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목소리 커서 이기는 시대는 갔다
(취재수첩)목소리 커서 이기는 시대는 갔다
  • 김지향 기자
  • 승인 2004.09.14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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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일전이었다. 취재를 하기위해 길을 나섰고 지하철 4호선 당고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북적거리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빼곡히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그렇게 열차는 달려가고 있었다. 그 때 한쪽에서 문을 열고 한 여자가 들어왔고 그녀는 지하철에 타고 있는 사람들 한명 한명을 붙잡고 뭔가를 부탁했다. 자세히 보니 평화를 추구하는 어떤 모임에서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해 국민들의 찬성서명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몇몇의 사람들을 지나 내 옆의 한 아주머니 앞에서 사건은 발생했다.

  서명을 부탁하는 그 여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아주머니는 국가보안법을 왜 폐지해야 하냐며 대뜸 언성을 높였다. 여자는 당황한 눈치가 역력했지만 그녀는 확고한 말투로 폐지의 이유에 대하여 장황하고도 체계적인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이번엔 삿대질까지 해가면서 왜 선량한 시민들이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그런 논리로 사람들을 선동하냐며 화를 버럭 냈다. 사태는 이런 서명운동을 지하철에서 받는 것은 불법행위니, 당장 내려서 역장에게 가보자고 할 만큼 악화되었다. 그 아주머니를 두고 여자도 몇 분간 실랑이를 벌이던 끝 사상의 자유는 있으니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쏘아붙이고는 다음 칸으로 넘어가 버렸다.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옆자리에 앉은 나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다. 물론, 이를 계기로 국가보안법 실효성에 대해서 조금은 혼란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나 찬·반 그 이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 아주머니는 그렇게 대뜸 버럭 화를 내야만 했을까. 그 서명 받던 여자는 휑하니 등을 돌려야만 했을까. 차라리 치열한 논쟁을 벌이며 자신의 의견을 대화로 풀어내었다면 오히려 내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타협점은 찾지 못한 채 언성만 높이는 모습은 흡사 여·야간 목소리 높이기의 한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한심했다면 나의 지나친 해석일까.
 

 현재 국회는 국보법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안으로 극심한 대립구도를 보인다.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무조건 배척하고 자신의 입장만 고수하며 상대방 헐뜯기에 급급하다. 대화라는 것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고 싸우기에만 바쁘다. 이런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불안하기만 할 수밖에 없다. 한 나라를 책임지고 우두머리의 자리에 서서 이끌어 가야 하는 그들이 안정된 국론을 만들어가지 못하고 팽팽히 대립하는 모습은 결코 정치인으로써 올바르지 않아 보인다. 이는 자신들의 보이지 않는 이해관계가 엉켜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갖가지 분열로 어수선한 대한민국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느새 열차는 취재지에 도착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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