 평가하고 한마디 상의나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있다”는 입장이 이에 팽팽히 맞서고 있다.

재학생들이 학과 통폐합으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부분은 학습권이다. 학습권이란 원하는 것을 학습할 권리, 혹은 학습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요구할 권리를 의미한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학과 폐지로 인한 교과목의 축소, 유사 학과 통합으로 인한 교과과정의 변화, 그리고 통폐합 대상 학과 교수들의 비전공 과목 강의는 재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 학교 측이 최우선으로 보장해 줘야 할 재학생들의 학습권이 거시적·장기적인 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 아래 등한시되는 것이다.

학과 통폐합을 통한 대학 구조조정의 유형은 대학별로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뉠 수 있다. 첫 번째로 기존에 존재하던 학과가 아예 사라지는 폐지의 방법이다. 이 경우 폐지되는 학과에 재학 중인 재학생들은 기존 전공을 유지해 졸업할 수 있으나 그 다음 해부턴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해당 학과는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학과가 폐지될 경우 장기 휴학생의 복학 이후 거취 문제와 학부 내 폐지 될 전공을 학습하길 원하는 1학년 학생들의 거취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해 당사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실제로 현재 인문대학 아시아문화학부 내에서 비교민속학전공을 폐지하려는 중앙대 본부의 움직임은 비교민속학전공 특기로 입학하거나 비교민속학을 전공하길 원하는 13학번 재학생들의 선택권을 일방적으로 앗아가는 행위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중복되는 성격의 유사 학과를 통합해 학문 단위를 대형화하는 방식이다. 현재 많은 수의 대학이 이 방법을 통해 유화적인 대학 구조조정을 실행하고 있다. 최근엔 배재대가 국어국문학과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과를 ‘한국어문학과’로 통합하는 개편안을 발표해 대·내외적인 진통을 겪었다. 조선대 또한 15개 유사 학과를 8개 학과로 통폐합시키는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조선대 본부 측은 해당 학과 재학생들에게 졸업할 때까지 학과체제의 유지와 지원을 약속하고 있지만 재학생들의 반발은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여러 학과를 하나의 학부로 통합하거나 한 학부를 쪼개 서로 다른 학과에 통합시키는 등 대학가에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학과 통폐합이 진행되는 중이다. 이렇게 한 학과의 ‘통폐합’과 ‘생존’의 운명은 재학생 유지율과 취업률, 교육원가, 교육수요도 등의 평가를 통해 결정된다.

근래 들어 학과 통폐합은 대학 구조조정 바람을 타고 우후죽순처럼 진행됐다. 그렇다면 학과 통폐합 그 이후, 재학생들은 제대로 된 학습권과 지원을 보장받고 있을까? 대부분의 대학이 폐지된 학과 재학생들을 상대로 졸업 학점을 충족시킬 수 있을 만큼의 강의를 제공하거나 유사 강의로 대체하는 등의 방식으로 폐지된 학과 재학생들의 수업권을 보장해 주고 있다. 그러나 소수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폐지 학과 과목 특성상 누군가는 상대평가에서 반드시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점, 장기 휴학생들이 복학 후 체계적인 교과과정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가 명확하지 못하다는 점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학과 통폐합은 빠르게 변하는 학문의 흐름에 있어 대학 경쟁력을 확보하고 효율적인 대학 운영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학과 통폐합의 당사자인 재학생들을 제외한 통보식의 구조조정은 대학 구성원들에게 상처로 남을 뿐이다. 최근 배재대 내 구조조정안에서 폐지가 결정된 프랑스어문화학과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대학 설립 초기부터 존재해 왔던 유서 깊은 학과들이 학교 측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됐다”며 “배우기 위해 대학을 찾은 학생들을 취업률과 대학 경쟁률 하에 희생시키는 현 대학교육 체제가 씁쓸하기만 하다”고 심정을 전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넘쳐나는 대학. 대학들도 살아남기 위한 여러 방면의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대학 경쟁력 제고 방안들이 이뤄져야만 더욱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대학 경쟁력 확보가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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