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으로 세금 납부를, 미술품 물납제
미술품으로 세금 납부를, 미술품 물납제
  • 이효은 기자
  • 승인 2022.03.14 2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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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운영 위해 공정한 심사 체계 도입해야

  지난 2020년 5월, 간송미술관이 재정난과 상속세 납부를 이유로 금동여래입상(보물 제284호)과 금동보살입상(보물 제285호)을 경매에 내놓았다. 보물이 경매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며 미술품 물납제가 사회적 이슈로 급부상했다. 故 이건희 회장이 타계한 후에는 그의 미술품·문화재 컬렉션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미술품 물납제 도입 논의가 박차를 가했다.

 

  보물을 세금으로?
  미술품 물납제는 어떻게 등장했나

  미술품 물납제란 상속세 등 세금을 미술품과 문화재로 내도록 하는 제도다. 현재 우리나라는 주식을 제외한 유가증권과 부동산만을 물납 대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다 작년 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18개 대안을 반영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해당 법은 73조 2항을 신설해 상속세를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대신 내는 물납 특례를 마련했다. 이 법안은 2023년 1월 1일 상속세 게시분부터 적용 시행될 예정이다.

  미술계에서는 고가치 미술품의 해외 반출을 막기 위해 꾸준히 미술품 물납제 도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고가치 미술품을 소장할 만큼의 재산이 있는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납부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부고나 적자 등으로 납세가 어려울 때 가지고 있는 재산 중 소장한 미술품을 우선적으로 해외에 매각할 가능성이 크다.

 

  문화재 해외 반출 막기와
  공공 미술 질 향상에 이바지

  지난해 4월 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소장품 2만 3,283점을 조건 없이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등에 기증했다. 기증된 작품에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포함한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 이중섭의 <황소>, 피카소와 모네 작품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대거 포함돼 있어 환산하기 어려울 만큼 가치가 크다.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 전경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 전시 전경<제공/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 해외 반출은 문화 수준이 높은 미술품을 소유할 기회를 잃는 것이므로 국가적 손해다. 일각에서는 문화재 기부 및 증여 시 세제 혜택을 주기 때문에 미술품 물납제가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옥션을 통해 얻는 이득이 더 크므로 세액공제를 부여하는 정도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미술품 물납제가 시행되면 국민이 예술 작품을 누릴 기회도 많아진다. 극소수만 사유하던 작품들이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국공립 미술관·박물관은 세금을 들이지 않고 작품을 수집해 공개함으로써 공공문화의 질을 향상할 수 있다.

  한국박물관협회 최미숙 기획지원실장은 “미술관·박물관·갤러리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상속세와 증여세가 문제가 됐다”며 “적절한 시기에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함으로써 사립박물관이 보유하고 있던 중요 문화재를 공공자산으로 들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탈세 가능성 줄이고
  공신력을 갖춰야

  그동안 미술품 물납제가 도입되지 못한 이유는 크게 △시가 감정 통한 정확한 금액 산출 능력 부족 △물납품 현금화 어려움으로 인한 세수 감소 △납부자 유불리에 따른 악용 가능성이다.

  문화재는 가치평가 기준이 모호할뿐더러 평가를 할 수 있는 전문가도 부족하다. 문화재·미술품은 주로 감정 위원을 초빙해 가치를 평가하는 행태가 일반적이다. 해당 업무 소관인 △고미술협회 △한국화랑협회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는 사단법인이기에 공신력을 따져봐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문화재위원회급의 권위와 전문성을 가진 심의 기구를 내년 상반기까지 설치하는 게 목표다”며 “박물관·미술관 감정평가사와 세법전문가 등으로 구성하고 서화·도자기·토기 등 미술품 종류에 따른 분과위원회도 둘 계획이다”고 전했다.

  미술품 물납제를 시행하면 현금화가 어려워 세수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건국대학교 상허교양대학 이재경 교수(이하 이 교수)는 “2000년 이후 물납 증권의 매각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누적 국고손실액이 4,870억 원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며 “미술품에 대한 객관적 가치평가의 어려움과 국고손실의 최소화를 위해 영국처럼 연간 물납 규모를 약 640억 원으로 한정해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미술품 물납제가 세금 탈세에 악용될 위험이 있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강남대학교 세무학과 안창남 교수는 “비자금이나 지나치게 부풀린 가격 등으로 탈세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이건희컬렉션에 미술품 물납제가 적용됐다고 가정하면 세무 당국에서 미술품 가격과 구매 경위를 물었을 때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고 지적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현재 미술품 물납제는 시기상조다”며 “개념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특정 재벌의 계략에 이용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정책의 실효성 위해
  평가의 객관성과 전문성 확보해야

  미술품 물납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신뢰성과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한 미술품 등록제를 시행해야 한다. 이를 시행하면 작품 이미지가 등록돼 거래할 때마다 거래세를 부과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지자체에서 미술품 보관 수장고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작품 보관이 용이할 뿐 아니라 지역 문화 관광 산업에도 도움을 준다. 마지막으로 미술품 중개사 자격제 도입을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이범헌 회장은 “현재 미술시장은 음지 거래가 적지 않은데 자격제를 통해 거래한다면 작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고 진위 파악도 용이하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각종 요건을 확실히 정하면 모호한 가치평가 기준에 대한 걱정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며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위한 전시, 대여 등 물납 미술품의 사후관리를 통해 정당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바른 미술품 물납제를 위해서는 물납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 △공정성 △가치평가의 객관성 △전문성을 갖춰 물납 대상 미술품을 선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외 미술품 물납제,
  세계적 미술관 형성해

  문화 강국이라 불리는 영국, 프랑스 등의 국가들은 미술품 물납제를 활발히 시행 중이다. 1896년 처음 미술품 물납제를 시행한 영국은 예술위원회와 대물변제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미술품을 물납할 수 있다. 단순히 미술품과 문화재뿐 아니라 △건물 △토지 △책 △과학 발명품 등 국가적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큰 것도 대상에 포함한다.

  프랑스 국립 피카소 미술관은 미술품 물납제의 대표적 사례다. 피카소 사망 후 유족이 상속세 대신 200여 점의 작품을 정부에 납부했고, 정부는 파리의 한 저택을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프랑스는 1968년에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했으며 상속세와 더불어 증여세, 재산세 등을 미술품으로 대신 낼 수 있다. 단 상속세약이 1만 유로 이상이어야 하며 미술품은 최소 5년 이상 소유한 것이어야 한다. 국가예술문화재와 보존심의위원회의 심의 과정을 거쳐 대상을 선정한다.

피카소 사망 후 유족들이 상속세로 납부한 피카소 작품을 모아 만든 파리 피카소 미술관 전경
피카소 사망 후 유족들이 상속세로 납부한 피카소 작품을 모아 만든 파리 피카소 미술관 전경<출처/파리 피카소 미술관 홈페이지> 

  1998년 미술품 물납제를 도입한 일본은 무분별한 물납을 막기 위해 미술품을 선공개한다. 소유자가 문화청에 미술품 등록을 신청해 승인되면 상속세로 인정받을 수 있다. 위 과정을 통해 법률상 등록된 특정 미술품만 세금으로 납부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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