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혹은 거짓, 그 아슬한 경계
진실 혹은 거짓, 그 아슬한 경계
  • 부산일보 박태성
  • 승인 2005.05.28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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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과 `제5공화국'
 

역사는 평가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던 역사이면 더욱 그렇다. 정치권의 과거사 정리가 지지부진하다. 그런 가운데 망각되었던 과거사들이 거명되고 있지만 정리되지 못한 채 우리 주위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진실의 궁금함은 더해 가고있고 과거사는 쇠사슬이 되어 우리들의 발목을 여전히 잡고 있다. 속시원한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 정리가 역사의 부채로 잔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 임무에 충실한 것이지, 상업적 흐름에 편승한 것인지, 현대사의 민감한 사건들을 다룬 작품들이 앞다투어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팩션이란 신조어를 빌려 역사의 집단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셈이다.
 

팩션(faction)이란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합성어다. 그 논란의 중심에 TV 드라마 제5공화국이 있다. 80년 12·12사태부터 87년 6·29선언까지 장장 6년여에 이르는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를 이 드라마는 담는다. 올바른 역사적 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과거사를 드라마가 앞장 서 평가하는 것도 화제다. 헤겔은 `역사가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같이 황혼에 등장한다'고 했다. `역사가는 역사가 흐른 뒤에 역사를 기획 평가한다'는 것의 은유적 표현이다. 그런데 어스름도 몰려오기 전에 드라마가 총대를 멘 것이다. 그런고로 극히 민감한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아슬아슬하게 교차하고 있다. 역사(history)가 이야기(story)로 바뀌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역사 서술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이 드라마가 `팩션'임을 스스로 밝힌 제작진은 12·12에서 5·18로 이어지는 상황의 사실적 묘사로 시청자들이 쿠데타 세력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려주길 바라는 듯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의외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방영 초기부터 드라마 게시판에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 대해 `카리스마와 인간미가 넘치는 전두환' 등 찬양글이 올라오고 있다. 게시판에 올라온 1만여 건 의견 중 절반 이상이 당시 전두환 소장을 옹호한 의견이다. 또 일부 네티즌들은 `전사모(전두환을 사랑하는 모임)'를 결성, 회원까지 모집하고 있다고 한다. 제작진 의도와는 다르다.
 

왜 그럴까. 역사적 평가를 너무 서둘렀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작업이 서툴렀던 것일까. 이런 현상은 이 드라마의 한계와 위험성을 함께 일러주고 있다. 당시를 경험하지 못한 10~20대는 어쩌면 `제5공화국'을 마치 우리 현대사의 교본으로 여길 수 있다. 시청률에 급급하지 말고 신중히 제작할 것을 요구하는 교훈이기도하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사실과 허구를 제작진이 이따금 착각하고 있고 시청자들도 혼돈한다는 데 있다. 감정 이입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극적 장치가 없다. 주연 조연 할 것 없이 `닮은 꼴'이어서 시청자들의 몰입을 부추기고 있다. 그리고 재판 과정 등의 공식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하고 있다지만 그 자료에 대한 평가 역시 역사적으로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드라마에 한정 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팩션'은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객관적 실체적 접근을 해야한다. `팩션'을 열린 텍스트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프로야구에서 관객들이 경기를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감독과는 다른 작전을 내놓듯이 말이다.
 

역사는 산 자의 기억 속에서 다시 등장한다. 기억하는 것은 살아있는 우리들의 의무다. 하지만 기억하되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팩션'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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