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좋은 소음이 있다고?
듣기 좋은 소음이 있다고?
  • 배명진 숭실대학교 소리공학연구소 교수
  • 승인 2017.06.05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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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속 백색소음과 ASMR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설미디어네트워크의 사용이 활발해지고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의 개인적 생각과 경험에 대한 사회적 공유가 대중화되면서 오감을 자극하는 주변의 모든 것들이 우리의 관심사가 됐다. 2010년 오스트리아 작가 제니퍼 엘런(Jennifer Allen)은 이러한 경향을 설명하는 새로운 단어를 제안했는데 이것이 바로 ‘ASMR’이다.

ASMR에는 맑은 종소리, 바삭한 치킨을 먹는 소리, 특정 상황을 묘사하는 소리 등 다양한 종류의 소리를 이용한 콘텐츠가 존재한다. 출처 / Youtube miniyu


  ASMR이란?
  ASMR은 한국어로 번역하면 ‘자율감각쾌감작용’으로, 현대영어의 특징답게 네 개의 영어 단어 앞 글자를 사용해서 약어로 만들어졌다.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라는 조금은 길고,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단어들의 조합이다. 단어들을 하나씩 풀어보면 ‘자유의사나 자율의지로(autonomous) 감각을 느껴(sensory) 극치의 즐거움을 느끼는(meridian: 오르가슴의 순화된 용어) 작용 또는 반응(response)’이다. 즉 개인의 감각을 즐겁게 해주는,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모든 것이 다 ASMR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용어로 ASMR을 느끼게 해주는 자극을 ‘ASMR 트리거’라고 한다. 자유의사이므로 어떤 자극에 반응을 하게 되는지는 각 개인마다 다르므로 트리거 또한 개인차가 있게 된다.


  ASMR과 백색소음
  사실 이 용어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라기보다는 소리공학 분야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돼 오던 개념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유튜브에서 ASMR을 검색해보면 많은 영상물이 나오는데 차를 따르는 소리, 무엇인가를 긁는 소리, 먹는 소리 등 단순히 청각을 자극하는 소리뿐만 아니라 유명 영화를 패러디해 시각을 자극하는 영상, 맛있는 음식으로 미각을 자극하는 먹방, 얼굴이나 귀 등 신체부위를 마사지하는 역할극으로 촉각을 자극하는 영상 등 다양한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소리’다. 간혹 ASMR을 일상소음과 비슷한 개념으로 보기도 하는 것은 바로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소리들을 보다 감각적으로, 개인의 취향대로 쾌감을 느끼도록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ASMR이기 때문이다.


  ASMR을 소리공학적으로 말하면 바로 넓은 의미에서의 백색소음(white noise)이라고 할 수 있다. 백색소음이라는 용어는 백색광에서 유래됐다.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로 나눠지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를 합하면 넓은 음폭의 백색소음이 된다. 백색소음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다양한 음높이와 음폭을 갖는 소리다. 대표적인 백색소음으로는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있다. 이 소리는 우리가 평상시에 듣고 지내는 일상적인 자연의 소리이기 때문에 음향 심리적으로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 안정감을 느낀다.


  백색소음의 효과
  백색소음이 실제로 어떤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해봤다. 한 사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백색소음을 주변 소음에 비해 약 10데시벨 정도 높게 들려주고 일주일을 지켜봤다. 그러자 근무 중에 잡담이나 불필요한 신체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었다. 한 달 후 백색소음을 꺼버렸더니 심심해하거나 주의력이 흐트러지고 업무의 집중도가 크게 떨어졌다. 또 5분 단위로 주변의 소리를 다양하게 들려주고 연령대별로 공부 중 신체 움직임을 관찰했다. 10대와 20대 참가자는 약수터 물 떨어지는 소리, 큰비 내리는 소리 등의 비교적 넓은 음폭의 소리를 선호했고 이때 집중력이 가장 높았다. 한편 30대는 작은 빗소리나 시냇물 흐르는 소리 등의 중간 음폭의 백색소음을 선호했고 이때 업무 집중력이 더 높았다. 이처럼 같은 백색소음이라도 소리를 듣는 사람의 선호도에 따라 효과는 다를 수 있다.



  백색소음을 들으면 잠이 잘 온다는 말도 있다. 정말 백색소음을 들으면 잠이 잘 올까? 대답은 ‘그렇다’이다. 예를 들어 거제도 몽돌해변에 누워 부서지는 파도 소리를 들으면 잠이 잘 온다고 한다. 이 소리를 분석해보니 크게 밀려오는 파도의 웅장한 소리와 파도가 부서져 작은 몽돌들을 스치며 나는 쾌활한 소리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백색소음이 주기적으로 반복돼 들리면 우리의 뇌는 졸음을 유발하는 델타파라는 뇌파를 발생시키면서 자기도 모르게 잠에 빠진다. 기차 안의 철로 소음, 미장원 안에서의 가위질 소리 모두 우리를 잠들게 하는 효과가 있다. 백색소음의 하나인 물소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효과가 있다. 언젠가 <TV 동물농장>에 출연했던 강아지는 밤만 되면 주인 몰래 목욕탕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곤 했다고 한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잠을 청하기 위해서였다.


  어디까지가 백색소음일까?
  자연의 소리만이 백색소음은 아니다. 가령 낙엽 밟는 소리는 자연의 소리지만 이와 비슷한 소리는 비스킷이나 감자칩 등의 과자를 씹을 때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다. 특히 감자칩을 씹는 소리에는 저음, 중음, 고음 영역의 소리가 모두 포함돼 있어 포만감을 향상시키고 두뇌를 자극하는 좋은 소리다. 또 실험을 해보니 우는 갓난아기를 달랠 수 있는 소리는 뱃속에서부터 들어 익숙한 소리일 것 같은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아니라 오히려 진공 청소기를 작동하는 소리나 부드러운 비닐봉지를 구겨 부스럭거리는 소리였다. 이 소리 또한 모두 백색소음이다.


  백색소음은 이미 우리 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개인정보 보호 프로그램에서 일부러 백색소음을 발생시켜 다른 사람들이 정보를 듣지 못하게 만들기도 하고, 비행기 안에서 들리는 각종 소음들을 듣지 못하도록 일부러 백색소음을 스피커로 방송하기도 한다. 층간소음이 심각한 집에서는 백색소음 발생기를 설치하기도 한다. 백색소음은 마스킹현상을 일으켜 기존에 있는 소리들을 덮어씌우는 역할을 한다.


  한 가지 알아둬야 할 것은 모든 소리에 대한 느낌은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있고 싫어하는 소리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도 다른 사람은 싫어하는 소리, 즉 소음이 될 수 있다. 소음을 정의하면 듣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말하는데 소음을 결정하는 기준은 소리의 크기, 높이, 지속시간 세 가지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소리여도 지나치게 오래 지속되거나, 좋아하지 않는 내용이 들어있거나, 잘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소리거나, 짜증이 나 있는 상황이라면 그 소리는 다시 소음이 되고 만다. 그만큼 소리는 주관적인 기준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게 된다는 얘기다.


  ASMR은 그런 면에서 백색소음 중에서도 나에게 쾌감을 주는 소리, 내 감각을 풍부하게 만드는 소리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도 주변을 둘러보며 내가 좋아하는 소리는 무엇인지, 나의 오감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소리는 무엇인지 잘 들어보자. 그 소리를 채집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한다면, 그리고 그 소리를 다른 사람들도 좋아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날 갑자기 ASMR 유명인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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