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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2017년 11월 24일 (금) 19:42:29 이태연(식품영양 4) -


<비녹(悲鹿)>

1

나른한 봄날 꿀렁이는 배에 몸을 맡기고 피로한 눈을 감는다. 옅은 바람이 소스란히 왕의 속눈썹과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러다 노란 나비가 간질이는 듯 향기로웠다. 고개를 돌리자 한 여인이 물가에서 뿌리를 손질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처음 맡아보는 향이다.”

뒤에는 칼을 찬 군인들이탄 배가 뒤따랐다. 배는 군인의 수신호에 맞춰 잠시 멈추었다. 배 두척의 간소한 이동이지만 맨질하고 까맣게 기름칠한 배는 매우 단단해 보였다. 처음보는 높은신 분의 옷이었다. 비단이 강물의 물결과 같이 찰랑거렸다.

“향기나는 뿌리는 생강입니다.”

“너는 누구인가?“

“아라...”

이름을 말하고 소개하려는데 그새 참지 못하고 왕이 첨벙하고 배에서 나린다. 물방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젊은 그의 이마위로 단단한 어깨위로 속눈썹을 타고 내려 그의 얼굴은 반짝인다. 왕의 눈빛이 그녀에게 닿는 순간 아라는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게 살 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라는 강에 붙어 사는 신의 딸이었다.

아라는 생강을 손질하던 두 손을 모아 그에게 내밀었다. 무얼 달라는 건지는 아라 자신도 몰랐다.

아니, 그것은 가슴 깊은 곳의 무엇이었겠지만. 왕은 가만히 아라의 작고 서투른, 오목한 두 손을 내려 보았다.

왕는 아라의 두 손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생강향이 왕의 혀를 따라 윗니에서 어금니를 돌아 눈으로 퍼졌다.

그의 숨결이 아라의 손금을 타고 퍼지는 순간 그녀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고 딱딱해진 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두 손으로 만든 오목한 그곳에 깊고 맑은 샘이 있다는 듯이 목마른 토끼마냥 머리를 파묻은 채 멈추지 않고 물을 마시듯이 숨을 쉬었다.

왕은 아라에게 그의 숨을 주었다. 그가 세상을 보고 들이 쉰 숨과 그리고 눈을 감은 채 그녀의 속에서 내뱉는 숨을.

“잊지 못할 향이다. 지금은 가야하지만 훗날 다시 오겠다.”

왕은 웃으면서 흘러가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가버렸지만 밤마다,

혹은 일을 하다 짬이 날 때면 그 뒤로도 아라는 그녀의 얼굴을 두 손에 파묻고 손금을 따라 그의 숨결을 되내어보곤했다.

그때마다 흔들리는 강의 물결따라 멀미가 났다.

그것은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안개처럼 사라질 이야기이기도 했다.

떠가나간 왕을 그리며 그녀 안에 태산이 쌓아지는 천년의 세월과 같이 처음엔 그의 먼지 하나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눈, 코, 손과 발, 어깨, 이마 그리고 목소리까지 새겼다.

 

차가운 비가 부슬 부슬 내린다. 조용한 안개가 무거운 회색의 강가에서 툭툭 붉어져 나온 산줄기와 우람한 봉우리들의 연속을 보고 있자면 산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산들이 숨을 쉴 때 짙게 깔린 안개는 잠시 올라갔다가 내려간다. 산들이 불안에 술렁였다.

 

강비린내를 맡으며 조그마하게 움츠리고 가슴을 쥐고 있는 여인이 있다.

“아.아,아”

강가에 조그리고 앉아 슬픔을 토해냈다.

 

“저 혼자 부는 바람이

찬 머리맡에서 운다.

어디서 가던 길이 끊어졌는지

사람의 손은

빈 거문고 줄로 가득하고

창 밖에는

구슬픈 승냥이 울음소리가

또다시

만리 길을 달려갈 채비를 한다.

....

만리 길 밖은

베옷 구기는 소리로 어지럽고

그러나 나는

시냇가에

끝까지 살과 뼈로 살아 있다.”

샛별의 눈길 한 빛 없는 밤, 칠흙 같은 어둠이 그녀를 하나씩 차지하더니 그녀는 어둠이 되어 흩어져 버렸다. 그렇게 검은 슬픔이 되어버린다.

슬픔으로 흩어진 그 자리에 왕의 얼굴을 한 아이가 놓여있다.

큰 뿔을 가진 사슴이 수풀을 헤쳤다. 뜨거운 혀로 아이를 덮히고 보금자리로 가서 젖 대신 자신의 피를 먹였다. 그리고 아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함께 살았다. 아이는 커갈수록 스스로 말과 이치를 배웠다. 사람들은 그를 비녹(悲鹿)이라 불렀다.

2

서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나더니 사슴이 풀썩 쓰러졌다. 정확히 목에 화살이 꽂혀있었다. 피가 이리저리 튀다가 눈을 까뒤집고 뒷발을 바르르 떨다가 고통스럽게 숨이 끊어졌다.

활은 은으로 만든 것이었고 비단으로 만든 부적이 매어져 있었다. 은과 비단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산사람들의 짓은 아니었다. 비녹이 울부짖었고 머지않아 활의 주인이 죽은 사슴을 찾으러 왔다.

“이 사슴은 내가 생겼을 때부터 보살펴준 부모고 친구다. 나도 그대를 죽여야겠다.”

“미안하지만 사정을 들어주시오.”

“사슴을 절대 내어 줄 수 없다.”

“어찌 사람의 목숨보다 사슴의 목숨이 중하겠는가. 왕에게 상소를 올려 그대에게 보답을 하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슴을 가져다 재물로 바쳐야한다.”

“무슨 제를 지내는 것인가.“

“매일 밤마다 어둠이 내리면 강이 슬픔에 잠겨 마을로 밀려든다. 마을의 은행나무께서 새벽에 뿔이 달린 큰사슴을 제물로 바치면 슬픔을 해결 할 수 있다 하셨다. 백명의 목숨을 강물에 죽게 만들 셈인가.”

“내가 밤마다 밀려드는 홍수를 해결 할 수 있다. 대신 사슴은 고기로 만들어 제물로 바치지 않고 이 산에 묻게 해 달라.”

비녹이 마을로 내려가자 사람들이 불길하다고 수군댔다. 홍수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큰 뿔을 가진 사슴을 내놓고 비녹의 목숨까지 바쳐야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는 매일 밤 강물에 세수를 하고 머리카락을 태워 보냈다. 홍수는 이제 밤마다 밀려들지 않았다. 마을의 홍수를 해결한 상소를 읽고 왕이 그를 불렀다.

궁궐에 가까워질수록 비녹이 탄 가마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 아 왕의 어렸던 얼굴과 같다.”

“이게 무슨 일인가.”

“하지만 혈육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자식이 아니다. 상스럽다”

돌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고 오히려 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병자들은 가까이 와서 손을 잡으려고 했다.

늙은 왕은 다가오는 젊은 자신의 얼굴과 어깨를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비녹이라는 청년이 왔다는 마을 이름을 떠올린다. 저절로 아주 오래전 봄날에 강을 건넜던 것이 떠오르다만다.

마른 코끝에 알싸한 향이 나는 것 같다. 기억나지 않은 몇몇 것들을 억지로 되 내어 본다.

 

“너는 누구냐.”

왕의 말끝에는 두려움이 있다.

“사람들은 나를 비녹이라 부른다.”

“나의 어린 얼굴을 한 너는 누구냐.”

“나는 아라가 그리워한 당신의 모습이다. 아라가 천년동안 마음으로 그리다 보니 먼지 하나부터 쌓여 태산과 같이 생겨났다.”

“낭패로다. 상서롭지 못하다.”

“나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다. 당신의 피와 살을 물려받기 위해 왔다.”

“그럴 순 없다, 감히 왕의 피와 살을 원하는 것인가.”

“나는 그녀가 그대를 그리워하다 홀로 생긴 자식과 같은 것이다. 그녀를 애도하는 마음으로 피한방울이라도 나눠 줄 수 없는 가.”

“천년의 시간이 흘렀다. 내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야속하다. 내가 무엇을 하면 되나. 아라가 슬픔이 되어 흩어졌기 때문에 나는 잊혀 져야 하는데 잊혀 질 수가 없다. 태산과 같이 그리워했기 때문에 태산처럼 나를 남기고 흩어졌다. 아직도 강가에 가면 나를 어루만지려 하는 손길이 느껴진다. 그대는 아는가?“

 

움찔하던 왕이 늙어서 거칠어진 숨을 쉬며 말했다.

“전쟁에서 나 대신 싸워 이긴다면 내 피와 살을 주겠다.”

 

3

슬픔을 이끌고 전쟁에 나갔다. 비녹은 슬픔에서 태어났다. 사람이 아니었기에 칼과 활로써 죽을 수도 없었다. 천리길을 한참을 걷고 또 걸었다.

전장은 뜨거운 모래의 나라였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휘몰아쳤다.

적장의 칼날이 심장을 뚫고 들어왔다. 곧이어 목에는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하지만 피한방울 나지 않았다. 마주친 적장의 눈에서 슬픔을 보았다.

가족을 더 이상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슬픔, 부상당한 군인의 아픔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그들의 슬픔을 본 이상 비녹은 서로가 죽이는 싸움은 원하지 않았다.

대신 강을 일으켜 깊이 만들고 더 이상 진군하지 못하고 돌아가게 만들었다.

 

사막에 깊은 강이 생겼다.

적장이 무릎을 꿇고 자신의 칼을 바쳤다.

“신이시여, 무례함을 범했습니다.”

“나는 신이 아니다. 이제 이곳에는 꽃이 피고 곡식이 풍성할 것이다. 더 이상 약탈이라는 단어는 사라질 것이다.”

 

비녹과 군사들은 소매마다 사막의 붉은 모래를 뿌리며 돌아왔다. 목마른 군사들은 경의에 찬 눈으로 보았다. 젊은 왕의 얼굴을 가진 비녹이 강을 만들고 적군의 눈에서 죽음 대신 슬픔을 잠재우는 것을.

 

승전한 장군과 군사가 돌아오는 길목마다 사막에 강을 만든 소문과 전쟁에서 승리한 소문이 퍼졌고 사람들은 사자춤을 추었다. 왕의 귀에도 들었다.

 

“멀리 사막 건너 만 리를 오느라

털 다 빠지고 머지 뒤집어썼네.

머리 흔들고 꼬리 치며 순하게 따리지만

웅장한 그 기운 어찌 뭇짐승과 같으랴.“

 

아직도 군사들의 얼굴에는 소금기가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돌아오던 길에 그들은 적군도 아닌 비단끈이 달린 활에 죽었다. 은화살이었다. 왕의 짓이었다.

 

4

 

왕은 그가 전쟁을 나간사이 미쳐가고 있었다. 왕은 비녹이 전장으로 출정하자 비녹이 전쟁에서 죽도록 기도하고 죽일 방법을 찾았다.

“비녹은 요사스럽다. 비녹보다 더 요사스러운 도사를 찾아내어 슬픔에서 태어난 이를 죽이는 방법을 알아내라.”

나중에는 굿도 했다. 점쟁이가 말하길,

“모든 것은 아라의 강과 슬픔에서 시작되었다. 슬픔을 없애면 그도 사라지리라. 나라에 강과 슬픔을 마르게 하십시오. 매일 풍악을 올려 즐겁게 하고 눈물까지 없애셔야합니다.”

그러자 왕이 명령했다.

“아라의 강에 둑을 쌓아마르게 해라.”

왕은 궁의 모든 돈과 쌀을 점쟁이에게 주어 굿을 하고 악사들에게 풍악을 올리게 했다.

슬퍼하는 것을 금했다. 무조건 웃어야 했다. 몰래 혼자서라도 슬퍼하는 자는 죽음을 면지 못했다. 나라는 슬픔을 잃어 버렸다.

하지만 그럴수록 강은 깊어만 가고 마을은 강물이 삼켜버린 지 오래였다.

 

“쑥대머리에 쪽빛 얼굴 사람과 다른데

무리를 놀리며 뜰에서 난새춤을 추이네.

북소리는 둥둥둥 바람은 선들선들

앞으로 껑충 뒤로 훌쩍 종작이 없네.“

 

흥에 겨운 꼭두각시놀이를 한다.

아니면 굶어 죽기도 전에 관군의 칼에 죽었다.

기괴하였다. 큰 홍수가 나고 쌀이 떨어지고 농사를 망쳤다. 궁궐의 곳간까지 모두 비었다.

사람들은 먹지 못해 말랐지만 모두가 웃는 탈을 쓰고 있거나 입과 눈을 먹으로 웃는 것처럼 휘게 그려놓았다.

슬픔이 사라지자 기쁨이 사라졌다. 죽어도 슬퍼하며 죽을 수 없었다. 죽은 이에게도 웃는 탈을 씌우게 했다. 매일 흥을 돋우는 풍악은 왕을 더욱 미치게 만들고 있었다.

 

장군이 돌아왔다. 나라의 입구 멀리서부터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이게 무슨일인가.”

“왕이 슬픔을 없애 사람들의 속이 문드러지는 냄새다. 솟대의 새는 하늘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이다.”

입구의 팔척의 장승이 대답했다.

 

드디어 승전의 나팔 속에서 장군이 웃는 왕의 앞으로 갔다.

“어찌 거짓 기쁨만을 가까이하시고, 슬픔은 멀리하십니까?”

“너를 말려 죽이기 위함이다.”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필요치 않다. 죽으라고 보낸 것이다.”

“왕의 피와 살이 없는 이상 저는 죽여 지지 않습니다.”

“비녹은 존재 자체가 스산하다.”

왕은 공포에 질려 분노했다. 웃는 가면을 쓰고 비녹에게 재를 뿌렸다.

궁녀들은 풍악에 맞춰 웃으며 칼춤을 추고 왕의 군사들은 활을 쏘기 시작했다.

눈에 슬픔을 가득 담은 장군은 적군의 칼을 왕의 심장에 꽂아 넣었다.

 

죽음으로 피와 살을 모두 빼았겨버린 왕의 영혼은 생강향을 따라 땅으로 숨어들어갔다.

아라의 향이 왕의 영혼을 감싸주었다.

“하늘의 뜻이다!”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외치고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천지수는 맑고도 맑나니 어이하여 그처럼 맑은가

공주의 해맑은 마음씨를 닮아서이다.

비 온 뒤끝의 천지수는 왜 오색이 영롱한가

백장군 부부의 기쁨이 어렸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칙색의 무지개는 왜 피어나는가

부부가 칠색 비단발을 드리워 놓고 승리를 경축하기 때문이다.“

 

피와 살을 얻은 비녹은 나라의 왕이 되어 슬픔으로써 나라를 다스렸다. 그로인해 기쁨이 생겼고 웃음이 생겼다.

<제43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 수상소감>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써본 소설이 가작으로 당선되다니 기쁩니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완성만 해도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력에 비해 큰 칭찬과 격려를 선물해주셨습니다.

  소설을 쓰려고 책상에 앉으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첫 번째 이야기를 완성한다면 다음에는 어떤 소설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포기하지 않고 끝을 맺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끝내고 엔터키를 누르자마자, 한계에서 벗어난 듯 자유를 느꼈습니다. 과연 소설을 완성하는 것은 험난한 일이었으나 해낸 것만으로도 스스로 다른 사람이 돼 있더군요.

  사실 당선 소감을 적고 있는 지금보다는 소설을 완성한 직후 제 마음 속에서 별이 빛나던 바로 그날 밤이 가장 기뻤던 것 같습니다. 소설의 시작과 끝을 맺었다는 것이 뿌듯했고 비녹과 아라, 늙은 왕을 숨 쉬게 했다는 것이 과연 나에게서 나온 것인지 믿기지 않아서 가슴 뛰게 설레는 밤이었습니다.

  <비녹(悲鹿)>이 저에게 작지만 단단한 의미를 준 것을 잊지 않고, 힘들 때마다 작은 기도라고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되뇌며 나아가겠습니다.

  뒤돌아보니 아름다웠던 우리대학에서 마지막 학기의 마침표를 학술문예상 덕분에 의미 있게 찍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나약한 저는 여전히 불안하고 아프거나, 두렵고 외로울 때가 있겠지만 용기를 가지고 매 순간 작품의 세상 속으로 가는 길을 택하려고 합니다.

  P.S. 항상 응원해 주는 든든한 아빠와 엄마 그리고 우리 동생 고맙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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