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모호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교수칼럼] 모호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 이상묵(경영학과) 교수
  • 승인 2014.03.31 2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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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이들이 21세기를 ‘불확실성(uncertainty)의 시대’라 부른다. 그만큼 변화가 심하고 확실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며 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감도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에 필요한 다양한 역량을 동시에 쌓아서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를 신속히 따라잡는 대응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은 이들이 조언한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변화를 따라잡는 것이 과연 좋은 대처 방법일까? 무엇보다도 예측하지 못했던 변화를 매번 따라잡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걸까?

  경제학에서 출발한 불확실성의 개념은 ‘발생 가능한 다양한 상황을 규정할 수는 있으나 이러한 개별 상황들이 발생할 확률을 확정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한다. 가령 취업에 필요한 조건들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고 있으나 그중 어떤 조건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될지는 모르는 경우를 말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가능한 모든 미래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가령 자격증 시험의 지원자들이 어떤 선택 과목에 몰릴 것인지 알 수 없다면 자격증을 취득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든 과목을 공들여 공부하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일단 따라해 모든 부문에서 최소한 평균 수준의 성과라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유행은 일단 따라 잡아야 하는 것이고, 남들이 많이 하는 행동은 그 이유를 따지기 전에 일단 자기도 해둬야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미래가 ‘이러이러한 모습 중 하나일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가? 우리가 겪는 사회적 불안은 자신이 예측하는 다양한 미래 중 어떤 것이 실현될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미래의 모습 그 자체를 적절히 열거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나라의 대학입시제도가 좋은 예인데 처음에는 이해력과 암기력이 중요했다가 얼마 지나서는 논리력과 논술이 중요해지고 나중에는 봉사실적도 합격의 중요 기준이 됐다. 이러한 기준들이 새롭게 등장할 것이라고 그 누가 예상할 수나 있었을까? 이러한 일들은 사회 곳곳에서 흔하게 발견되는데 몸보다 옷을 크게 입던 시기가 있으면 얼마 후에는 딱 맞는 옷이 좋다고 한다. 근육이 있는 남성이 건강미가 있다더니 가는 허리의 마른 남성이 매력적인 시기로 바뀐다. 즉 우리는 미래의 변화된 모습을 다양하게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모습의 미래가 존재할 것인지 그 자체조차 예측할 수 없는 ‘모호성(ambiguity)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모호한 미래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아주 엉뚱하게도 모호성에 대처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은 그러한 모호성에 휘둘리지 않는 주관으로 사회를 규정하고 일관된 노력을 쌓아가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이질적인 변화를 모두 따라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양한 판단 기준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더라도 일련의 사건들 속에 내재된 큰 흐름을 발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가능하다. 다양한 판단 기준들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본질 그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가령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능력은 어떠한 유행이 와도 남들에게 인정받고 인기를 얻는 비결이 아니던가? 자신이 열중할 수 있는 분야를 스스로의 취향에 따라 발견하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역량을 쌓고 이를 기반으로 한 자신감을 지닐 필요가 있다. 남들과 비교하기 전에 자신의 목표와 비교해 봐야 한다. 가장 상식적이고 미련한 정공법만이 이 복잡하고 모호한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좋은 전략인 것이다.

  모호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행동을 그르치기 쉽다. 주변이 낭떠러지일지 모르는데 암혹 속에 있으니 그 두려움이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이 두렵다고 다른 사람의 팔을 붙잡고 똑같이 걸어간다고 해서 내가 살아날 확률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심리적 위안이 될 뿐이다. 이런 암혹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작게나마 자기 주변을 밝힐 수 있는 빛을 스스로 보유하는 것, 그러기 위한 노력을 거듭하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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