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제재로 읽는 북한 정세
대북제재로 읽는 북한 정세
  • 황진태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 승인 2024.09.2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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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은 대북제재를 풀어나가려면

  본사는 지난 683호와 689호에서 ‘2018 남북정상회담’을 중심으로 대북제재에 관한 사안을 보도한 바 있다. 현재 북한이 처한 △국제적 고립 △부정적인 국가 이미지 △낮은 경제발전 수준은 대북제재와 긴밀히 연관된다. 북한이 대북제재에 얽히게 된 과정과 이에 대한 노력과 좌절, 우리의 대응 방향을 논해본다.

 

  북한의 숨통을
  조여온 대북제재

  그리스 신화 속 고르디우스 왕은 자신의 마차를 복잡한 매듭으로 묶으며 이 매듭을 푸는 자가 곧 아시아의 왕이 될거라 말했다. 이에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 말한다.

  북한에게 제재는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다. 대북제재란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수출입과 같은 외부 경제활동을 제한하는 행위를 뜻한다. 제재는 개별 국가 차원에서도 가능하나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이하 유엔)와 같이 국제사회 수준에서 결정되는 제재가 가장 효과적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유엔의 대북제재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더욱 강력해지는 추세다.

  초기 제재는 무기물자의 수입·수출을 금하거나 핵무기·미사일 개발에 직접 관여한 개인과 기업의 자산을 동결하는 데 초점을 뒀다. 그러나 이후 핵실험 횟수가 누적돼 석탄·철광석과 같은 광물, 사치품 등으로 제재 범위가 확대됐다. 특히 2016년 4차 핵실험을 기점으로 대북제재의 양상은 크게 바뀌었다. 이전까지는 핵무기·미사일 개발에 관련된 개인·기업에 대한 ‘맞춤형 제재’를 취했으나 4차 핵실험 이후로 불특정 다수인 북한 주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포괄적 제재’로 바뀌었다.

  인도주의나 민생과 관련된 품목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가 북한 주민의 삶에 끼친 영향은 상당하다. 대북제재가 발동한 해인 2016년,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3.9%였으나 이듬해 –3.5%로 급강하했다. 그 후 제재 3년만인 2019년, 0.4%로 미세한 회복세를 보일 때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자체적인 국경봉쇄가 가중돼 2020년에는 무려 –4.5%로 곤두박질쳤다.

  굳이 경제성장률 수치를 따져보지 않고 북한이 재해·재난을 대응하는 방식만 살펴봐도 제재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지난 7월 경, 북한 압록강 유역의 대홍수로 광범위한 수해가 발생했다. 만약 제재가 없었다면 복구를 위한 부품이나 장비를 수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족한 중장비로 약 30만 명 가량의 북한 청년들이 맨손에 삽과 망치를 든 채 중장비를 대신했다.

 

2020년까지 10년 간 북한 경제성장률 추이 <출처 / 연합뉴스>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북한의 노력

  북한이 대북제재 완화를 위해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18년 3차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이에 북한은 모처럼 한반도에 불어온 봄바람을 기회삼아 대북제재를 완화하고자 했다.

  제재 완화에는 핵개발에 대한 ‘비핵화 조치’가 수반된다. 북한은 해외언론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으며 남북 정상회담 중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가능성을 언급해 대북제재 완화를 위한 포석을 뒀다. 그러나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영변 이외 핵무기 생산 가능성이 있는 다른 지역들에 대한 검증을 요구했다. 결국 한반도에 찾아온 봄바람은 북한과 국제사회와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스쳐갔다.

  ‘하노이 노딜’로 인한 북한의 실망감은 상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2022년 11월 24일 김정은의 여동생이자 노동당 부부장인 김여정은 담화를 통해 “미국과 남조선 졸개들이 우리를 제재로 압박하는데 필사적으로 매달릴수록 우리의 적개심과 분노는 더욱 커질 것이다”며 “그것은 그대로 저들의 숨통을 조이는 올가미가 될 것이다”고 말하며 한국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제재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표출했다.

 

2019년 북미정상회담 <출처 / SBS뉴스>

 

  김여정이 한국을 ‘졸개’라 칭할 정도로 감정적인 언술을 한 것은 한국과 미국이 자신들의 비핵화에 대한 진심을 알아주지 못해 속상한 심정을 표출한거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달 김정은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방문했으며 시설 내부를 촬영한 사진까지 외부에 파격적으로 공개했다. 현시점에서 하노이 노딜 당시를 돌이켜보면 북한은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었다기보다 위장전술의 의도가 더 짙어 보일 수밖에 없다. 북한은 대북제재를 피할 다른 방안이라도 있는 걸까?

 

  북러관계 밀착
  대북제재 해결의 길인가

  앞서 말한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풀기 위해 제우스 신전을 방문했다. 결국 그는 매듭을 풀었으나 방법은 지극히 단순했다. 칼로 매듭을 잘라버린 것이다. 그리고 고르디우스의 예언에 따라 알렉산더 대왕은 아시아를 정복했다.

  오늘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되며 북러관계 또한 밀착되고 있다. 과연 두 국가의 밀착은 대북제재를 완화하거나 대체할 ‘알렉산더 대왕의 칼’이 될 수 있을까?

  대북제재는 소수의 정치엘리트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에게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에 북한 당국은 주민들을 상대로 북한을 겨냥한 제재에 대해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 북러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해 11월, 북한의 당 기관지 노동신문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제재를 받는 상황에 대해 한 러시아 관료는 “대로씨야제재가 응당한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서방국가들이: 인용자주) 괴로와하고 있으며 반면에 로씨야는 제재로부터 리득을 보고있다”며 러시아는 “언제나 그러했듯이 제재로부터 리득을 얻는 법을 터득했다”는 발언을 실었다. 해당 보도는 러시아와 북한이 제재라는 동일한 해악의 당사자로 묶인다고 말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러시아는 제재를 해결할 역량이 충분하며 오히려 제재가 경제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선전해 북한 또한 러시아처럼 제재에 맞설 수 있다는 논리를 북한 주민들에게 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러시아는 제재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아전인수격 해석을 제공한 것뿐만 아니라 대북제재를 약화시키는 실질적 조치도 단행했다. 유엔의 대북제재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대북제재 위원회 전문가패널’은 창설 15년 만인 올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활동을 중단했다. 이로써 러시아는 북한과 핵·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부품과 기술 등을 포함한 거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이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종료되더라도 러시아가 차지한 우크라이나 지역 재건사업에 북한 노동자를 파견하는 등 북한은 북러간 교류를 통해 러시아에 상당 기간 밀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러관계가 대북제재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북한 또한 이를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북한은 대북제재의 매듭을 풀 실마리를 쥔 미국과의 관계 변화에 더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당장 오는 11월 미국 대선 결과 등에 기대감을 품고 있을 확률이 높다.

 

남북관계에 대해 논하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윤석열 대통령 <출처 / 데일리엔케이>

 

  계속되는 북한과의 대치
  우리나라의 대응은

  지난해 12월 개최한 조선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남북관계는 더 이상 동족·동질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이자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평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직접적인 발언이기 때문에 근 시일 내에 한반도 정세가 바뀌더라도 상당 기간 동안 냉각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윤석열 정부 또한 남북관계보단 한미일 공동대응을 중시하고 국제사회를 통한 북한 압박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살벌한 현 상황을 벗어날 출구는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풀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해법은 지금 한반도 상황에 적용하기엔 부적절할 수 있다. 북한과의 적대적인 관계를 해결하기 위해선 매듭의 형태를 천천히 살펴보며 최악으로 가지 않게끔 경우의 수를 살펴야 한다.

  현재 북한은 과거의 미소 냉전구도처럼 북중러 진영외교의 부활을 기대하는 듯하지만 중국은 한국과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높기 때문에 ‘북중러 대 한미일’의 신냉전 구도를 선호하지 않는다. 더해 러시아조차도 잠재적 경제 파트너로서 한국을 차마 무시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지경·지정학적 조건은 매듭을 풀 수 있는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신냉전적 구도에 편승해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시간을 들여서라도 매듭을 하나하나 풀어내며 위기를 관리하는 슬기로움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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