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이라는 운명론적 관점을 중시하던 유교적 한국사회의 모습이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하면서 혈연이라는 끈으로 가족의 범주를 규정하기란 억지스런 일이 되어 버렸다. 또한 산업사회가 도래하면서 유교적 한국사회에서의 가족의 기능은 외부의 제도화된 교육시설과 기업이 도맡아 하게 되었고, 결국 가족의 중요성은 낮아지기 시작했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존재를 자신의 자유의지와 개성으로 선택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귀찮고 버거운 짐이 되어 피하고 싶고 버리고 싶은 존재로 그려지는 가족간 갈등의 모습은 방송매체의 진부한 소재가 되어버렸다. 천륜을 거스르는 시나리오 또한 더 이상 관객들에게 여운과 고뇌를 안겨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륜을 다스리는 시나리오는 그 모습이 조금은 다른 듯 보여 진다. 보편적 진리로 관객을 동요시킨다. 영화 ‘가족’을 보면 갈등의 골이 깊어진 아버지와 딸이 등장한다. 서로가 가족이길 바라지 않았다며 상처를 주는 말만 던진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표현하지 못했을 뿐, 헌신적인 가족이었다. 진부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이런 영화를 찾는다.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따뜻한 보금자리로서의 본원적인 가족의 기능을 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최근 개봉한 영화 ‘우리형’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가족이라는 보편적 진리를 말하고 있다. 보편적 감성이 묻어나는 영화 속 내용은 가족간의 소박한 대화와 일상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말해준다. 현대사회의 가족의 모습은 다양성이 심화되고 있다. 가족의 범주와 유형은 모호해지고 있다. 사회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시점에서 가족 구성원 간 서로를 위한 노력은 중요하다. 또한 새로운 가족의 구성원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단지 혈연주의에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가족의 범주나 유형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가족 구성원이 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영화 ‘스텝맘’을 보면 엄마가 되기 위한 이사벨의 노력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가족의 새로운 구성원으로서 이사벨은 아이들의 새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들은 그런 새엄마의 노력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보살핌의 공간에서 서로가 닮아가기 위해서는 서로를 챙기고 생각하는 꾸준한 노력과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본연의 가족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