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위기, 남의 탓 아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위기, 남의 탓 아니다
  • 서강대 화학과 교수 이덕환
  • 승인 2005.04.0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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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연재_우리 세대 흑백 바라보기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이 심각한 위기라고 한다. 현실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 명백한 증거다. 실제로 기초학문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데도 그렇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학생들이 등을 돌린 것은 기초학문이 직면한 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뿐이다. 그래서 학생들이 너무 쉽게 현실에 안주한다고 탓하는 것은 소비자가 원치 않는 상품을 만든 기업이 소비자를 탓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다. 정부와 사회를 탓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결국 기초학문이 위기에 빠지게 된 원인은 기초학문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위기의 원인을 남의 탓으로 돌려버리면 기초학문은 영원히 위기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동안 기초학문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과학 지식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와서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라는 불평이 생길 정도다. 우리의 가장 궁극적인 의문이라고 할 수 있는 생명, 지구, 우주의 신비를 본격적으로 파헤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반세기 전이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신(神)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아닌가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른 것이다.
 

  인문학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회적 변화를 경험했다. 차별과 굶주림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자유와 평등이 우리의 기본 이념이 되었고, 이제는 양성(兩性)의 평등까지 이야기하게 되었다. 인문학적 사고(思考)의 혁신이 없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던 변화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놀라운 성과의 뒤편에는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도를 넘어선 반목과 대립이 바로 그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실현시켰다는 오만에 빠진 자연과학자들은 인문학을 쓸 데 없는 탁상공론으로 여긴다. 역사책에 남겨진 극도로 왜곡된 과거를 진실이라고 믿는 인문학자들은 자연과학이 자연을 정복하고 신(神)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불순한 노력이라고 몰아 부치고 있다. 상대에 대한 극단적인 비방과 불신이 볼썽사나운 ‘과학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극한적인 대립은 학자들이 쓸데없는 이전투구(泥田鬪狗)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여기도록 했고, 학생들은 인류 문명의 두 핵심 중에서 한쪽만을 겨우 이해하는 절름발이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기초학문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대타협이 필요하다. 인간이 그 일부인 자연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 스스로의 존재를 이해하려는 인문학의 노력도 의미가 없게 된다. 자연에 감춰진 신비를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자연과학이 사라지면 인문학도 설 곳이 없게 된다는 뜻이다. 원자와 분자, 나아가서는 쿼크를 이야기하고 있는 형편에 우주가 불, 물, 나무, 쇠, 흙으로 되어 있다는 세계관을 들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신비에 싸여있던 유전(遺傳)의 정체까지 밝혀내고 있는 형편에 남들은 수백 년 전에 폐기해버린 낡아빠진 의학 상식을 고집하는 것도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물론 인간이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빵 없이 살 수 없는 것도 역시 분명한 진실이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화합은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기꺼이 배우고 싶은 자연과학 교육도 필요하고,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정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인문학 교육도 필요하다. 단편적인 상식을 가르치는 정도가 아니라 기초학문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시킬 수 있는 수준 높은 교육이 필요하다.
 

  현대의 기초학문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 현실을 외면하고 단순히 쉽고 재미있다는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기초학문이 딱딱하고 어렵지만 현대의 민주사회에서 기초학문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갖추지 못하면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하는 현대판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강조되어야 한다. 교육을 통한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진정한 화합만이 우리가 기초학문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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