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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방송작가와 드라마 발전에 헌신하고 싶어요"
2015년 09월 01일 (화) 14:25:14 윤지연 기자 jiyeun1515@duksung.ac.kr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 뒤에서 항상 분주히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방송작가들이다. 신상일 방송작가(이하 신 작가)는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알려지지 않았던 70년대부터 활동하면서 오늘날 방송작가들이 보다 나은 근로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론으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방송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최초로 얻기도 했다. 신 작가를 만나 그의 방송작가 인생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다.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카메라 뒤에서 항상 분주히 뛰어다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방송작가들이다. 신상일 방송작가(이하 신 작가)는 방송작가라는 직업이 알려지지 않았던 70년대부터 활동하면서 오늘날 방송작가들이 보다 나은 근로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초석을 다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평론으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혀 방송평론가라는 타이틀을 최초로 얻기도 했다. 신 작가를 만나 그의 방송작가 인생에 대해 이야기 나눠봤다.

 

 

  방송작가와 방송평론가가 되기까지 

   “대중매체 분야에 진출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어요. 처음부터 작가의 꿈을 가지고 진학했던 건 아니었죠. 졸업을 할 때쯤 딱딱한 언론보다는 좀 더 자유로운 대중매체에서 일하는 것이 나와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대학 졸업 후 1972년부터 KBS, SBS, TBS에서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70년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이던 TBC라디오 <이브의 연가>와 KBS라디오 <상쾌한 아침> 등에서 라디오 원고를 맡으며 활약했다. “작가 초반에는 드라마도 조금 집필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라디오나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작업이 더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점점 드라마 작품보다는 이쪽 분야에 더욱 집중하게 됐죠.”

  그는 뛰어난 글 솜씨를 발휘하며 활동범위를 방송평론까지 넓혔다. 88년 설립된 한국방송비평회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그는 당시 한국에 존재하지 않았던 TV평론이라는 분야의 초석을 다졌다. “그 당시에는 각 일간지에 매주 ‘TV 주평’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코너에서 방송평론을 쓰기 시작했죠. 제가 아마 공식적으로는 최초로 방송평론가라는 칭호를 달고 방송평론을 시작한 사람일 겁니다.”

 

   

 

 

 

  방송작가의 권익을 위해 앞장서다

  “제가 작가로 활동하던 시기는 작가의 권익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았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싶더라고요.” 그는 당시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장이던 김수현 작가와 함께 작가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첫 번째로 시행했던 것은 바로 원고료를 높이는 것이었어요. 그땐 작가들이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 여러 작품의 원고를 썼죠. 작가들이 업무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였어요.” 신 작가의 노력이 통했던 것일까. 방송작가들은 방송사와의 협상을 통해 대가에 맞는 원고료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작가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실행했던 건 저작권료를 받아 내는 거였죠.” 작가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당시는 작가들의 힘이 약하다 보니 작가 고유의 저작물인 원고에 대한 권리가 지켜지지 않았다. “저작권은 방송작가들이 당연히 누렸어야 하는 권리였어요. 저희가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도 아니죠. 작가의 권리를 극히 일부라도 인정해달라는 거였어요. 저작권은 법에도 명시돼 있던 사항이었고 그때만 해도 미국, 유럽과 같은 선진국가에서는 이미 지켜지던 권리였죠.”

  그러나 방송국은 작가들과의 협상에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작가들은 방송국을 상대로 1987년 집필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작가는 글 쓰는 게 무기니깐 어쩔 수 없이 집필 거부 운동을 하게 됐죠. 그런데 집필 거부 운동도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냥 원고를 안 넘기고 안 쓰면 되겠지 싶었는데 그건 또 아니더라고요.” 온갖 압력이 들어왔고 방송사에 몰래 원고를 넘긴 작가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다수의 의식 있는 작가들이 합심해서 결국 성공을 일궈 냈어요. 집필 거부 운동 이외에도 방송사와의 수없이 많은 협상 끝에 이뤄낸 결과였어요.” 신 작가의 이러한 노력은 방송작가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고 한국방송작가협회가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신인 방송작가의 산실, 한국방송교육원

  그리고 신 작가는 ‘실력 있는 방송작가 육성’이라는 또 하나의 도전을 시작하게 된다. “어느 정도 저작권료 문제가 마무리된 후에 김수현 작가와 함께 한국방송작가교육원을 만들자고 주장했어요. 처음에는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신인들을 양산하게 되면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 생각은 좀 달랐어요. 어차피 우리가 발굴하지 않아도 어떤 형태로든 신인은 등장하기 마련이거든요. 어중이떠중이들이 나오는 것보다 교육원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쳐서 10년에 한 명이라도 훌륭한 작가가 나오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 교육원 설립을 주장했죠. 끊임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다보니 반대하던 사람들도 결국 교육원의 중요성을 알고 설립을 허락했어요.” 그 결과 한국방송작가교육원은 드라마는 물론 비드라마 분야에서도 많은 스타 작가를 배출하는 명실상부 최고의 신인 방송작가 발굴소가 됐다. 신 작가는 방송작가들의 권익 향상과 발전의 토대를 닦은 역사 속에 함께했던 것이다. 이후 그는 1996년 한국방송작가협회 23대 이사장으로 당선됐고 이사장 재임 동안 방송 작가들의 처우 개선에 많은 노력을 했다. 

 

   

 

 

  좋은 작가가 된다는 것

  신 작가는 1972년부터 약 35년간 방송작가로 활동했던 당시를 회상하며 방송작가들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내가 당시 작가 생활을 하던 때는 지금처럼 작가들이 많지 않던 시기였죠. 프로그램에 여러 작가가 있는 지금과는 달리 그때는 한 작가가 여러 프로그램을 맡았었어요.” 그 시기에 작가들은 서너 시간밖에 못 잘 만큼 하루하루가 정말 바빴다고 한다. 여러 프로그램 대본을 어떻게 혼자서 다 쓸 수 있었냐는 기자의 물음에 신 작가는 “작가라는 사람은 정해진 분량을 시간 안에 평균 이상의 수준으로 완성해야해요. 항상 그 수준을 지키는 사람이 진정한 작가니까요”라며 웃었다.

  그는 활동 당시를 떠올리며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현재 방송작가 환경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과거에는 ‘작가 중심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가는 원고만 쓰며 원고에만 충실히 임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방송작가들이 섭외 전화도 하고 잔심부름 같은 것도 하는 등 본래 작가의 의미와는 다른 일들도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들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요.” 그러다 보니 작가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점점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작가교육원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빨리 글 쓰는 기술을배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을 종종 볼 수 있죠. 하지만 작가란 그런 것이 아니에요. 글 쓰는 법은 서점에서 파는 작문법 책으로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답니다. 작가는 글쓰기 실력뿐 아니라 자신만의 창작력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각도 필요하죠.”

   신 작가는 작가로서 창작력을 기르기 위해 책 읽기가 습관화돼 있어야 한다고 했다. “드라마 작가의 대모라고 불리는 김수현 작가는 작품이 끝난 후에 책을 쌓아 두고 읽는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점이 다른 작가들과 차별화된 글을 쓰는 원천이라고 할 수 있겠죠.”

  차근차근 기본부터 다져나가세요.

  마지막으로 기자는 덕성여대 학우들에게 한 마디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왜 사회가 젊은 사람들을 원하는지 잘 파악해야 해요.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 일도 훨씬 능숙할 텐데 왜 항상 사회는 젊은 사람들을 원할까요? 바로 젊은이들만이 가진 새로운 시각 때문이죠. 이러한 색다른 감각을 키우기 위해선 기본기가 필요합니다. 밑천 없이 장사하려는 것은 도둑놈 심보잖아요. 얍삽한 기교나 꼼수를 부리려 하지 말고 기본을 충실하게 다지며 한 분야에 우직하게 파고들다 보면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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