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힘든 나라, 떠날수도 없는 나라,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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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은정 기자
  • 승인 2004.06.08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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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더 이상 한국은 희망에 가득찬 나라가 아니에요"

이주노동자 인터뷰/토너 림부(35 네팔)

살기 힘든 나라, 떠날수도 없는 나라, 대한민국


"저에게 더 이상 한국은 희망에 가득찬 나라가 아니에요"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 8월 16일 최종 공포되어 내년 8월부터 시행된다. 그에 따라 국내 체류기간 4년 이상(2003년 3월 31일 기준)의 노동자들은 11월 15일까지 자진 출국해야 했다. 대부분의 불법 체류 외국인노동자들은 이번 단속 역시 ‘예전처럼 금방 수그러들겠지’ 하는 마음에 임시방편으로 생필품을 사들고 어딘가로 숨어들었다. 또 그 가운데 몇몇은 ‘강제추방 반대와 노동자 합법화’를 외치며 농성에 들어갔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쉽지 않고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국에서 죽거나 다칠 수도 있고, 돈을 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은 당장 떠날 돈이 없어서, 빚이 많아서, 임금을 받지 못해서 혹은 억울해서 등 많은 이유로 한국을 떠나지 못한다. 그렇기에 20대 젊은 나이에 한국에 와서 청춘을 다 쏟아 부은 그들은 하고 싶은 일 다 참아가며 한국 사회에 적응하고자 한다. 이에 농성을 하고 있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명동성당 농성단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토너 림부씨. 지난달 30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있었던 ‘이주 노동자 투쟁 200일 대회’에 이어 투쟁 200일을 넘은 6월 1일, 명동성당 한켠에서 농성하고 있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3형제 중 장남인 토너 림부씨는 네팔에서 10여년 전에 한국에 왔다. 가난한 나라 네팔에서 살고 있는 어머니, 아버지, 남동생 두명 등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코리안 드림을 갖고 이 땅에 도착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처음 용접일을 시작했을 때만해도 백만원에서 백이십만원가량의 월급을 받아, 꽤 넉넉한 생활을 했었다. 비록 아침 8시부터 시작해서 언제끝날지 모르는 작업이었지만, 네팔에 살고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월급도 제때에 받지 못한 채 강제로 직장에서 쫓겨 난 이후, 생계를 위해 막일이라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건설현장에서 벽돌을 나르다가 허리를 다쳐 움직이기도 힘든 상황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서 힘들지만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모아둔 돈까지 일본으로 밀항시켜준다는 사람의 말에 속아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토너 림부씨는 “그때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였어요”라고 회상했다. 다친 허리를 치료해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 테지만 불법체류자라는 이름 때문에 보험혜택을 받지 못해 월급보다 치료비가 더 많이 드는 실정이어서 제대로 된 치료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2~3년간 일을 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토너 림부씨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고, 고용허가제가 통과되고 나서 많은 친구들이 강제 추방되는 모습을 보고 투쟁에 참여할 결심을 하였다. “저에게 더 이상 한국은 희망에 가득 찬 곳이 아니에요. 한국에 오기 전에는 그저 잘 사는 나라라고만 알았지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의 기본 권리가 탄압받고 있는지 몰랐고, 또한 한국 정부가 노동자의 기본권리조건 보장에 이렇게 까다로운 지도 몰랐어요”라는 말로 그동안에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오면서 느낀 설움을 토로했다.    민노총 지부 외국인 노동자 명동성당 농성단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토너 림부씨는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 걸 느낀다고 말한다. 투쟁에 가담하기 전에는 주말이면 친구들과 어울리고 평일에는 일하는 단조로운 일상이었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투쟁을 해 나가면서 그 자신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도 권리를 되찾을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생겼다는 토너 림부씨. 강제 추방 될 때를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지만, 네팔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네팔의 노동자권리를 되찾기 위해 한국과 연대해서 노력할 것이고, 한국에 있는 동안에는 또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일할 것이라며 힘주어 말했다. 또한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이주노동자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많은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호소했다.

배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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