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이제 다시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 전국대학신문기자연석
  • 승인 2005.05.2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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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자동차 사무계약직 해고노동자 김영미씨

▣ 현장인터뷰: 기아자동차 사무계약직 해고노동자 김영미(27세)씨
“비정규직, 비정규직만의 문제 아니다”

“나 스스로도 일하면서 무늬만 계약직이지, 정규직과 똑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고될 거란 생각은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는데, 결국은...”
메이데이(Mayday)를 하루 앞둔 지난달 30일 ‘비정규직 차별문제’에 저항하는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지던 여의도 국회 앞, ‘115주년 세계 노동절 전야제’ 현장에서 만난 김영미(26)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지난해까지 기아자동차 대구지역본부 방촌지점에서 채권업무를 담당하던 사무계약직 노동자였다. 그러던 중, 계약만료라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28일경에 회사로부터 ‘1월 1일자로 회사에 나오지 말라’는 해고통지를 받았다. 김씨에게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다.

2000년도에 대학을 졸업한 김씨는 용역업체소속의 파견직 형태로 기아자동차 방촌지점에 취업했다. 파견직으로 2년근무후 지난 2002년 1월 1일부로 계약직으로 전환했고, 이후, 계약서 정리, 대금결제, 차량출하, 예산편성, 채권업무 등 3년 동안 시기별로 다양한 업무를 맡아왔었다. 용역으로 일할 당시 한달에 70여만원(이는 보너스나 성과급 없이 퇴직금과 상여금 모두 포함한 금액)을 받았다는 그녀는 계약직으로 전환한 뒤 성과급과 보너스, 대우도 정규직과 거의 비슷해,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했지만 정작 정규직과 같은 시간동안 같은 일하면서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같은 수준의 월급은 받지 못했단다.

그녀는 “그렇지만 정규직과 기본급 이외에 별다른 차별은 없었고 계약기간도 계속 연장해왔기 때문에 해고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잘못한 일도 없고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이러한 일을 겪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하며, “원래 기업이 해고하려면 한 달 전에 통보해야하는데, 우리의 경우는 3일 전에야 통보를 받았다. 미리 말해줬으면 다른 직장이라도 알아보는 등 마음의 준비라도 했을 텐데...”라며 그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식구’와도 같았던 사람으로부터 ‘회사가 어려워서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며 해고통보를 받는데, 정말 울고 싶은데 울지 않으려고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왜 꼭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라며 솔직한 속내를 내비췄다.

김씨처럼 해고된 기아차 사무계약직 노동자들은 총 54명, 모두 3년 미만의 계약직 여성노동자들로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파견법)’이 통과될 경우를 감안해 회사가 그들 모두를 해고시켰다. 이에 대해 김씨는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비정규직을 보호한다고 하는 법안이 보호법안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생각한다. 파견직으로 2년 근무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것이 기존 법안인데 이를 3년으로 늘리는 것이 어떻게 보호법안인가”라고 꼬집으며, “지난 날 나의 근무일수를 보더라도 2년 동안 파견직으로 근무한 이후 정규직화 돼야 했지만, 오히려 함께 파견직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의 50%를 해고시키고, 그 나머지 사람들만 계약직으로 전환시켜줬다. 현재 기아차 내부의 수많은 비정규직 중에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람은 소아리 공장내부에서만 단 한명 있다고 들었다”고 현실과 괴리된 파견법에 개탄하며, 그녀의 의견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해고이후 18명의 노동자가 결합해 지난 1월 17일부터 기아차 소아리공장 식당 옆 잔디밭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해 현재는 1백일을 넘긴 상태다. 이들은 그동안에 근무했던 기간(3년 미만 계약직으로 일했던 것도 함께) 인정과 1월 1일자로 원직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교섭권이 없는 계약직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회사와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노동조합(이하 노조)과 같은 조직은 아니지만 노조원들이 아닌 그들에게, 해고이후 노조 대의원들이 결의를 해 노조원 지위를 부여한 상태다. 이들은 앞으로 노조를 통해 회사와 교섭을 진행해나가려 한다. 이에 그녀는 “현재 새로운 집행부가 서면서 지금 노사협의가 진행 중에 있다고 알고 있는데, 23건의 교섭 사안에 우리들의 문제가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노조와 함께 ‘해고자 농성단’은 계속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밝혀 문제해결에 내심 희망을 걸고 있는 듯 했다.

김씨는 현재 조를 짜서 천막과 노조사무실 옆 숙소에서 교대하며 잠을 자며, 아침 7시 10분께에 출근해 8시 10분부터 투쟁을 시작하고 다른 연대집회에 참석하는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농성자들 중에 갓 결혼한 신혼부부도 있고, 임신한 지 이제 막 한달이 된 사람도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굳은 의지마저 느끼게 한다. 현재 그녀에게 가장 힘든 점은 어떤 점이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몸이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들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 기약이 없다는 것이 힘들다”며, “가족과 떨어져서 생활하는 것도 힘든 요소”라는 말을 통해, 갑자기 바뀐 그녀의 생활이 결코 녹록치 않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한동안 부모님께 직장을 그만뒀다는 말을 차마 전하지 못했다며, 말을 잠시 멈추며 눈시울을 붉히는 김씨는 걱정에 찬 부모님의 “힘드니까 복직투쟁을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구하면 안 되느냐”는 말에, “그렇지 않다. 다른 곳을 구해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한다. 내가 힘들더라도 투쟁해야지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며 겨우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렸다고 한다.

“이제 다시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는 김영미 씨. 그녀의 힘든 투쟁은 그녀를 믿어주는 부모님과 함께 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더욱 값져 보인다.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낼 때까지 끝까지 해나가겠다고 말하는 그녀도 그전에는 사실 노동자문제에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었단다. “이제껏 노동자로 살아오면서도 노동자임을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그녀는 “대학을 다닐 때까지만 해도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점차 확대일로에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현재 그녀자신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앞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 대학생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문제라면서 “요즘 대부분의 대학생이 비정규직문제를 외면하고 자신은 다를거라 생각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자기세대에 끝날 일이 아니라 다음세대에까지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투쟁해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김씨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비정규직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보진 않는다. 천막농성은 현재 진행중인 노사협의 결과에 따라서 투쟁방향이 전개될 것이다. 이 문제를 많이 알려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집회에도 많이 참석할 계획이며, 이외에도 사측과의 임금협상 때에도 우리문제를 계속 주지시킬 것이다”라고 밝혔다. 또 이와 함께 예비노동자들인 대학생들에게도 “앞으로 취업문제로 힘들어 할 학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아프다. 비정규직문제가 단지 비정규직 문제만의 일이 아니다”며 함께 고민하고 풀어내기를 당부하며 인터뷰를 끝마쳤다.
전국대학신문기자연석회의 사회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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