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집권을 위한 시설을 마련하느라 여념이 없던 1960년대 말,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보조로 일하던 전태일은 청계천의 어린 노동자들의 고달프고 힘든 삶을 바라보며 사회의 착취 구조를 깨닫고 시정하고자 노동운동을 벌이게 된다. 그는 사회의 불합리한 착취 구조를 알리기 위해 1970년 11월 13일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분신으로써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전태일이 분신한 후를 기점으로 노동운동은 급격한 양상을 이루며 변화하게 된다. 박정희 정권은 71년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72년에 10월 유신과 긴급조치를 선포하며 공포정치로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전태일의 분신 이후에 새로운 자각을 한 노동자들의 노동운동은 더욱 불타 올랐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열망은 70년대에만 약 2500여개의 노동조합이 생성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80년 전두환, 노태우 쿠데타 이후, 노동운동은 가혹한 탄압 속에 잠시 식는 듯 했으나 83년부터 시작된 민주화 투쟁과 맞물려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한 단계 더 성숙하게 된다. 특히 노동운동이 노동운동에만 머무르지 않고 반독재, 반자본, 반제국주의 운동으로 번졌으며, 노동자의 계급적 의식 각성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노동운동의 시작은 전태일의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분신을 통해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노동자의 죽음과, 그 죽음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노력이 오늘도 더 나은 노동환경을 위해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