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문화에 깔린 성차별, 가정 내 여성의 역할 규정해
결혼 문화에 깔린 성차별, 가정 내 여성의 역할 규정해
  • 고유미 기자
  • 승인 2023.03.20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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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 속 차별적 성역할과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우리나라 전통 의례는 시대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가부장 제도가 존재했던 탓에 의례문화 속 고정적인 여성의 역할이 존재하며 이를 바꾸기도 어렵다. 결혼식 문화에서 여성의 성역할을 규정하는 건전가정의례준칙은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한 법 조항이다.

 

  ‘웨딩 택스’가 붙은
  여성의 결혼식 준비

  핑크 택스(Pink tax)란 같은 서비스·상품이 남성용과 비교해 여성용이 더 비싼 경우를 일컫는 용어다. △미용 △의류 △화장품 등 여성이 주 소비자일 때 주로 나타난다.

  웨딩 택스(Wedding tax)는 핑크 택스의 일종으로, 여성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당연하게 소비해야 할 서비스·상품이 값비싼 현상을 가리킨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라는 말과 신부 화장부터 웨딩드레스, 예식용 구두 등의 의복에서 알 수 있듯이 결혼식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꾸며야 하는 주체는 여성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가 가장 돋보여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웨딩 택스를 붙여 더욱 비싼 소비를 조장하는 것이다.

  결혼식 의복 가격에서도 차이가 발생한다. 남성의 예복이 80~150만 원일 때 여성의 예복은 150~500만 원 사이에 책정된다. 남성의 예복은 양복 정장임에 반해 여성 예복은 드레스 형태로 구성하는 데 품이 들어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코르셋, 레이스까지 추가 선택을 고려하다 보면 여성은 비싼 값을 주고 불편한 예복을 입는 셈이다.

  최근에는 △웨딩 사진 촬영관 △웨딩드레스 판매점 △메이크업 숍을 추천하고 예약해주는 웨딩 플래너를 고용해 결혼식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 웨딩 플래너에 따라 선정하는 업체와 결과물이 다르기에 예비 신부는 실력 있는 웨딩 플래너를 섭외하기 위해 선물을 주기도 한다. 결혼식 준비 중 조공 문화를 경험한 A 씨는 “업계에서 감각 있는 신부라고 불리는 여성들은 공들여 장식한 봉투에 현금을 담아 웨딩 플래너에게 ‘조공비’를 전달하거나 간식을 마련하는 정성을 보인다”며 “웨딩 플래너뿐만 아니라 결혼 업체에서도 눈치를 줘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신부의 친구들이 준비하는 결혼 축하 파티 ‘브라이덜 샤워’는 최근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전파됐다. 신부와 친구들은 꽃과 초, 풍선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호텔 방에서 사진을 찍으며 샴페인을 터뜨린다. 브라이덜 샤워는 신부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 반드시 거쳐야하는 문화로 자리 잡아 이를 접한 여성들은 새로운 흐름을 따라가려 노력한다. 단국대학교 심리치료학과 임명호 교수는 “최근 세대는 SNS상에 게시한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며 “이러한 특성이 결혼 문화에도 반영돼 타인과 비교했을 때 가장 돋보이고 싶어하는 심리가 작용한다”고 말했다.

호텔 패키지로 제공되는 브라이덜 샤워 출처/파크하얏트부산
호텔 패키지로 제공되는 브라이덜 샤워 <출처/파크하얏트부산>

  혼례 행사 절차에
  숨겨진 성차별

  일반적으로 결혼식 당일 남성은 결혼식에 온 손님을 맞이하고 여성은 신부 대기실에 웨딩드레스를 입고 앉아 하객들과 사진을 찍고 짧은 대화를 나눈다. 정적인 자세로 손님을 맞이하는 여성의 주위에는 신부의 옷매무새와 화장·머리를 고쳐주는 도우미가 존재한다. 이는 여성이 결혼식 당일 흐트러짐 없이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그의 손으로’라는 뜻을 가진 ‘인 마눔(in manum)’은 결혼식의 전통적인 형식이다. 결혼식을 시작하며 신부 아버지는 신부의 손을 잡고 입장한 후 사위에게 딸의 손을 넘겨준다. 남성의 집에 들어가 시부모와 산다는 의미의 ‘시집간다’는 표현처럼 여성의 *호주가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바뀜을 의미한다. 여성이 남성 가족에게 속한다는 인식이 기저에 깔려있기에 성차별적 관례로 남은 것이다.

  ‘집사람’, ‘안사람’이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결혼제도 속 여성은 남성을 보조하는 역할로 인식돼왔다. 이런 인식은 혼인서약서와 주례사에서도 볼 수 있다. 일부 결혼식 업체는 “식사를 챙겨주고 집안일을 말끔히 해 남편이 바깥일을 잘하도록 내조하고 외모와 몸매 가꾸기도 소홀하지 않아 여성의 역할을 다하겠다”는 혼인서약서 양식을 배포하고 있다. 이는 가부장적인식 속에서 생계부양자로 사회적 진출을 하는 남성과 가정 내에서 집안일·육아를 맡는 여성의 역할을 규정해 성차별적 구조를 강화한다. 결혼 업체에서 준비하는 일정한 양식의 혼인서약서지만 결혼식 문화를 주도하는 이들이 기혼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홍혜은 페미니스트 연구활동가는 “현재의 결혼제도가 여성에게 부여한 위치나 역할에 반발하는 여성들이 있다”며 “결혼식은 지금의 제도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행사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입장하는 신부 출처/게티이미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입장하는 신부 <출처/게티이미지>

  의례문화 속 성차별
  원인은 가정의례준칙

  가부장적 의례문화의 기반인 건전가정의례준칙(이하 가정의례준칙)은 혼례에서 제례까지 관혼상제를 비롯한 의식절차 정립을 목적으로 마련됐다. 건전가정의례 정착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가정의례법)은 허례허식을 일소하고 의식절차를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69년 가정의례법이 생겼고 1999년 가정의례준칙이 제정됐다.

  가정의례준칙은 △결혼 △장례 △제사 등 가정의례를 정하는 법령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결혼식의 순서나 혼인 서약, 제례 절차 등을 규정해왔으나 오랜 기간 이어진 법령인 만큼 조항이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는 비판을 피해 가기 힘들다. 결혼식에서는 신랑이 먼저 입장하고 신부는 뒤를 따른다거나 장례에서 상주는 장남이 맡아야 한다는 내용 등을 명시해 성차별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받는다. 허울뿐인 법 조항으로 남아 법령 존속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으나 개선 여부는 불확실하다.

  2020년 9월,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은 가정의례법 폐지안을 발의하며 법률의 실효성과 함께 가정의례준칙의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인 내용을 지적했다. 이어 “가정의례법은 국가 법률로써 시민의 생활을 불필요하게 규제하는 것이며 법에 따른 행정행위가 없어 법률의 실효성이 사실상 없다”며 “법령에 담긴 ‘건전가족’이라는 용어는 정상가족의 틀 안에서 가족 다양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가정의례법의 존속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수행한 온라인 국민 설문조사에서는 대다수가 △결혼 △장례 △제사의 정의와 진행 방식 등을 가정의례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가정의례법이 구시대적이고 가부장적이므로 불필요하다”는 답변이 86.2%로 가장 많았으며 “해당 법령은 개인 생활에 대한 과도한 규제다”는 답변이 9.2%로 뒤를 이었다.

  가정의례법 폐지안은 국회에서 발의 후 2년째 여성가족부 소관 위원회인 여성가족위원회에 계류 중이며 다른 현안에 비해 우선순위로 여겨지지 않고 있다. 차인순 국회 의정연구원 겸임교수는 “국가가 가정의례까지 개입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으며 하위법령에는 가부장적인 표현이 담겼다”며 “사문화된 법령이기에 가정의례법 폐지가 당장 국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상징적인 의미는 있다”고 전했다.

 

  의례문화 개선에
  앞장서야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는 성차별적인 의례문화 개선을 위해 결혼식에서 볼 수 있는 의례들을 지적하며 캠페인을 진행했다. 해당 캠페인에서는 △신부 측 청첩장에 신부와 신부 부모의 이름 먼저 적기 △신부와 신랑이 함께 하객 맞이하기 △신부와 신랑 동시 입장 △서약서 및 주례사 속 성별 고정적 수식어 제거 △양측 가족이 함께하는 폐백 진행 등을 개선 방법으로 제시했다. 네티즌 B 씨는 “평등한 결혼식을 생각해보는 캠페인이었다”며 “성역할 구분 없는 결혼식 문화가 우리사회에 자리 잡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평등한 의례문화를 탈피하기 위한 가정의례법 폐지 움직임과 함께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을 바라보는 편견을 변화시킬 시점이다.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한 결혼 의례문화 바꾸기 캠페인 출처/서울시성평등지원센터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한 결혼 의례문화 바꾸기 캠페인 <출처/서울시성평등지원센터>

 


*호주: 한 집안의 주장이 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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