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논쟁을 시작할 시간
‘낙태죄’, 논쟁을 시작할 시간
  • 성과재생산포럼 안팎
  • 승인 2016.12.0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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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태죄’라는 해묵은 논쟁거리
  지난 9월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법 행정처분 규칙 개정안을 발표했다. ‘비도덕적 의료 행위’에 대한 행정 조치를 강화하는 이 안은, 그 하나로 인공 임신 중절 시술을 꼽고 있었다. 이로 인해 ‘낙태죄’에 관한 해묵은 논쟁이 다시 한 번 시작됐다.2010년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인공 임신 중절 시술 의사들을 고발했던 소위 ‘고발 정국’ 이후 몇 년 만의 일이었다. 11월 11일 발표된 최종안에서는 논란을 의식한 듯 처벌 강화 계획은 철회됐지만, 인공 임신 중절 시술은 여전히 ‘비도덕적 진료 행위’로 명시돼 있다.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사실상 사문화 돼 있었던 (물론 직접적인 처벌은 매우 적었지만 효력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었다) 형법상 ‘낙태죄’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대한민국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돼있다.

  제269조(낙태)
  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③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
  ①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없이 낙태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 또는 제2항의 죄를 범하여 부녀를 상해에 이르게 한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사망에 이르게 한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전 3항의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한다.

  현행 조문은 1995년에 개정된 것이지만, 이 조항들은 1953년에 제정돼 지금까지 (화폐 개혁에 따른 벌금의 조정을 제외하면) 변함없이 유지돼오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인공 임신 중절 시술을 ‘비도덕적’으로 규정하는 것 역시 이를 근거로 삼은 것이다. 아래에서부터 읽어보면 이 조항들은 임신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조항인 듯 보인다. 임신 당사자의 동의 없이 시술한 의사를, 시술 과정에서 임부에게 상해를 입힌 의사를 처벌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임신한 여성 본인의 의사에 따라 시술을 한 경우에도, 당사자와 의사 모두를 처벌 하는 것이 바로 이 법이다. 지금의 논란은 바로 이 점에 관한 것이다.

  논쟁을 시작하기 위해
  문두에서 ‘해묵은 논란’이라고 칭했지만, 이는 부당한 평가다. ‘낙태죄’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있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라이프(prolife)’라는 용어에서 드러나듯, 인공 임신 중절의 비범죄화 혹은 합법화에 반대하는 제1논리는 생명의 존엄성이다. 곧 독립적인 생명체로서 이 세계에 태어날 수 있을 태아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다. 이러한 논리는 시술 도구를 피해 자궁 속에서 도망 다니는 태아의 영상, 실은 조작된 그 영상을 통해 뒷받침되곤 했다. 조작의 문제는 차치해두자. 그 외에도 그 영상에는 허점이 있다. 자궁 속만을 비출 뿐, 그 자궁이 어디에 있는지는 비추지 않는다는 점이다. 태아를 품고 있는 것 또한 하나의 생명임을, 생명이란 단순히 숨이 붙어 있다고 다가 아닌, 사회적인 것임을 그 영상은 보여 주지 않는다.

  ‘프로라이프’의 대척점에는 여성 본인의 선택을 강조하는 ‘프로초이스(pro-choice)’ 진영이 있다. 태아의 생명 이전에 이미 세상에 존재하는 생명으로서의 임신한 여성 본인의 선택을, 그리고 그 선택으로 구성될 여성 본인의 삶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일견 프로라이프의 입장에 대한 강력하고 적절한 반론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는 임신·출산·양육을 순전히 여성 개인의 선택에 달린 것처럼 보이게 하지만, 또 하나의 삶을 이 세계에 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데에는 훨씬 더 복잡한 요소들이 관계한다. 경제적 문제, 건강의 문제, (예컨대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선택’은 단순히 개인에게 맡겨지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프로초이스는 프로라이프에 대한 충분한 대안 담론이 될 수 없으며, ‘낙태죄’를 둘러 싼 논의는 이 둘 사이에서의 양자택일이 될 수 없다.

  생명이 무엇인지,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 없이 ‘프로라이프 vs 프로초이스’라는 텅 빈 구도만이 제시돼 왔다는 점에서, 저 해묵은 논쟁은 실은 제대로 시작된 적조차 없는 논쟁이다. 이제 논쟁을 시작하기 위해, 우리는 형법상의 ‘낙태죄’라는 조항이 무엇을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단서는 별개의 법인 모자보건법에 있다. 모자보건법 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제한적으로 ‘낙태의 죄’를 면하게 하고 있다.

  1.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優生學的)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準强姦)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역시 밑에서부터 읽어보자. 모자보건법이라는 이름 그대로, ‘모’의 건강을 고려한 조항이 다섯 번째 항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나머지는 어떨까? 약간의 추측을 더해 읽어보자면, 앞의 네 항목은 모두가 ‘환영받지 못하는 생명’에 관한 것이다. ‘낙태’의 근현대사를 생각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는 적어도 지난 세대, 수없이 많은 여성 태아가 ‘낙태’됐음을 알고 있다. 한센인들을 상대로, 장애인들을 상대로, 강제 불임 수술이 행해져 왔음을 이미 알고 있다. 산아 제한이 국정 기조이던 시기, 피임 시술은 물론 ‘낙태’도 권장되는 일이었음을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형법이, 그 정신이 금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생명에 대한 침해가 아니다. ‘환영받을 만한 존재(장애가 없는, 남성인, 당대의 인구정책에 부합하는 그런 존재)’의 생명에 대한 침해만을 처벌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낙태’와 피임 시술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행해져 왔는가를 생각하면, 이는 나아가 ‘환영받지 못할 존재(장애나 질병을 가진, 여성인, 당대의 인구정책에 맞지 않는 존재)’의 출산을 금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법체계는 여성을 인구 정책의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생명도 선택도 여기서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인구로 어떤 국가를 꾸릴 것인가 하는 사회적 계산만이 중요할 뿐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것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출산이지 ‘낙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 임신 중절을 범죄로 규정하는 현행법이, 허울 좋은 생명권 담론이, 임신 중절 경험을 부끄러운 것으로, 이야기하면 안 될 것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의 중심에 어떤 생명이, 어떤 선택이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 경험들이 이야기돼야 한다. 그 경험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허용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낙태죄’ 논쟁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낙태죄’ 폐지가 돼야 한다.

  ‘낙태죄’와 여성의 섹슈얼리티
  보건복지부의 개정안 철회뿐 아니라 나아가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검은 시위’가 열린 것은 그래서다. 전국 각지에서 열린 이 시위들에서 참가자들은 “내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아마도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강조한 구호였을 것이다. 우리는 이 구호를 좀 더 적극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모자보건법에서 허용되는 경우조차도 인공 임신 중절은 ‘배우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당사자 여성의 오롯한 선택은 전혀 보장되지 않으며, 배우자가 없는 경우는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 원치 않는 임신 과정에 연루된 남성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선택의 권한만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현행법이 여성을 인구정책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있음을 뜻한다.

  “내 자궁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는 가장 직접적인 자궁의 사용, 즉 임신과 출산 혹은 임신 중절의 선택권이 당사자 여성에게 돌아가야 함을 주장한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우리는, 자궁으로 상징돼(버리)는 여성 섹슈얼리티 전반이 여성에게 돌아가야 함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임신 공포 없는 섹스의 권리, 출산과 양육으로 마무리되는 이성애적 구도에 포섭되지 않을 권리,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오로지 자신을 위해, 스스로 규정할 권리를 주장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다시 공허한 선택권 담론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선택이 가능한 실질적인 조건들을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포함하는 제대로 된 성교육, 임신을 둘러싼 낙인의 제거, 양육이 가능한 사회경제적인 지원들, 이런 것들이 함께 논의되지 않는 한 내 몸이 나의 것이라는 주장은 그저 텅 빈 말, 어쩌면 거짓인 말일 뿐이다.

  ‘낙태죄’가 어떤 생명을 낳아도 되는지, 어떤 생명은 낳으면 안 되는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면 ‘낙태죄’ 논쟁은 단순히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어떤 삶을 어떻게 낳(지 않)을 것인가, 어떤 삶으로서 어떤 삶과 더불어 어떤 세상을 살아 갈 것인가 하는 문제다. 섹슈얼리티는 그 한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누릴 수 있는지, ‘성’과 무엇이 얽혀 있는지를 따지는 것, ‘낙태죄’ 폐지로 비로소 시작될 논쟁의 첫 번째 주제는 그런 것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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