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천국의 문'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천국의 문'
  • 김민정 기자
  • 승인 2004.12.0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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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 전, 딱 이맘때 수능 점수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생각이 난다. 친구들 중에는 몇 문제의 답을 밀려 썼다며 학교도 나오지 않는 아이가 있었고 찍은 답이 맞았다며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기뻐하던 아이도 있었다. 그렇게 한 문제 한 문제에, 2점에 3점에 우리 인생이, 내 행복이 달려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때였다.

 한글을 깨우치기 시작했던 때부터, 제 이름 석자를 쓰는 순간부터 주위의 어른들은 슬슬 아이에게 대학이라는 천국을 소개한다. 그 곳에 가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낭만이 있으며 성공이 있고, 행복이 있다는 달콤한 유혹으로 말이다. 그래서 서 너 군데의 학원쯤은 참을 만 했고 밤 12시가 다되도록 선생님의 감시 속에 이어지는 자율학습도 참을 수 있었다. 모두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며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는 곰과 호랑이처럼 버티어 온 나날들일 것이다. 그리고 수능이라는 결전의 날 이후 누군가는 사람이 되는 성공을 맛보고 누군가는 영원한 실패자가 되어 손가락질을 받게 된다.

 요즘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수능 부정행위는 전국에 몇 백 명이 넘는 사상초유의 그 숫자와 그리고 휴대폰이라는 첨단기계를 이용하여 벌인 수법, 또 비단 올해뿐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이어져온 관행이라는 점 등 여러모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연일 신문의 1면을 차지하고 뉴스의 시작을 장식하는 이번 사태에 대해 사회 곳곳에서는 할 말이 많다. 누군가는 요즘 아이들은 도덕적 관념이 없다며 비난했고 누군가는 반칙이 허용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 개탄을 했다. 시험감독에 소홀한 감독관과 담당 교육청은 여지없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한편 컴퓨터와 과학문명 비관론자들은 핸드폰과 같은 첨단 기기의 발달이 가져온 폐해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기에만 그친다면 악순환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이 경찰서에 연행되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은 과연 도덕이나 반칙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일까? 그 아이들 역시 어릴 적부터 ‘대학’이라는 별천지에 대한 꿈을 안고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버틴 대학민국의 수험생들이다. 학교에서는 대학만이 인생의 정답이 될 수 있다 배워왔고 부모님의 소원은 오로지 자신이 명문대에 합격하는 일이었다. 본인 역시 주위에서 보고 들어 보니 대학에 가야만 성공한 인생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자신의 운명이 대학에 걸려있다고 판단된 순간 아이들은 정말로 자신의 운명을 걸어버린 것이다. ‘수능’이라는 한번의 기회를 잘 잡는다면 천국의 문은 열린다는 희망 아래......
 

 천국의 문, 우리 사회가 미시적으로 조작한 이 욕망의 장치를 두드리던 아이들은 꼭 들어가고 싶은 바람에 그 문을 부수는 실수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과연 시험자격 3회 정지로 어릴적부터 사회에 의해, 환경에 의해 길러진 욕망을 잠재울 수 있을까? 대학에 들어가고 나면 또 다시 ‘취업’이라는 천국의 문을 두드려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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