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로 세상보기] 그 목소리에는 시효가 없다
[네모로 세상보기] 그 목소리에는 시효가 없다
  • 장우진 기자
  • 승인 2014.11.11 17: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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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태완 군의 영정. 태완군의 진술을 신뢰하지 않은 경찰은 초동수사에서 수차례 실수를 범했고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범인을 잡지 못했다.
  1999년 5월 20일 의문의 남성에 의해 6살 소년 태완이는 황산을 뒤집어썼다. 당시 세간을 들썩이게 한 ‘대구 황산테러’ 사건이다. 전신 40%에 4도 화상을 입은 채 인근 주민들에게 발견된 태완이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생존 확률은 단 5%였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태완이는 49일 만에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고 유가족들의 전쟁 같은 15년이 시작됐다.

  “엄마, 아빠가 나쁜 아저씨를 꼭 잡아줄게.” 그렇게 약속한 부모는 그날부터 사람이길 포기했다. 아이의 증언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경찰의 말에 부모는 화상의 고통으로 아파하는 아이에게 그날의 상황을 묻고 또 물었다. 대답하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어머니의 가슴도 찢어졌다. “그때 나는 엄마도 아니었어요.” 기도와 식도까지 화상을 입은 아이에게 몇 번이고 말하도록 해야 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태완이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부모자식의 고통 끝에 300여 분에 이르는 태완이의 증언 테이프가 만들어졌다. 태완이는 놀랍도록 선명하게 그날 일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특정인물을 계속 언급했다. 그러나 태완이의 증언은 수사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경찰은 태완이의 부모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유도질문을 했다며 증언 내용을 묵살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이웃집 아저씨는 태완이를 비롯한 증인들과 상충되는 증언을 했음에도 경찰은 용의자의 손을 들었다.

  공소시효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추적 60분> 제작진은 12명의 진술분석가를 불러 모아 당시 경찰에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태완이의 증언을 분석했다. 심리학 박사, 아동진술분석 전문가, 경찰대학교 교수 등 각계 전문가들이 총 출동해 3단계에 걸친 분석과 토론이 진행됐다. 전문가들은 태완이의 진술은 일관되고 신뢰도가 높으나 진술을 통해 특정 인물을 범인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태완이가 증언 중 지속적으로 언급한 이웃집 아저씨는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번에야말로 증언이 빛을 발하길 기대하며 유가족들은 전문가들의 최종 소견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공소시효 완성까지 7일이 남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다시 살펴봐도 진술 내용에 범인을 특정할 만한 내용이 없다며 태완이의 진술을 묵살했다. 결국 검찰도 용의자로 지목된 이웃집 아저씨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얼마 남지 않은 시효를 앞두고 유가족들은 또다시 절망에 빠졌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손 쓸 도리가 없어진 유가족들은 현재 법원에 재정 신청을 요구해 약 90일간 시효를 정지시킨 상태이다. 차후 법원이 재정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구 황산테러’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만료된 ‘개구리소년 실종 사건’에 이어 두 번째 아동 대상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한 아이의 생명을 앗아가고 그 부모를 15년간 지옥 속에 살게 한 남자가 시간이 준 면죄부를 받은 채 뻔뻔하게 우리와 함께 살게 되는 것이다. 숨바꼭질하다 지친 술래처럼 “못 찾겠다 꾀꼬리”를 외친 우리는 유가족의 비명을 외면한 채 또 한 명의 범죄자를 받아들일 것인가.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황산에 타 녹아버린 목으로 힘겹게 증언하던 태완이의 목소리가 아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6살 아이의 목소리와 고통에는 시효가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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