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씨는 앞으로 자녀 양육이나 생계는 어떻게 이어나갈 것이냐는 질문에 금세 표정이 어두워진다. 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했던 김씨는 이혼을 결심한 뒤 직장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했으나 ‘여자’인데다 ‘나이’가 많아서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이혼 당시에 너무 괴로워 한시라도 빨리 헤어지고 싶어, 양육비에 대한 합의 없이 이제 양육비라는 커다란 짐이 놓이게 됐다.
이처럼 현행법상 양육비 결정에 대한 논의 없이도 간단하게 합의 이혼이 성립될 수 있다. 또한 이혼 과정에서 양육비가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없다. 자녀양육문제 등 이혼에 따른 제반 문제를 생각할 유보 기간을 갖는 이혼숙려제도의 도입이 검토되고 있지만 언제 시행될지 확실치 않다. 이혼율의 증가로 인해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된 전업 주부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생활설계사나 다단계 판매 또는 가게 점원이 고작이다. 이런 직업으로는 아이들 교육비는커녕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어렵다. 양육비를 지급받는 경우에도, 부모의 소득은 천차만별인데 비해 법원의 판결은 30만원으로 거의 일정하다. 이혼한 여성이 자녀양육을 맡게 되는 경우가 80%에 육박하는 지금, 턱없이 적은 금액의 양육비 수준은 여성을 이혼 전에 비해 낮은 생활수준으로 전락시키고, 아이에 대한 양육권을 스스로 포기하게 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 짧게는 몇년 길게는 몇십년을 주부로 살아온 이혼 여성들을 위한 재취업의 통로가 제대로 뚫려 있지 않다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이혼한 여성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호주제로 인해 이혼 여성의 자녀는 호적상 ‘동거인’으로 기록된다는 것도 있다. 호주제는 재혼 후에도 자녀의 성과 본을 바꿀 수 없다. 물론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 ‘복리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될 때’에 한해 바꿀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그 기준도 모호하고 바꾸는 과정에서 이혼 여성과 자녀들은 많은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된다. 호주제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가자, 법무부는 개인별신분등록제를 대안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 제도는 기존의 출생부, 혼인부, 사망부라는 명칭대신 등록부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이혼이나 재혼시에는 새로운 혼인등록부가 발급 된다. 또한, 신분등록부와 혼인등록부는 별도로 관리된다. 이러한 호주제 폐지가 이혼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더불어 한부모 가정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예전보다 사회적으로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많이 누그러들었다. 각자 다른 삶에 대한 인정과 ‘이혼할 만한 이유가 있으니까 이혼하겠지’라는 생각이 어느 정도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이혼한 여성은 인생의 패배자로 비춰지기 일쑤다. 피해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포장하고 아픈 곳은 더 부각시켜야만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이 사회에서, 이혼한 여성도 ‘나는 이혼녀다’라는 마음의 상처를 겉으로 더 드러내야 사회적인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들 마음의 상처에 대한 대가가 재취업의 기회와 바람직한 양육비산정 그리고 어머니임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호주제 폐지 등에 대한 국가적인 제도 마련 뒷받침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보며, 더 이상 그녀들을 인생의 낙오자로 바라보는 그늘진 시선은 거둬들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