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 Cool, 냉정과 열정 사이의 기로에 서다
우리시대 Cool, 냉정과 열정 사이의 기로에 서다
  • 문화평론가 권경우
  • 승인 2005.03.29 21: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쿨’, 새로운 감성코드를 읽다

이제 ‘쿨(cool)’은 우리 시대의 중요한 문화적 코드가 되었다. 기업마케팅에 이용될 뿐만 아니라 얼마 전 한국대학에서 석좌교수로 있는 한 일본인이 한국의 브랜드를 ‘Cool Korea'로 하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쿨’은 젊은 세대를 넘어 전사회적인 감성이 된 것이다. 

‘쿨’한 이미지의 대표격은 고양이다. 고양이는 개와는 달리 이기적이며 솔직하고 자기감정에 충실하다. 당연히 주인이 오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기껏 한다는 게 조용히 옆에 와서 누울 뿐이다. 반면에 개는 주인을 보면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한다. 꼬리를 흔들거나 폴짝 뛰고 핥기도 한다. 물론 주인도 뽀뽀와 같은 애정 표현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아지는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그래서인지 고양이를 좋아하거나 키우는 사람들도 대부분 고양이처럼 ‘쿨’한 성격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지 않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9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쿨’한 분위기가 확산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배경을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1980년대의 집단적 공동체 문화가 90년대 들어 ‘신세대’라는 새로운 세대의 등장과 더불어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문화가 확산되었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문화와 개인주의문화는 갈등과 충돌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대적 차원에서 볼 때 결국 새로운 세대, 즉 젊은 세대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것. 결국 공동체문화는 서서히 붕괴되어 간 것이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쿨’한 문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이에 덧붙여 한국사회가 갖는 ‘근접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가족중심주의와 더불어 좀처럼 자신이 속한 집단을 떠나지 않는 한국사회의 특성상, 개인들은 유난히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이 점에 있어서는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정서적 혹은 심리적 공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적으로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사회분위기에서 이러한 공간의 근접성은 불편함을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

또한 ‘쿨’은 사회적으로 불안한 관계들을 보여주는 잣대이다. 안정적이고 따뜻한 관계가 더 이상 불가능하고 언제 깨질지 모르는 관계들이 늘어나면서 ‘쿨’은 이제 상처받지 않기 위한 자기방어의 심리적 기제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구체적 상황이 갈수록 추상화되고 희화화되는 현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인 셈이다. 그 사랑은 자기애이자 자기배려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지극히 수동적이다.

‘쿨’은 냉정과 열정 사이의 문화이다. 사람과의 관계 맺기 혹은 소통 방식에 있어 새로운 방식과 입장을 내세운다. 그것은 일종의 거리감이다. 근접함이 주는 불편함을 해소하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서로를 배려하는 감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감은 정작 감정이입이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동참은 거리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갖고 있을 때 동참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거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일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뜨거움이 필요한 것이다. 아울러 자신의 희생이 동반되지 않는 관계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열정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최근 유행하는 ‘쿨하다’는 것은 어쩌면 서양의 합리주의의 변형된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불리할 때 사용되는 방어기제로서만 작동한다면, 자기애와 타자에 대한 배려라는 적절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뜨거운 정열은 ‘쿨’이 갖는 단점을 보완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