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교수칼럼]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 윤혜란(약학) 교수
  • 승인 2014.12.08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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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가정과 일의 균형을 잡기가 너무 힘들구나’라는 고민과 정신적, 신체적 갈등이 교차하던 때 원고 청탁을 받았다. 생각해보니 보통 여성들의 육아시기가 20-30대인데 반해 내 경우의 육아시기가 워낙 늦다 보니 신체나이와의 조화가 잘 맞지 않아서 힘들었던 것이었다.

  내 강의 약품분석학 첫 장은 저울로 질량을 재는 것에서 시작한다. 신입생들은 저울로 무게재는 것을 3시간 이상씩 걸려 겨우 배운다. 시간이 걸리는 곳은 바로 균형을 매 순간마다 맞춰야 하는 지점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바닥의 수평, 다음 전자저울의 수평, 그 다음 용기를 놓고 다시 균형을 맞춘 후 물체를 올려놓고 또 균형을 맞춘다. 전자식 저울은 물체의 무게와 전자식 저울의 전류 간의 균형이 맞춰진 후 디지털로 읽혀지는 숫자를 읽어 질량을 잰다. 이런 간단한 균형 잡기도 시간이 걸리는데 하물며 복잡한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디 쉬우랴.

  20대 학생들에게는 어쩌면 학업과 진보성향 사이에서의 균형 잡기가 고민일 수도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였던 프랑수아의 기조는 “20대에 공화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고, 30대에도 공화주의자로 남아있으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 후 윈스턴 처칠 등은 이 말에서 공화주의자를 사회주의자로 바꿔 사용하며 이는 명언으로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해석은 제각각이겠지만 사람은 나이에 따라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므로 젊었을 때는 너무 현실과 타협하기보다는 휴머니즘과 이상주의의 뜻을 품어보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학생들은 현실과 이상적인 내 삶의 조화를 상상하며 균형을 잡기 위한 끊임없는 내적 갈등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필자는 왜 심장사하면 뇌는 즉시 따라죽는데 뇌사일 때는 심장이 즉시 따라죽지 않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뇌리를 스쳐지나가기도 한다.

  대학교수로서의 삶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균형이 필요하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자식, 육아와 일, 건강과 일 사이에서의 균형을 잡아야하고 대학에서는 대학외부의 일과 내부의 일, 강의와 연구 사이에서의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양쪽 모두 많은 비용과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이다. 볼테르가 “일은 우리를 권태, 악덕, 욕심이라는 3대악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말한 만큼 그 중요성이야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사회가 분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타임지의 조사에 따르면 ‘일과 삶의 균형’이란 말이 2007년 한 해에만 1674번이 언급돼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법정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지만 실제는 주 60시간을 족히 넘게 일한다고 한다. 이 현실 앞에서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방안을 강구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잡기에는 역부족인 것만은 사실이다.

  건강과 일의 균형과 관련해 말을 하자면 우리의 많은 노력을 비웃듯이 이를 저해하는 요소가 더 많은 환경에 놓여있다.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 온라인판에 실렸던 이화여대 이원재 교수팀이 밝힌 흥미로운 과학적 진실을 접하면서 건강과 일의 균형에 대해 잠시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초파리의 장 속에는 유익균 A911은 10만 개, 유해균 G707은 8백 개 정도로 유익균 수가 월등히 많다. 연구팀이 초파리의 코달유전자의 기능을 억제하였을 때 면역체계가 과도하게 작동하면서 세균을 공격해 유해균은 증가하고 상대적으로 더 약한 유익균이 줄어들면서 초파리의 장에는 심한 염증이 생겨 수명(60일)의 절반을 넘기지 못한 채 죽고 말았다. 우리 몸은 면역체계상 유익균과 유해균이 장에서 공생하면서 유익균은 보호하고 유해균은 증가하지 않도록 코달유전자가 과도한 면역기능을 억제하며 세균분포를 조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균형이 깨져 면역기능이 지나치게 되면 오히려 유익균이 더 많이 죽게 돼 세균 분포의 불균형으로 질병이 생긴다.

  과연 우리의 삶에서는 가정과 일과 건강을 적절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하는 코달유전자는 없는 것일까. 한 해를 마치는 마지막 달이어서 더더욱 우리의 삶과 직장인 대학에서의 ‘균형’이라는 단어가 잘 안착될 곳이 없는 것인지를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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