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다음 재난을 준비하자
[교수칼럼] 다음 재난을 준비하자
  • 최승원(심리학과) 교수
  • 승인 2014.05.26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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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다시 대참사가 일어났다. 우리 구조당국은 단 한 명의 생존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사고도 끔찍한 일이지만 더 충격적인 것은 우리사회가 이런 재난을 대비할 어떤 준비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매일같이 피해자 및 지역주민들의 심리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이와는 전혀 딴판이다. 이곳에도 부처 간의 이기주의와 알력 다툼이 존재하며 주요 지원담당 시설 간의 역할 혼선이 한 달이나 지속됐다. 셀 수 없이 많은 자원봉사 상담자들이 안산에 찾아오고 있지만 막상 이들이 투입돼 일을 할 곳을 결정해주는 컨트롤 타워는 찾기 어렵다.
 
  이제 어떤 일들이 피해자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생존자들은 위험한 세상에 대한 불안과의 싸움을 시작할 것이다. 이들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바깥출입을 삼갈 수 있으며 대인관계의 문제도 나타날 수 있다. 세상에 대한 불신은 무기력과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끝내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감을 경험하는 피해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생존자였던 단원고 강민규 교감선생님의 경우가 그러했다.
 
  생존자들을 위한 심리적 응급조치가 필요했고 이들을 안전한 환경에 보호하는 것도 필요했다. 하지만 이미 그런 부분들을 지적해도 부질없는 일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미 최선의 대응은 어려워진 상태다. 컨트롤 타워도 부재하지만 심리적 지원을 담당할 전문 인력이 훈련돼 있는 것도 아니고 응급처치 및 장기적 치료를 위한 프로그램도 개발돼 있지 않다. 교수도 박사도 많지만 문제를 해결할 전문가 한 명이 없는 것이 2014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이다.
 
  하지만 마냥 열악한 현실을 개탄만 할 수는 없다. 비록 오늘 그들을 위한 최선을 하지는 못했지만 언제고 다시 일어날 새로운 재난상황에서는 준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다음 재난이 일어나기 전에 우리 사회는 다음과 같은 심리 지원책들을 준비해야 한다.

  첫째, 정부는 상시 동원 가능한 예비인력 풀을 확보해야 한다. 재난의 심각도에 따른 투입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이에 참여할 공공 심리치료 인력 및 민간 전문가의 명단을 사전에 확보해 놔야 한다. 이들은 재난이 발생된 순간 자신의 직장에서 즉시 활동 장소로 집결할 수 있게 훈련돼 있어야 한다. 일종의 심리지원 예비군 제도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최적의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심리지원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심리지원 관련 학회 및 협회도 최고의 인재들을 준비해 둬야 한다. 이번 사고가 발생하자 정신의학계는 대형병원 소속 의사 중 일부를 빠르게 사고 현장에 투입시켰으며, 이는 매우 적절한 대처였다. 하지만 다수의 대체근무 의료진을 확보한 대형병원과 달리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은 개업 환경이나 공공기관, 기업 등에 속해 근무하고 있기 때문에 생업을 접고 피해자 지원에 장기간 전념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은 대학 소속 심리학 교원들의 적극적인 출동 준비가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대책은 우리 모두가 장인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심리학 박사와 교수가 있지만 긴급 재난상황에 대한 심리평가 도구도 응급심리치료기법도 변변히 준비하지 못 했다. 이런 주제의 연구를 미련할 정도로 꾸준히 해온 전문가를 찾기도 어렵다. 이는 무엇보다 돈과 서류에 영합해 해바라기처럼 매년 연구주제를 바꾸어온 우리 학계의 문제이며, 나 또한 그 관행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제라도 우리는 자신이 맡은 바 한 가지의 진정한 전문가가 되려는 장인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그런 과정이 선행된다면 우리는 다음번 재난이 발생되었을 때 이를 해결할 다양한 수단을 확보할 것이다.

  시간이 없다. 다음 재난이 발생될 시점은 그리 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학생들 한 명 한 명도 유행을 쫓아 특정 직업을 쫓아다니기보다 자신만의 분야에서 진정한 전문가들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길 바란다. 장인정신을 가진 전문가들이 늘어난다면 우린 어떤 위기도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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