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덕성의 자화상
[교수칼럼]덕성의 자화상
  • 정무정(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5.05.18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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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6일 교수신문이 창간 23주년을 맞아 ‘지금, 대학교수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주제를 정해 전국 4년제 대학 조교수 이상 전임교수 78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 결과는 대학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특히 대학교수의 위상이 낮아지고 있다는 부정적 자기인식이 80.2%, 학문 생태계의 붕괴 예상이 75.8%,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이 49.8%였다는 사실은 좌절감과 무기력이 팽배한 대학사회의 현주소를 잘 말해준다.

  이러한 좌절감과 무기력은 정원 감축과 학과 개편을 골자로 한 학과 구조개혁의 파고가 고조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실 도도하게 밀려들고 있는 집채만 한 파도를 바라보며 전율을 느끼는 것은 학내 구성원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낭만주의자라면 그 전율에서 숭고미를 찾아볼 수 있겠고 미래주의자라면 학과 구조개혁의 칼날을 미적 현상으로 치환할 수 있겠건만, 냉혹한 현실은 미적 차원이 개입될 여지를 봉쇄한 채 더더욱 삭막한 풍경만을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지난 5월 11일 대학은 학과 구조개혁 관련 학칙 개정안(이하 학칙 개정안)을 공지했다. 이번 학기에 들어 그간 물밑으로 진행되던 학과 구조개혁의 방안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겠지만, 일단 이 학칙 개정안은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 변화로 촉발된 위기 상황에 대한 학내 구성원의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덕성의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다. 

  학칙 개정안에 따르면 본부가 제안한 4가지 모델 중 융합학과로는 △역사학·미술사학과 △사회학·철학과 △나노생명화학과 △조형예술학과, 융합형 소학부로는 △글로벌인재학부(문화인류·정치외교학과) △휴먼서비스학부(아동가족·사회복지학과), 일반 소학부로는 △유럽문화학부(불어불문·독어독문·스페인어학과) △디자인학부(실내디자인·시각디자인·텍스타일디자인학과)가 만들어지고 나머지 학과는 기존 학과제를 유지하는 것으로 돼 있다. 앞으로 학내 의견 수렴을 통해 학과나 학부 명칭의 변경 등이 가능하겠지만 대체적인 틀은 유지될 것으로 예측된다.

  전반적으로 학칙 개정안은 대학교육에 대한 사회적 수요 변화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한 자구책의 성격이 짙다. 따라서 대학평가에 직면해 일정에 쫓기며 급조해낸 학칙 개정안은 근시안적 대책이며 한 치  앞도 내다볼 여력이 없는 우리의 초라한 자화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그간 학과 개편에 관한 논의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의 양상도 명분과 실리, 학과의 정체성과 이기주의의 양 극단을 오가며 위태로운 줄타기를 펼친 서글픈 퍼포먼스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학과 구조개혁의 논의 과정에서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며 부대꼈고, 앞으로의 시행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나겠지만 서로의 민낯을 알고 있기에 이해의 토대도 그만큼 탄탄해졌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렇게 구축된 구성원들 간 이해의 토대를 향후 대학교육의 근본적 성격 변화에 대비해 이뤄질 덕성의 방향 모색과 연계시키는 작업이라 하겠다. 우리대학의 미래를 좌우할 이 작업이야말로 내부의 갈등을 발전적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그간 학과 구조개혁의 폭풍 속에서도 무풍지대로 남아 있는 재단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재고가 중요하다.

  우리는 이미 ‘덕성여자대학교 학칙을 기준으로 입학정원 20인 이하인 학과에 대하여는 통합 또는 조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는 이사회의 일방적 의결사항 통지로 인해 자율적으로 진행되던 학과 개편 논의가 경직성을 띠고, 대학본부의 태도도 다소 강압적으로 변해간 경험을 한 바 있다. 불확실한 미래의 교육환경과 대학교육의 성격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덕성의 미래 비전을 마련하고 그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구하고 비전의 실현을 위한 재정계획을 세우는 것이지 학사행정 개입의 혐의가 짙은 일방적 의결사항의 통지가 아니다. 폭풍우를 벗어나기 위해 서툴지만 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구성원들에게 노를 바꾸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불빛을 비춰주는 등대로서의 재단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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