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발이 될 수 있도록
모두의 발이 될 수 있도록
  • 나윤서(시각디자인전공 3) 학우
  • 승인 2023.11.1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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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포털사이트에서 지하철 노선도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 있다. 여러 색을 다 보지 못하는 색약, 색맹을 위해 노선도를 새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특정 색상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노선도를 알아보기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는 꽤 단순했다. 노선별로 색상의 명도 차이를 확실하게 하고 꺾이는 노선에는 방향을 표시했다. 사소한 변화지만 노선도를 새로 만든 이후 색맹은 물론, 색을 보는 데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 또한 더 쉽게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었다.

  지하철이 대중에게 익숙한 만큼 지하철 노선도 또한 익숙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익숙했던 노선도가 40년 만에 바뀐다. 노선도를 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고 지하철로 이동하는 과정 중 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노선도를 바라보며 고민하는 시간이 쌓이면 피로로 이어진다. 지하철은 시민의 발이다. 우리의 이동은 더욱 용이해야 한다. 공공철도는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디지털 약자에게는 경로 검색마저 쉽지 않다. 불현듯 노선도를 한참 쳐다보다가 나에게 길을 묻던 노인이 떠올랐다. 지하철 노선도는 단지 선이 엉켜있는 모양처럼 보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요건을 고려한다. 여러 개의 복잡한 노선을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선을 45도 각도로 통일하거나 환승역은 다른 일반 역보다 더 크게 표기한다. 실제 지리를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도록 지도 위치와 실제 위치 간의 지리 유사성을 최대한 따져본 뒤 제작한다. 그런데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지하철 노선 하나에도 신경써야 할 점이 여러 가지다. 노선도를 봐야 하는 시민의 피로를 덜어야 하기에 심미적으로도 보기 거북하지 않아야 한다. 단순히 보기 좋은 단계를 넘어서 글을 읽지 못하거나 색을 보지 못해도 누구나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개선한 노선도를 보면 개선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색상 간의 대비는 더욱 미미해졌으며 중앙에 2호선을 원형으로 배치하면서 지리 정보가 어그러졌다. 문득 길을 헤매던 사람들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공공철도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새 노선도를 보고 사용할 것이다. 지금은 어색하더라도 익숙해지면 쓸 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더 어려운 여정이 될 것이다. 색상 간 차이가 미미해진 노선도를 보고 길을 잃을 수도 있다. 자신이 알던 위치와는 다른 곳에 역이 있다면 이동할 때마다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공공수단의 노선도는 더 쉽고 더 명확해야 한다. 모두의 발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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