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방학에 평소 보기 힘든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교대에 다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친구의 눈은 교사처럼 학생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친구에게 몇 학년을 맡고 싶은지 물어보자 민원이 많은 1학년만 아니면 괜찮다고 답했다. 나는 가장 귀여운 학년을 꺼리는 친구를 보면서 의아했다.
이때 생긴 감정에 대한 답은 머지않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7월, 한 초등학교의 1학년 담임 교사가 학교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유는 학부모의 과한 민원이었다. 친한 친구가 교대에 다녀서인지 큰 슬픔이 밀려들었다. 친구에게도 이런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사람들은 교사를 죽음으로 내몬 학부모를 궁금해했다. 급기야 학부모가 정치인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특정 정당에선 해명까지 했다. 경찰이 사건에 대해 파고들 때도 학부모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현직 교사들은 교권을 침해한 학부모에 대한 처벌이 미흡하다고 외쳤다. 이에 교육부는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에 보호자의 악성 민원도 교권 침해 유형으로 신설하겠다고 답했다.
전국 각지의 교사들은 그동안 쌓인 울분을 국가에 호소했다. 일부 시민은 교권 추락이 학생 인권 상승 때문이라 주장한다. 그렇다면 교사가 학생을 체벌할 수 있어야 교권이 보장되는 것일까? 교권이 추락한 근본적인 원인은 아동학대처벌법에 있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다. 현행법에서의 학대 행위는 정서적·신체적 학대로 나뉜다. 현직 교사들은 학부모가 정서적 학대를 명목으로 신고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교사가 특정 학생을 훈육할 때조차 이 법이 적용된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해당법을 활용해 교사와 학교에 도 넘은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가는 진정 이들의 편인가. 교육부는 교사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전국 교사들이 지정한 “9.4 공교육 멈춤의 날”엔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국가는 집회에 참여하는 교사가 있다면 처벌하겠다고 경고하면서 학생의 곁을 떠나지 말아달라 당부했다. 교사에게 학생은 중요한 존재다. 하지만 교사 역시 노동자다.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 보호를 위해 행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날 이후에도 또 다른 교사가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실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날의 이야기는 묻히지 않는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오랜 기간 곪아왔던 문제가 드디어 터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국가는 터진 상처를 치유할 해결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