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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2015년 11월 23일 (월) 23:10:18 전현지(국어국문 1) -

<사기그릇 속에 사는 남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수도 중심부에서 벗어난,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은 한 낡은 아파트에 이제 막 도착한 참이었다. 남자는 수도의 오래된 지하철역에서 숙식을 해결하던 노숙자였다. 그러나 더 이상 그는 노숙자가 아니었다. 남자는 주민들의 신고로 출동한 역무원에 의해 역에서 쫓겨났다.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고 기웃거리며, 이제 남자는 떠돌이가 되었다.
 하지만 오늘에서 그것도 끝날 것이다.
 남자는 나긋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의 안개가 스산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익숙한 서늘함이 땅에서부터 끈적이는 살갗을 서서히 타고 올라왔다. 낡은 아파트의 회색 페인트는 매연이 바싹 말라붙은 우중충한 도시 안개에 삼켜져 형상마저 흐릿했다. 그는 고개를 들어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눈살을 찌푸린 남자의 눈에 뿌연 안개 너머로 조금씩 아파트의 윤곽이 잡혀갔다. 건물 옆면에 자리 잡은 때 탄 오렌지 빛 글씨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희망아파트. 남자는 그 우습지도 않은 아파트의 이름을 조용히 읊조려본다.
 희망아파트…, 희망, 희망아파트.
 요즘 도시에서는 본인의 이름까지 세련된 외국어로 개명하는 추세라던데, 이곳은 그런 말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파트의 이름부터가 낡은 느낌이었다. 남자의 직감은 정확했다. 속이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아파트의 겉모습만큼은 결코 희망차지 못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세월 탓인지는 몰라도 칙칙한 아파트 도색은 너덜너덜하게 벗겨져 마치 아토피를 앓는 아이가 어린 손톱으로 마구 난도질을 해놓은 것처럼, 이리저리 튼 살마다 방울방울 피가 맺혀 벌겋게 부어오른 각질 피부를 연상시켰다. 그나마 화단이라도 깔끔하면 좀 나으련만, 그런 기대를 짓밟듯 아파트의 화단은 말라비틀어진 나무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잡초들로 가득했다. 심지어 그 잡초들마저 자라다 만 채로 시들해져 있었고, 바람에 날린 썩은 잎들이 너저분하게 흩뿌려진 도보는 각종 쓰레기와 과자 부스러기가 한데 뒤엉켜 지독한 냄새를 풍겼다. 흉물스러웠고, 끔찍했다. 입구에 위치한 인조 대리석 계단과 보도블록은 이가 갈리고 곳곳이 듬성듬성 패였으며, 묵은 때가 뿌옇게 눌어붙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좀 더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펴보는 그였지만, 다른 것들도 그나마 나아보일 뿐 흉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남자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었다. 너무 깨끗한 곳은 살기에 적합하지 못하지. 남자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남자의 판단은 옳았다. 그 스스로가 자신의 지난 경험을 떠올려 보았을 때 그가 이 아파트를 찾아온 것은 몹시 훌륭한 선택이었다. 자신이 머무는 곳이 깨끗하면 깨끗할수록 사람들은 민감하고,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었다. 오랜 기간 떠돌이 생활로 어느 정도 요령 있는 그였기에 마음만 먹었다하면 적어도 몇 달은 뻔뻔하게 눌러앉을 기세가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자신이 없어졌다. 요새 재건축이다 재개발이다 리모델링이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꼬부랑 언어까지 사용해가며 죄다 번쩍거리는 새 건물로 탈바꿈하더니 남자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땅에서 몰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깨끗한 지역에서 머무르는 남자의 더러움은 너무나도 눈에 잘 띄었다. 얼마 전 쫓겨난 지하철역 역시 사흘 만에 쫓겨난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괜찮아.
 남자가 말했다. 이곳은 남자만큼이나 충분히 더러웠고, 시끄러웠고, 냄새가 났다. 이곳이라면 남자가 아파트인지, 아파트가 남자인지 구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남자는 안전하게 머무를 곳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는 대놓고 눈에 띄는 장소에 자리를 잡을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최대한 몸을 사려서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것, 그것이 그의 신조였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그는 자신이 가진 약간의 현명함을 사용했다. 아파트가 암만 더럽다지만 수년간 떠돌아다닌 나보다는 못할 테지. 적당한 더러움은 위험했다. 몹시 더럽고 지저분한 장소가 필요했다. 남자는 생각한다. 그 이상으로 더러운 곳에 숨어 있게 된다면, 그럼 그 더러움이 오히려 나를 숨겨줄 것이다.
 바로 직전까지 눈동자를 부산스럽게 굴려가며 아파트를 살펴본 남자는 긴 시간에 걸친 탐색을 멈추고 조심스레 단지 내로 들어갔다. 한참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던 남자의 눈에 다행인지 불행인지 쓰레기가 잔뜩 쌓인 공터가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작고 더러운 쓰레기장이었다. 그곳은 남자의 기대 이상으로 충분히 더러웠고, 넘칠 정도로 역한 냄새를 풍겼다.
 최고로군!
 남자는 환호하며 냄새나는 공터위에 힘 있게 털썩 드러누웠다.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 있게 돌진한 그였지만, 곧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분리수거조차 되지 않은 쓰레기장은 깨진 유리조각 투성이였다. 땅에 닿았던 그의 엉덩이와 손바닥에 핏방울이 맺히며 따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제기랄, 낮게 읊조리며 그는 절망했다. 그는 자신의 온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이 공터에 머무를 용기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곳을 포기하고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엔, 그가 너무 지쳐있었다. 무언가 바닥을 덮을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런 쓰레기장에 푹신한 매트리스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적당히 두꺼운 천 쪼가리가 있을까…. 아니, 아니, 두껍지 않더라도 좋다. 얇은 식탁보 하나라도 있다면, 하다못해 구멍 난 양말 한 짝, 풀다 버린 휴지 한 장이라도 좋으니. 그때였다. 그렇게 절망하던 그의 눈에 정말 우연히, 반짝이는 무언가가 비친다. 순간적으로 눈동자에 반사된 햇빛을, 남자는 바닥의 유리 조각 때문이라며 대수롭지도 않게 무시하는 대신, 자리를 털고 일어나 허겁지겁 쓰레기 더미를 헤집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헤집던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남자의 상처 난 손에 핏자국이 말라붙을 무렵, 그가 구석진 곳의 음식물 더미 속에서 찾아낸 것은 하얀색의 사기그릇이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생각보다 작았고, 생각보다 커다란 구멍이 보란 듯이 옆쪽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남자는 이 이상으로 나은 집을 찾지 못했고 그렇다고 다시 그릇을 등진 채 유리조각이 가득한 맨바닥에 누워 잠을 청할 용기는 없었다. 때문에 그는 아침이 완전히 밝아오기 전, 이 구멍 난 사기그릇 속에서 잠을 청하기로 결정한다. 펼친 그의 두 손바닥 위에 가득 찬 작은 사기그릇 속에 남자는 조심조심 몸을 구겨 넣었다. 처음에는 다리를, 그 다음에는 몸통을, 팔을, 목을, 마지막으로 머리를. 차분하게 구겨진 몸은 위태롭게 사기그릇 속에 안착했다. 남자는 그릇의 옆쪽에 난 커다란 구멍을 피해 가까스로 몸을 둥글게 말아 움츠렸지만, 아직 자세가 익숙하지 못해서인지 자꾸만 구멍의 틈새를 비집고 나간 살이 조금씩 쓸려나갔다. 틈새의 날카로운 단면에 등이 쓸려 따끔거렸고, 남자는 그래도 맨바닥보다는 나을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밤이 되면 먹을 것을 찾아보자, 그때가 되면 이 상태도 조금은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남자는 밀려오는 피곤함에 천천히 눈꺼풀을 닫았다. 스산한 안개가 걷히고 아침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카멜레온과 같이 더러움이란 보호색 속에 감춰진 이 더러운 남자를 감히 찾아내지 못할 터였다.

 주민들이 남자를 발견한 것은 남자의 예상보다 조금 이른, 남자가 아파트에 도착한지 일주일 하고도 이틀이 지난 때였다. 시간은 느지막한 오후였지만 남자는 지난밤의 선잠으로 여전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아직 낯선 사기 그릇속의 삶에 익숙해지지 못한 남자는 매일 아침, 아파트 단지를 순회하는 발소리에 잠을 설쳐야했다. 하필이면 그날따라 발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버린 남자의 인기척을, 조깅하는 여자가 눈치 채어 버린 탓에 주민들이 남자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아직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 자신의 더럽고 좁은 보금자리에서 조용히 뒤척이고 있을 뿐이었다. 불편한 자세에 상처투성이의 굽은 등으로 잠을 청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 위로 냉수 한바가지가 쏟아졌다. 아닌 밤에 홍두깨라더니, 급작스럽게 일을 당한 남자는 소스라치듯 놀라 몸을 일으켰다.
 이, 이, 이, 우라질 놈! 물에 빠져 뒈질 놈!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킨 남자의 눈에 비친 것은 세련된 옷차림과는 어울리지 않게 분홍색 슬리퍼를 신은 노인이었다. 연륜이 지긋한 깊은 주름 속으로 분노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이 베어들었다. 노인의 손에는 커다란 세숫대야가 들려져있었다.
 니 놈이 감히 이게 어떤 그릇인줄 알고 드러누워 잠을 쳐 잔단 말이냐? 니 놈이 감히!
 갑작스러운 물벼락에 몸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아직 잠이 덜 깬 상태였던 남자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는 이상주의자가 아니었기에 언젠가는 들켜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씩 어렴풋이 해보기는 했지만, 설마 그 상황이 이렇게 금방 닥칠 일일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적어도 한 달은 문제없을 것이라며 만족해하던 남자에게 있어 이 상황은 꽤나 절망적이었고,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자신을 둘러싸고 수근 거리는 다수의 주민들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침착해지기는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는 가끔씩 했던 상상 속에서, 주민들을 멋진 말솜씨로 이겨내곤 했던 자신의 모습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잘근거리던 입술을 겨우 떼어냈다. 
 쓰, 쓰레기장에서, 그것도 음식물 더미에 나뒹구는 사기그릇하나 멋대로 사용하는 게 문제가 될 일이란 말이오?
 주민들 무리에서 몇몇이 움찔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남자의 어깨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지만, 몇 달간 빗지 못한 채 풀어헤친 머리나 더러운 누더기를 걸친 커다란 덩치가 그를 위협적으로 보이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를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가 뻔뻔스럽다고 생각한 것인지 손에 들고 있기도 벅차 보이는 세숫대야를 던질 듯이 높이 쳐들고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 사기그릇이다, 이 빌어먹을 놈아!
 하지만 지금은, 내가 살고 있는, 그러니까 나한테는 소중한….
 닥쳐라, 이 도적놈! 감히, 감히, 니 놈이 이게 어떤 그릇인줄 알고!
 그만하세요, 할머님! 이러다가 옆 아파트에서 눈치 채겠어요!
 노인의 기세에 눌려 쩔쩔매는 남자 대신 노인을 막아선 것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아이를 품에 안고 있던 젊은 새댁이었다. 손톱을 잘근거리는 그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지만, 그것이 남자로 인한 공포는 아닌 듯 했다. 그녀는 마치 누군가가 이쪽을 감시하고 있는 것처럼 뒤를 힐끗거리며 불안해했다.    
 그래요. 안 그래도 흉흉한 외관으로 나도는 좋지 못한 소문에 다들 이쪽을 기피하는데, 이젠 이런 소란까지 굳이 만들 필요 있어요?
 마른 체형과는 달리 꽤나 기가 세어 보이는 여인 하나가 젊은 새댁을 거들었다. 옳소, 그게 옳아요, 노인을 중심으로 남자를 둘러싸고 수군거리던 주민들 무리에서 작게 동조하는 목소리가 일었다.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자 여인은 그것 보라는 듯 고개를 까닥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쓰레기장에 쓰레기가 사는 게 뭐가 문제가 되나요? 그까짓 깨진 그릇하나가 뭐라고 난리들인지. 그냥 내버려 두자고요. 안 그래도 흉흉한 말이 가득한 아파트,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 없잖아요. 노숙자가 사는 아파트라니, 집값이 똥값이 될 게 뻔한데! 모르는 척하고 있으면 어느 샌가 굶어죽던가, 떠나던가, 둘 중 하나 제 할 일을 하겠죠.
 더 이상의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주민들은 하나 둘 남자에게 흥미를 잃고 제 집을 찾아 돌아가기 시작했다. 젊은 새댁과 기 세어 보이는 여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를 혐오스럽다는 듯 바라보던 몇몇의 주민들도 기세를 누그러뜨린 죽은 눈으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분홍색 슬리퍼의 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혹시라도 자신을 쫓아낼까 두려움에 떨며 애써 아닌척하는 남자를 한참동안 지긋이 응시하다, 역시 다른 사람이 그랬듯 죽은 눈이 되어 둥지로 되돌아갔다. 소중한, 소중한…, 소중한…. 점차 멀어지는 노인의 힘없는 웅얼거림을 들으며, 남자는 천천히 사기그릇 속에 몸을 뉘였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자네, 뭐라도 좀 먹었는가.
 평소와 같이 굽은 등으로 누워있던 남자는 탁한 쇳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우중충한 이곳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샛노란 바구니. 그리고 그 바구니 한가득 담긴, 어쩐지 전혀 신선해보이지 않는 물러터진 토마토였다.
 우리 집 애들은 토마토를 입에도 대질 않지 뭔가. 그 시간에 고기 한 조각 더 씹겠다고 난리들이니. 노망이 난건지 옛 생각에 자꾸 이걸 사오는데 나 역시 이제는 먹질 않아서. 나도 이제 그 애들을 닮아가는 게지….
 바구니의 주인은 어울리지 않게 분홍색 슬리퍼를 신은 그때의 노인이었다. 남편을 잃고 아들부부와 함께 산다고 했다. 집안에 버리는 음식이 아까워 그러는 것이니 걱정 말라며 바구니를 내미는 그녀를 남자는 거부하지 않았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손을 뻗은 남자에게 노인이 그 사기그릇이 마음에 드느냐 넌지시 물어오는 것을, 남자는 없는 것보다야 낫다, 라며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무례하다고 화낼 만하건만 노인은 조용히 웃기만 했다.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남자는 당황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그에게 지금 중요한건, 다행히 며칠간은 굶어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 남자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그 뒤로 그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물러터진 토마토를 한 바구니씩 들고 와 남자에게 내주고 갔다. 남자가 허겁지겁 토마토를 입에 쑤셔놓을 동안, 그녀는 앞에 앉아 그를 지켜보았다.
 내 남편이 말이야, 내 남편도 그릇에 살았었는데 말이야….
 지금 남자가 사는 그릇도 자신의 남편이 애지중지하던 것이라고 했다. 비록 지금은 그렇게 방치해뒀지만, 그래도 차마 버릴 수는 없었다고. 남자는 그것을 처음 알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저 그렇구나, 하며 떨리는 그녀의 어깨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평생을 농사일로 돈을 모아 아파트로 이사 왔는데, 남편이 이런 곳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고 하더군. 이럴 거면 왜 고향집을 버리고 이곳으로 온 거냐며 말이야. 그러더니 성화를 내며 말리는 아들놈 말은 듣지도 않고 옛 흙집에 묻어놓았던 커다란 항아리를 집안에 들여오더니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다네. 하루 이틀이면 포기하고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석 달이 되던 때 참다못한 내가 항아리를 들여다봤는데, 남편은 없고 항아리만 있었다지. 남편은 항아리가 되어버렸어. 항아리가 되어버린 거지…….

 남자가 아파트 애물단지였던 구멍 난 사기그릇에 정착한지 한 달이 되어갔다. 이제 남자는 좁은 사기그릇에 어느 정도 적응 한 듯 했다. 이 좁은 사기그릇은 비록 거센 바람과 내리쬐는 햇빛을 막아주지는 못했지만, 남자에게 있어서는 찬 시멘트나 지저분한 아파트 화단 흙, 유리조각이 가득한 쓰레기더미 위에서 자는 것보다야 낡은 사기그릇에서 선잠을 청하는 것이 백배는 나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를 아니꼽게 보던 주민들도 너그럽게 그를 받아들였다. 사실 받아들였다가 보다는 그들에게 있어서 하찮고 사소한 사건이라 잊혀진 것에 불과하지만, 남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만의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그도 이제 어엿한 아파트의 주민이었다. 비록 아파트가 아닌 쓰레기장 옆 사기그릇 속에 사는 남자였지만 그건 그리 대수롭지 않았다. 상황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제 남자는 사기그릇의 어중간한 틈새에 베이지 않는 최적의 자세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처음처럼 서투르게 베여 다치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새를 피해 얄밉게 돌아누워 웅크리고 휴식을 취했다. 게다가 그 구멍이란 것이 참으로 오묘한 게, 처음에는 그렇게도 거슬렸던 것이 살다보니 편리하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밤중의 갑작스런 소나기로 그릇 속에서 남자는 그릇에 물이 차올라 숨이 막혀 죽을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큰 구멍의 사기그릇에는 결코 물이 차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이 차오르기는커녕 내리는 족족 그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기에, 남자는 배수관이 있는 꽤나 좋은 집을 얻은 것처럼 뿌듯해졌다.
 또한 그는 배를 곯지 않는 요령도 터득했다. 분홍 슬리퍼의 노인이 가져다주는 물러터진 토마토가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남자는 옆 쓰레기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남자는 음식물통을 뒤지더니 몇 가지의, 아직은 먹을 만한 덩어리들을 찾아냈다. 그게 빵인지, 감자인지, 아니면 불어터진 비계덩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남자가 이전에는 꿈도 못 꿨던 공짜 음식물을 이제는 지속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아파트는 계속해서 음식물 찌꺼기를 토해냈다. 그곳에 주민들이 사는 한, 안정적인 공급은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에 남자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의 생활은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안락하고 쾌적해졌다. 언제고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언제든 누워서 쉴 수 있는 그릇도 있었다. 물론 그의 그릇은 욕실이 없는 것이 단점이었지만, 남자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뭐 언제 내가 자주 씻기나 했나. 볼일이라면 몰래 경비 화장실을 빌려 쓰면 되는 것이요, 하루 이틀 누워있다 좀 가렵다, 싶으면 공중 화장실이라도 찾아가 등목한번 시원하게 들이부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남자는 가볍게 목을 긁으며 멋쩍게 웃었다. 고개를 들자 조깅하는 여자가 출렁거리는 몸으로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표정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짜증에 가득 차 있었지만, 그는 어쩐지 그녀가 자신에게 웃어준다는 기분이 들었다. 남자는 자꾸만 올라가는 입 꼬리를 뭉툭한 오른쪽 검지로 만지작대며 히죽거렸다. 고장 난 채로 방치되어있는 꺼진 전봇대 아래에서, 평소에는 거슬렸던 휑한 화단도, 너저분하게 벗겨진 아파트의 도색도 전처럼 거슬리지 않았다. 왜인지 느낌이 좋았다.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자는 너무나도 들뜬 나머지 지난 일주일간 분홍색 슬리퍼의 할머니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이제 언제든 넘쳐나는 음식을 옆에 둔 남자에게 있어서 할머니의 토마토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남자는 히죽이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텔레비전에서는 이틀 뒤 이례 없던 전국적인 폭우가 며칠간 쏟아질 거라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온다. 아파트가 잠시 술렁인다. 그런 주민들 사이로, 아파트 관리소장이 어쩐지 촌스러운, 그렇지만 몹시 커다란 안내문 한 장을 게시판에 부착했다.

<축! 희망아파트 재건축 결정!>

 이봐, 자는 건가?
 누군가 툭툭 구두 끝으로 그릇을 건드리는 기분에 남자는 가까스로 붙인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무례하군. 아직 새벽이잖소. 이렇게 이른 시간에, 자는 사람을 그런 식으로 깨우다니. 예의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사람인가.
 남자가 잠긴 목소리로 몸을 일으키며 투덜거렸다. 아침안개가 자욱이 끼어있는 것을 보아 아직 새벽 5시도 채 안된 것 같았다.
 하루 종일 느긋하게 빈둥대는 누구와는 달리, 난 먹여 살릴 가족이 있어서 말이오.
 말쑥하게 정장 입은 사내가 옷깃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비웃듯이 말려 올라간 입 꼬리가 얄밉게 생긴 사내였다. 
 뭐요?
 진정하시오. 난 쓸데없는 일로 언성을 높이려고 내 출근시간을 당신에게 허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내는 남자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누릿한 종이 한 장을 들이밀었다. <축! 희망아파트 재건축 결정!> 쾨쾨한 냄새대신 빳빳한 새 종이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촌티 나는 디자인에 비해 꽤나 최근에 뽑은 안내지인 듯싶었다. 
 축! 희망아파트, 재건축, 결정!
 사내는 남자를 까막눈이라 생각한 것인지 종이에 쓰인 글자를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커다란 크기 만큼 커다란 글씨로 적힌 전단지의 내용을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는 사내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남자는, 사내가 글 읽기를 끝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힘없는 몇 번의 박수와 함께 의욕 없는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그것 참, 과히 축하할 일이군요! 그런데 그게 나를 이 새벽에 깨운 일이랑 무슨 상관이오?
 왜 상관이 없지? 이제 당신은 아파트에서 나가게 될 텐데?
 뭐라고?  
 당신이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나가야 한다고!
 못하는 말이 없군!
 이건 기회야! 아파트가 재건축이 된다면, 이제까지의 희망아파트와는 차원이 다른 고급 아파트가 될 거야. 물론 그만큼 가치가 높아지고 시세도 올라가겠지. 이 지긋지긋한 회색더미에서 벗어나는 거야!
 그게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지?
 왜 상관이 없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당신은 어쨌든 우리 아파트 단지에 속해있는 사람이지. 생각해보게. 무지개 색 담벼락에 금빛 도색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아파트, 복도에 매끄럽게 펼쳐져 있는 흰 대리석은 마치 보석처럼 반짝이며, 화단에는 기상천외한 세계각지의 꽃들이 만발하겠지! 최고급 아파트! 그런데 그 구석 쓰레기장에 쓸모없이 버려진, 커다란 구멍의 낡은 사기그릇 하나가 있소. 게다가 왜인지 남자 하나가 그곳에서 살고 있어. 그럼 아무리 그 아파트가 훌륭해도 사람들은 말하겠지! 모든 게 완벽해 보이지만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가 있다고!
 그래서 지금, 나를 쫓아내겠다고 협박하는 건가?
 그래서 지금, 당신이 자발적으로 나가주길 부탁하는 거지!
 부탁이라고!
 그 사기그릇이 왜 버려진 줄 아나? 바로 그 구멍 때문이지! 아무리 뭘 담으려고 해도 깨진 틈새로 뭐든 다 흘러내려버리니 빗물받이조차 될 수 없어 내다 놓은 것을 네가 주운거야. 그런데 말이지, 당신은 아나? 우리아파트가 그 사기그릇이라면, 당신은 그 깨진 틈새, 구멍이라고! 치명적인 결함! 그것만 없으면 완벽해질 수 있는 것을. 어머니가 아버지의 물건이라 난리를 쳐서 차마 폐기하지 못하고 내놓기만 했지만, 이것도 끝이야! 비가 그치면 업자들이 와서 그릇을 가져갈 거야. 그리고 처분하겠지. 그러니 그 전까지 떠나도록 하게. 더 이상의 자비는 없네.
 어머니? 분홍 슬리퍼의? 자네 설마.
 그래, 우리 어머니를 아는가? 모를 리가 없겠지! 어쩐지 자꾸만 쓸데없는 것을 잔뜩 사 오실 때부터 알아보긴 했어. 먹는 사람도 없는데, 본인도 잘 먹지 못하는 것을 꾸역꾸역 사오시더니, 다 네놈에게 가져다주려고 했었던 거군? 그러나 이제 이것도 끝이야! 쓸데없이 돈만 축내는 노친네, 며칠 전 요양원에 맡기고 온 참이니까.

 “현재 수도권 지역은 태풍으로 인해 모월 모일 자정까지 예상 강수량이 100~200mm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매우 강한 바람 또한 동반하므로 가급적 외출을 삼가는 것이 좋겠으며….”

 1층 어느 집인가에서 틀어놓은 텔레비전 속 간드러지는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 사그라들었다. 점점 더 거세지는 폭우에 빗소리 이 외에는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비가 내린다. 그는 천천히 그릇 속에 몸을 접어 넣었다. 평소처럼 그릇 속에 웅크린 채, 조용히 귀를 막고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비는 그쳐있을 것이다. 이제 그릇에 완전히 익숙해진 그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릇의 틈새로 빗물이 잘 흘러내려가도록 평소보다 더욱더 힘 있게 몸을 접어 잠이 들곤 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남자의 행동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 아직은……. 바늘처럼 살을 쪼아대며 따갑게 쏟아져 내리는 빗소리에 남자의 중얼거림은 끊기고 말았다. 그러나 들리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 그의 입술은 여전히 달싹 거리고 있었다. 아직은 괜찮아. 여기는 괜찮아…. 여기는……. 비가 내린다. 그래,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린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틈새를 더욱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가 구멍의 틈새를 파고든 만큼 깨진 그릇의 날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옷은 금세 발갛게 물들었다. 쉴 새 없이 내리는 비에 금방 씻겨 내려갈 것이다. 이대로 그릇이 되어버린다면. 남자는 중얼거렸다. 이대로 내가 그릇이 되어버린다면, 깨진 틈새를 메워 완전해진다면. 그럼 그때는 누군가 그릇-나를 사용해 주지 않을까.
 빗물받이라도 좋다, 라고 남자는 생각했다. 그가 온몸으로 부딪혀 구멍을 막고 있는 덕분인지 서서히 그릇 속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남자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의식이 점점 흐려져 가는 가운데 마음만은 편안했다.     

 비는 이튿날에도 그치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진지 4일째 되는 날, 쓰레기를 버리러 나온 조깅하는 여자는 쓰레기장 옆 사기그릇 속에 더 이상 남자가 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곳에는 남자 대신 벌건 빗물을 한가득 담고 있는, 티 없이 하얗고 매끄러운 사기그릇 하나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사기그릇이 되어버렸다더군.
 화장대 앞에서 화장을 고치는 아내를 향해, 사내는 넥타이를 풀며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어머? 어쩜…, 결국. 전 어차피 그럴 줄 알았어요. 어쩌면 잘된 일이죠. 그 남자, 그 그릇을 좀 좋아했던가요?
 좋아했던가?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그런데 귀찮게 되어버렸네요.
 뭐가?
 당신 어머님 말이에요. 어차피 드시지도 않을 토마토가 그렇게 먹고 싶다고 하도 성화시기에 오늘 아침에 일보러 나가는 김에 생각나 사 들고 도착했더니, 엊그제 돌아가셨다고 하지 뭐예요? 연락이 왔었는데 바빠서 못 받았었나 봐요. 하여튼 간에…. 그래서 나랑 당신은 먹지도 않는 이 토마토, 그냥 버리긴 그렇잖아요? 좋은 마음으로 그 남자에게 처리하려고 했는데 이젠 꼼짝없이 버려야겠네요. 아까워서 어쩐다죠. 이럴 줄 알았으면 사가는 게 아니었어요.
 내가 어머니 투정 들어주지 말랬잖아.
 내가 뭐,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나요? 다행인건 이젠 그런 투정 들을 일은 없다는 거죠.
 그나저나 그건 어떻게 되는 거지?
 뭐가요?
 그 그릇 말이야. 이제 곧 재건축이니 뭐니 아파트가 시끄러워질 텐데, 그 낡은 그릇을 설마 조형물이랍시고 그곳에 방치해놓을 생각은 아니겠지.
 끔찍한 소리 말아요! 그 그릇은 예정대로 업자가 가져갈 거예요. 그래, 그건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우리 아파트가 오갈 데 없는 불쌍한 사람 쫓아낸다고 얼굴에 먹칠할 뻔했는데, 이제 그럴 걱정은 없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아내는 앞으로 지어질 황금색의 아파트를 상상하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그런 아내의 미소가 밝고 생기가 넘쳐서, 정장을 입은 사내는 모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외식을 해볼까, 어쩌면 이 분위기를 타고 오랜만에 멋진 밤을 보내게 될지도 몰라. 오래되어 희미하게 빛나는 형광등에 아른거리는 두 그림자가 입을 맞춘다. 천진난만한 아내의 미소를 보며 사내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평소에 거슬렸던 아내의 누런 이도, 목이 헤진 원피스도 전처럼 거슬리지 않았다. 왜인지 느낌이 좋았다. 앞으로 계속 좋은 일만 생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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