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의 눈을 뜨게 해준 책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학의 눈을 뜨게 해준 책 역사란 무엇인가
  • 사학과 남동신 교수
  • 승인 2004.03.29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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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의 눈을 뜨게 해준 책
역사란 무엇인가
사학과
남동신교수
  1980년 봄. 나는 낭만과 꿈으로 가슴 설레이던 그야말로 freshman이었다. 당시 인문대생들은 교양필수로 ‘사학개론’을 들었는데, 백발이 성성한 노교수께서 커다란 강의실 울리며 열강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중에서 생각하는 한마디 ‘가위(오려두기)와 풀(붙이기)의 역사’는 이후 논문을 쓸 때마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그러던 서울의 봄은 5.17에 뒤이은 전국대학교 휴교령으로 무참히 끝나고 말았다. 그러자 노교수께서는 역사철학에 관한 몇몇 책을 지정하여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하셨다. 그때 학교 대신 집안에 틀어박혀 울울한 심사를 달래가며 읽은 책이 바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이 책은 저자가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한 것을 그해 가을에 묶어서 출판한 것이다. 영국출신의 저자는 수십년 동안 외교관과 언론인으로서 현장 경험을 쌓았으며, 나중에 학자로서 국제정치학과 역사학에 관한 주목할 만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풍부한 현장 경험 위에서 당시 역사학의 주요한 화두를, 역사가와 사실, 사회와 개인, 역사의 두 얼굴- 과학과 도덕 역사에 있어서 인과관계, 진보로서의 역사, 넓어지는 지평선-이성의 확대라는 여섯 주제로 나누어 이를 심도있게 성찰하였다. 그러한 성찰을 통하여 그가 내린 정의는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였다. 그런데 현재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짧은 경계선에 불과하므로, 사실은 미래와 과거 사이의 대화인 셈이다. 역사를 연구하는 목적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서 절대적인 법칙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투명하지만 진보하는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비판적인 통찰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진보란 니체에 이르기까지 서구 지성인들이 한때나마 회의하였던 인간 이성의 확대를 의미하였다. 나만이 아니라 많은 대학생들이 이 책을 읽음으로써 비로소 역사학에 눈을 떴다. 역사는 더이상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류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학문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권력의 폭압으로 이성이 철저히 유린되던 시절 이 책 또한 공안당국에 의해 불온도서로 낙인찍혀 금서목록에 올랐던 적이 있다. 카아라면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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