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기초학문이 개혁 대상이라니
[교수칼럼] 기초학문이 개혁 대상이라니
  • 한우진(철학) 교수
  • 승인 2015.03.02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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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정부는 올해 국정과제인 4대 개혁 중 하나로 대학 구조개혁을 꼽고 있다. 그 핵심은 대학 정원 감축과 사회수요에 맞는 인력 배출이다. 교육부 장관은 ‘인문학보다 취업이 우선이다’ ‘인문대학을 하면 구조 조정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리버럴 아츠의 핵심인 인문·사회·자연뿐만 아니라 사범·예체능을 포함, 공학을 제외한 전 분야를 골칫거리로 취급한다. 정부는 인문학을 ‘천송이’나 ‘국제시장’ 등의 콘텐츠로 본다. 이는 영화 ‘쥐라기 공원’이 현대차 수 십 만 대의 돈을 벌었다고 말하던 그 수준이다. 오히려 우리대학과 같이 기초학문을 고루 갖춘 대학은 ‘백화점식 학과’라는 낙인을 선사받고 있다. 사회 수요는 고려돼야 하지만 인문대가 없으면 대학이 아니라 공대나 전문학교일 뿐이다.

  정부는 몇 분야에 연구비를 몰아서 노벨상을 따려는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기초학문 대신 공학 인력을 키우겠다는 나라에서 공학 부문이 없는 노벨상을 노리다니. 일본 노벨상의 산실인 교토대의 자랑은 ‘일등’을 하라는 게 아니라 ‘유일한 것’을 하면 노벨상이 따라온다는 지적 풍토이다. 동경대생 10명이 모이면 1개의 의견이 나오고 교토대생 10명이 모이면 100개의 의견이 나온다는 농담도 있다. 우리나라는 자유로운 연구풍토와 기초학문의 넓은 저변의 결과인 노벨상에만 의미를 두니 노벨상 과학자가 나와도 김연아와 같이 척박한 환경에서 나온 돌연변이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융·복합하는 인문학은 살려준다고 한다. 인문학과들은 강제로 짝짓기를 해야 할 판이며 학생들은 코딩을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구호로서 ‘융·복합’과 ‘창조’를 외치면 뭐가 뚝딱 나올까? 구호보다 다양성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먼저이다. 잡스의 ‘동네 형’이었던 워즈니악은 차고에서 취미로 애플 컴퓨터를 만들었다. 진정한 융·복합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같은 문제점을 공유할 때 가능하다. 단기간의 성과를 기대하며 ‘융·복합’을 외치면 노벨상과 잡스가 나올까? ‘창조경제’ 구호가 진정한 창조를 방해하는 역설이 발생할 지경이다.

  교육부에선 청년실업 문제를 대학에 떠 넘겨 졸업자들의 단기간 취업으로 실업률을 관리하려 한다. 엔지니어는 기업에서 부품으로 소모되다가 치킨집에 먼저 자리 잡은 인문계 출신들과 조우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최고 직장이던 조선업체에 취직했던 많은 젊은이들이 현재 이직 준비 중이다. 또 작년까지 가장 인기 있던 정유사도 큰 적자로 울상이다. 결국 기본기와 함께 유연하게 자신을 발전시킬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 아닐까?

  혹자는 철학과가 있어야 철학교육이 가능한 것은 아니며 모든 대학에 철학과가 있을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전체 4년제 대학 중 철학과가 있는 곳이 4분의 1이 채 안 될 것이다. GNI 3만 불 시대에 1만 불 시대에나 어울리는 정책으로 지속적이고 질적인 발전이 가능할까? 읽기와 쓰기를 힘겨워하는 대학생과 사회인을 보면 결국 문제는 기본기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려운 글 읽기/ 비판적 논증의 구성/ 머리에 쥐가 날 때까지 생각하기 등의 지속적인 훈련이 몇 철학교양 수강으로 가능할까? 다른 기초학문도 마찬가지다. 해당 학문의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감수성이 키워진다. 고급 기본기와 감수성을 갖춘 학생들이 사회에서 다양한 일을 하면 자연히 융·복합과 창조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다양성을 황폐화시키면서 다양성의 결과만을 바라고 있다.

  지난 10년 정도 융·복합과 실용이라는 두 토끼를 쫓기 위해 ‘콘텐츠’ 학과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는 인문학과 통폐합을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런데 콘텐츠 학과가 있어야만 천만 관객 시나리오가 나오는가? 오히려 다양한 지적 배경을 가지고서 영화에 심취했던 사람들이 거장이 됐다. 박찬욱과 봉준호의 작품세계에 이들의 전공인 철학과 사회학이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는 그들의 작품이 잘 보여준다.

  영미 대학은 우리대학의 ‘이소세’가 부끄러울 정도로 무지막지한 리딩을 학생에게 퍼붓는다. 마이클 샌델의 ‘정의’ 강의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학생들이 실제로 텍스트를 읽고 와서 강의와 토론이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대학교육의 경쟁력이 바로 여기에 있을 텐데, 기초학문을 고사시키는 정책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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