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학술 - 에이즈와의 세계대전
영화로 보는 학술 - 에이즈와의 세계대전
  • 조명환 건국대학교 생명과학특성학부 교수
  • 승인 2015.03.02 2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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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The Cure, 1995)>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에서 에릭은 에이즈에 걸린 옆집 소년 덱스터와 친구가 된다. 덱스터는 어렸을 때 수혈에 의해 에이즈에 감염됐다. 에릭은 한 의사가 에이즈 치료약을 발명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 약을 얻기 위해 뗏목을 타고 모험을 떠난다. 그렇다면 덱스터가 걸린 에이즈는 어떤 질병이며 과연 치료될 수 있는 것일까?


 

  1981년 미국 LA에서 처음 발견된 에이즈는 우리와 34년간 함께하고 있다. 에이즈 발견 초기에는 주로 동성연애자들이 감염되는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에 미국의 유명 목사들은 에이즈를 신이 내린 저주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 안 돼 에이즈가 모든 사람들이 걸릴 수 있는 질병인 것을 알게 됐다. 에이즈 바이러스(이하 HIV)는 성 접촉, 수혈, 모자 감염을 통해 전염된다. 그러나 수혈 혹은 감염된 산모를 통해 아기가 감염되는 상황에 처할 확률은 매우 낮으며 HIV 전염은 99% 이상 감염자와의 성 관계를 통해 이뤄진다고 보면 된다.

  에이즈는 매우 독특한 질병이다. 간염 바이러스는 간염을 일으키고 독감 바이러스는 독감을 일으키고 설사균은 설사를 일으킨다. 그러나 HIV는 우리의 질병 방어막인 면역체계를 무너뜨릴 뿐이다. 면역체계는 다양한 백혈구로 이뤄져 있는데 HIV는 그중에 제일 중요한 백혈구인 T 림프구를 파괴한다. T 림프구는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존재이다. 모든 백혈구가 중요하지만 T 림프구의 도움과 지휘가 없으면 다른 백혈구들은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HIV는 매우 스마트하다. 모든 군인들을 공격할 필요 없이 마치 군대의 최고 사령관을 체포함으로써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기막힌 전략을 구사한다.

  HIV가 똑똑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HIV는 감염 후 사람을 금방 사망하게 하지 않는다. 그러면 HIV도 숙주와 함께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감염인은 평균 10년 동안 특별한 증상 없이 정상인처럼 똑같이 활동하며 아무런 지장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다가 HIV가 T 림프구를 본격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면역체계가 무너지고 에이즈가 발생하게 된다. 정상인의 혈액 1ml 당 1,200개 정도의 T 림프구가 있는데 에이즈 단계에 이르면 200개 이하로 떨어진다. 이렇게 면역체계가 무너지면 다른 균들이 방해 받지 않고 병을 일으키는데 이것을 에이즈라고 한다. 결국 에이즈 환자는 HIV가 아닌 결핵, 피부암, 설사 등 다른 균들이 일으키는 증상으로 사망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마지막 에이즈 증상이 있는 사람을 에이즈 환자라고 부르며 아직 증상이 없이 잠복기에 있는 사람을 ‘HIV 감염인’이라고 한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가 HIV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 즉, 치료약과 백신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현재 30여 종 이상의 치료약들이 개발돼 치료가 잘 되고 있다. 과거에는 HIV가 감염되면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었지만 지금은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이 됐다. 미국 LA 레이커스 농구선수였던 매직 존슨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국내에서도 치료를 받으며 25년 이상 에이즈 증상 없이 건강한 생활을 하고 있는 감염인들이 있다. 이는 의료·과학 기술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에이즈로 인한 사망률이 매년 감소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백신은 없다. HIV가 돌연변이를 통해 모습을 자주 바꾸면서 항체의 공격을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성관계를 가질 때 콘돔을 사용하는 것이 유일한 에이즈 예방법이다. 예방은 어렵지만 좋은 치료약들이 많아 치료는 잘 이뤄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으나 에이즈는 치료는 잘 되고 있는데 치료가 안 되고 있는 질병이다. 현재 전 세계 3천 5백만 명이 HIV와 함께 살고 있으며 이 중 71%가 아프리카에 살고 있다. 문제는 1년 치료비가 1천만 원 이상 드는 관계로 선진국에 살고 있는 환자들은 치료 혜택을 받고 있지만 아프리카에 있는 환자들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이러한 이유로 좋은 치료약들은 많이 개발됐지만 치료 혜택이 대부분 감염인들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는 과학자가 치료약이나 백신을 개발하면 질병이 정복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과학자가 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겠다는 꿈을 꿨다. 그러나 에이즈를 연구하면서 과학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는 질병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결국 필자는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이 돼서 통섭을 이용한 에이즈 퇴치 운동에 나서게 된다. 지금까지 에이즈와의 전쟁에서 의학·자연과학 분야를 이용했다면 여기에 사회과학이라는 도구를 함께 사용하는 전략을 쓰게 된 것이다. 과학자가 개발한 치료약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되게 하기 위해 빌 게이츠 같은 기업인들이 돈을 기부하도록 하며 빌 클린턴 재단 및 아시아 대통령 등 정치인들로 하여금 에이즈 예방 및 치료 정책을 수립하고 관련 예산을 증액하도록 해 어려운 감염인들의 치료를 돕도록 했다. 또한 아시아 지역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감염인들이 쉴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하는 등 인권운동을 전개했다. 이처럼 과학자, 의사, 기업인, 정치인, 시민단체 등이 연합하여 통섭적으로 에이즈 이슈에 접근했다. 에이즈는 단순한 의학적 이슈가 아니고 사회적·경제적 이슈이기 때문이다.

  UN이 에이즈라는 단독 질병 이름으로 만든 유일한 기구가 UNAIDS이다. 말라리아, 결핵, 암, 당뇨, 심장병 등 이름으로 UN기구를 만들지 않았지만 에이즈는 UNAIDS라는 전담 기구를 둬 에이즈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1차와 2차 세계대전에서 각각 3천 7백만 명, 6천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한국전쟁에서 1백 50만 명이 사망했다. HIV가 발견된 이후 이미 사망한 3천 9백만 명을 포함해 총 7천 8백만 명이 HIV에 공격당한 상황이다. 앞으로 계속 피해자는 늘어날 것이다. 인류는 HIV와 조용한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으며 조만간 끝날 것 같지 않다.

  에이즈와의 전쟁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다. 에이즈는 일상 접촉으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즉 악수나 포옹 등 피부 접촉은 물론 심지어 키스를 해도 전염되지 않는다. 함께 직장생활을 하거나 공부를 해도 전염되지 않는다. 공기 전염이 안 되므로 전염병도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독감이나 결핵보다 안전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감염자들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너무 심하다. 사람이 아프다는 이유로 공부하고 일할 권리가 침해돼서는 안된다. 우리는 병에 걸린 사람을 직장과 학교에서 떠나기를 바라며 차별하지 않는다. 에이즈는 전염병도 아니고 일상 접촉을 통하여 전염되지도 않는데 감염인을 차가운 편견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감염인들이 주위의 차가운 시선이 힘들어서 직장이나 학교를 떠나야 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따듯한 위로가 필요한 아픈 사람들 일 뿐이다. 치료를 일찍 시작하면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데 이들은 사회의 시선이 두려워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며 치료 시기를 놓치고 있다. 감염인들은 본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에이즈가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차별과 편견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에이즈와의 세계대전에서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차별과 편견이 없는 사회가 되면 그 시기는 더욱 빨리 올 것이다. 우리 자녀들은 에이즈가 독감처럼 취급되는 시대에서 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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