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행복한 도둑, 그리고 마르께스를 추모하며
[교수칼럼] 행복한 도둑, 그리고 마르께스를 추모하며
  • 권은희(스페인어과) 교수
  • 승인 2014.06.10 1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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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어권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가 최근 세상을 떠났다. 현대 세계문학의 중요한 축을 담당했던 중남미문학의 중심 인물들이 이렇게 하나하나 사라져가고 있는 아쉬움 속에, 문학계에는 또 다른 변화, 또 다른 비전에 대한 기대감도 일어나고 있다. 마침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번역해 본 <토요일의 도둑>이라는 작가의 짧은 작품이 있어, 그를 추모하면서, 일상에서 환상으로, 그리고 환상에서 다시 일상으로 오가는 그의 글쓰기 작업을 회고해 본다.

  <<우고, 주말에만 도둑질하는 그가 토요일 밤 어느 집으로 들어간다. 그 집의 안주인 아나는 서른 남짓에 미모를 갖췄다.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는 아나는 현장에서 침입자를 발견한다. 권총으로 위협당한 그녀는 보석이며 귀중품들을 가져다주며 자신의 세 살배기 딸 파울리는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아이가 그를 보게 되자 그는 몇 가지 마술을 보여주면서 이내 아이의 환심을 산다.

  한편 우고는 ‘여기서 지내는 것도 좋은데, 일찍 떠날 필요가 뭐 있겠어?’라고 생각한다. 그는 주말 내내 여기 남을 수 있으며 이 상황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음을 잘 안다. 아나의 남편이 출장으로 일요일 밤까지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그는 남편의 바지로 갈아입고는 아나에게 자기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샴페인을 꺼내 올 것이며 만찬을 위해 음악도 틀어달라고 요구한다. 그는 음악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다.

  저녁을 준비하면서도 아나는 딸이 걱정돼 침입자를 내쫓을 방안을 고민해봤지만 별 수가 없었다. 우고는 이미 전화선을 끊어버렸고 집은 외진 곳, 거기다 지금은 밤이라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나는 우고의 잔에 수면제를 한 알 넣기로 결심한다.

  저녁식사를 하던 도중, 도둑은 자신이 은행 야간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듣는 라디오 대중음악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바로 아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고는 열렬한 애청자다. 카세트에서 흘러나오는 거장 베니의 ‘어떻게 된 거야’를 들으며 그들은 음악과 음악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나는 우고를 잠재우려 수면제를 넣은 것을 후회한다. 그가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상처를 줄 의도 없이 편안하게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늦었다. 이미 수면제는 잔속에 있고 도둑은 만족스럽게 잔을 비운다. 그런데 착오가 하나 있었다. 수면제가 든 잔을 비운 건 바로 아나였고, 그녀는 순식간에 잠들어버린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뜬 아나는 옷을 입은 채로 잠들었으며, 누군가가 자신을 침대에 눕혀주고 이불까지 덮어줬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원에서는 이미 아침식사를 마친 우고와 딸 파울리가 놀고 있다. 아나는 어느새 친해진 그들의 모습에 놀란다. 게다가 이 도둑이 요리까지 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아나는 묘한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 순간 한 친구가 그녀를 식사에 초대하려고 집을 방문한다. 우고는 불안해하지만 아나는 딸이 아프다는 말을 지어내며 그녀를 돌려보낸다. 그리고 셋은 집에 남아 일요일을 만끽한다. 우고는 휘파람을 불며 지난 밤 망가뜨린 창문과 전화선을 고친다. 아나는 자신이 아주 좋아하지만, 누구와도 함께 연습할 수 없었던 춤을 우고가 아주 잘 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가 먼저 한 곡 출 것을 제안하고 그들은 짝이 돼 오후가 될 때까지 그렇게 춤을 춘다. 파울리는 이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치다가 이내 잠이 든다. 지친 두 사람도 거실 소파에 함께 눕는다.

  시간가는 줄 모를 정도로 황홀한 하루를 보냈고 이제는 남편이 올 시간이다. 아나가 말렸지만 우고는 자기가 훔쳤던 모든 물건을 돌려주고 집에 도둑이 들지 않도록 몇 가지 예방법도 말해준다. 그리고는 적잖은 아쉬움을 안고 두 여자와 작별한다. 아나는 멀어져가는 우고를 바라보다가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소리쳐 부른다. 그가 돌아오자 아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다음 주말에도 남편이 출장을 갈 것이라고 말해준다. 토요일의 도둑, 우고는 행복에 겨워 춤을 추며 어두워진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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